공사는 올스톱, 장사도 하지말라니 농민공, 그들에게 올림픽은 괴롭다
[르포] 베이징 농민공들의 '게토', 나이즈팡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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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때문에 떠났다"베이징 왕징 외곽에 자리잡은 나이즈팡에서 만난 중국 농민공 ⓒ 박정호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는 생기를 잃은 회색빛 콘크리트와 크레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대기오염과 소음을 줄여보겠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7월 20일부터 9월 20일까지 베이징 시내의 모든 공사가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이런 곳이
▲ 2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곽 나이즈팡 어귀에 설치된 철창문에서 보안원들이 주민들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다. ⓒ 박정호
지난 20일 오후 왕징에서 택시를 타고 농민공들의 마을 나이즈팡으로 가는 길. 외곽방향으로 10분 정도 쌩쌩 달던 차가 갑자기 고장난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보려고 내다보니 어느새 차창밖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매끈한 도로 위를 경쟁하듯 달리던 각양각색의 자동차 대신 흙먼지 날리는 길 위에는 오래된 자전거가 굴러가고 있었고, 양 옆에는 웅장한 빌딩숲 대신 낡은 단층 건물이 힘겹게 서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을 보는 것 같았다. 올림픽을 맞아 대대적으로 단장한 베이징 시내의 현대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흔들거렸던 택시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얼굴을 찡그리고 찾아간 마을 어귀. 마을은 정부 건물에서나 볼 법한 검은 철창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올림픽 기간 동안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하얀 모자와 빨간 완장을 찬 남자들이 철문 앞에 앉아 있었다. 순간 '기자들의 취재를 막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숨을 들이마신 뒤, 기자증과 카메라를 숨기고 철청문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다행히 위험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보안원들은 우리를 통행증 검사 없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큰 길 따라 들어선 시장에는 웃통을 벗은 상인들이 따가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너무 조용했다. 장사가 신통치 않은 것일까. 군데 군데 문을 닫은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 중국 베이징 외곽 나이즈팡 시장 풍경. ⓒ 박정호
▲ 일정 규모 이하 음식점은 위생상의 문제 등으로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문을 닫았다. ⓒ 박정호
올림픽 하니, 작은 가게들은 문 닫아라?
▲ 나이즈팡 시장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 ⓒ 박정호
그는 "올림픽으로 인해 작은 가게들이 모두 영업을 중지했다"면서 "(올림픽이) 중국의 실력을 알리고, 국가를 빛내는 일이라서 좋기야 좋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일부 외지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대부분 올림픽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성인용품 가게 아저씨도, 빙수 가게 아저씨도, 생선 가게 아저씨도, 과일 가게 아저씨도 올림픽에 흥미나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장 뒤 골목길 안에는 빛바랜 벽돌과 나무문이 달린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평지에 집이 있다는 게 다를 뿐, 우리나라 서민들의 '달동네' 같았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길가에는 종종 자물쇠가 채워진 집도 보였다. 일자리가 없어 농사 짓던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빈자리다.
"일자리 없어져... 올림픽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다시 발걸음을 시장 쪽으로 돌리려고 할 때 쓰촨성에서 올라온 농민공들을 만났다. 집 마당에서 웃통을 벗고 이야기하던 세 남자는 의자를 가져다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들은 올림픽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작은 가게를 경영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게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없어서 떠난 것이다.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공사가 두 달여간 정지되어서 우리도 할 일 없이 지내고 있다. 국가가 올림픽이라는 큰 일을 위해서 취하는 정책이니 어쩔 수 없다."
"국가를 위해서 일자리를 잃어도 어쩔 수 없다"는 농민공들의 생활은 궁핍했다. 세 남자 중 제일 연장자인 인네아차오씨는 "채소를 주로 먹고 있는데, 요즘은 채소값도 올랐다"면서 "세 식구가 하루 식비로 20~30위엔(한화 3000~4500원)을 소비하고, 한 달 생활비는 1천위안(한화 15만원) 정도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 나이즈팡에서 만난 농민공 인네아차오. ⓒ 박정호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대문 밖까지 나왔다. 활짝 웃으며 우리를 보낸 이들의 집도 이제 한동안 비어 있게 될 것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올림픽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퇴직해서 쉬고 있다는 60세 남자는 "우리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며 "올림픽에 대해 별다른 기대로 없다, 차라리 집에서 장기나 두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주택가로 들어오니 저녁밥 짓는 냄새가 났다. 골목길에서 하나 둘씩 짝을 지은 사람들이 장을 보러 나왔다.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아주머니도 이웃주민과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살며시 옆에 붙어 올림픽에 대해서 물어보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흙길이었던 마을길이 포장되고 상점 간판도 새로 교체됐지만, 올림픽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시내의 공사장이 모두 가동중지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남편 같은 경우는 베이징이 아닌 다른 도시로 막노동을 하러 떠났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지금 이산가족과 같은 형편이다."
그러고 보니 마을 상점의 간판이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여기 저기 위생 상태를 점검하자는 선전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잘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밖으로 나와서 버스에 올랐다.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나이즈팡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5년 전 헤이룽장성에서 베이징으로 왔다는 조선족 이용수(38)씨는 "올림픽 때문에 인민들이 불편하다"면서 "나이즈팡에서 왕징으로 가는 길도 포장이 중단되었다"고 말했다.
"요즘 돈벌이가 어떠냐"고 물어보자 그는 "자신은 사업을 해서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농민공들이 7월 20일부터 돈을 못 벌어 큰 일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버스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웃통을 벗은 남자를 태운 자전거 몇 대가 흙먼지를 뚫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그들에겐 없었다
올림픽을 맞아 나이즈팡은 곱게 단장되었지만, 정작 마을에 살아야 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을 떠나버렸다. 남은 사람들에게도 올림픽은 국가 정책의 하나일 뿐 개인적인 기대나 희망을 찾기 힘들었다.
누구를 위한 올림픽일까. 오랫동안 올림픽 경기장과 고층 빌딩 건설에 땀 흘렸던 농민공들에게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내건 베이징 올림픽은 없었다.
▲ 빛바랜 벽돌과 나무문이 달린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농민공 주택가. ⓒ 박정호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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