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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세울 수 없으면 대한민국을 떠나라!

남편 사별한 결혼이주민 출국 강요하는 출입국

등록|2008.08.24 19:08 수정|2008.08.24 19:08
08년 3월말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결혼이민자는 115,113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10.3%를 차지하는데, 그 중 88.1% 이상이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다문화가족의 증가는 전체 체류 외국인의 증가 추세와 단순 비교해 보면 얼마나 빠른 증가 추세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령, 2001년과 2008년을 비교해 볼 때, 7년간 체류외국인이 566,835명에서 1,118,495명으로 증가하여 2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인 반면, 국제결혼은 25,182명에서 115,113명으로 4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07년의 경우 한국인의 전체 결혼 100쌍 중 11쌍 이상(혼인 345,592건 중, 34,491건)이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0년 100쌍 당 한 쌍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전체 결혼의 11쌍 이상이라는 수치는 다문화가족이 엄청난 증가를 하였음을 말해 줍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사회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입니다. 사실상 저출산 고령화 사회인 우리사회에서 다문화가족은 우리사회에 경제적, 문화적 큰 활력을 넣어주는 존재들이고, 글로벌시대를 이끌 수 있는 잠재적 일꾼들이 자라는 모판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지역사회가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안정적인 체류를 위한 지원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은 민관 간에 이견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신원보증 선 배우자 사별하면 체류 자격 상실

그러나 다문화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결혼이주민에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더욱이 신원보증을 섰던 국적 배우자와 사별한 결혼이주민인 경우에는 '체류 자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걸리기 시작합니다.

지난 7월 결혼한 지 2년이 될 즈음에 유복자를 출산한 베트남출신 결혼이주민 융은 관할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에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습니다. 신원보증인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에 대해 쉼터를 통해 융의 신원보증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출입국에서는 '그렇다면 쉼터 대표가 보증을 선다면 체류 기간 연장을 해 주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쉼터에서는 출산 후 붓기가 다 빠지지도 않은 융을 데리고 다시 한 번 출입국을 찾았지만 역시 헛수고였습니다. 신원보증인의 재직증명서와 납세증명원을 갖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현재 출입국관리법상 아내에 대한 신원보증은 남편이 해야 합니다. 남편이 신원보증을 하지 않거나 철회하는 경우 결혼이주여성들은 미등록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다만 국민과 혼인한 외국인배우자가 결혼동거 기간 중 국민이 사망하거나 이혼 등 결혼중단사유 발생시 배우자의 친척 또는 친지나 보증능력 있는 제3자도 신원보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결혼이주민에게 신원보증을 요구하는 이유는 위장 결혼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남편과 사별한 후 일주일 만에 유복자를 출산한 융의 경우에는 누가 보아도 위장 결혼과는 거리가 있다 하겠지만, 신원보증인이 있어야 체류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배우자가 사별한 경우 제3자 신원보증을 허락한다고 하지만, 혼자 남은 결혼이주민들이 신원보증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닌 말로, 당연히 상속받아야 할 배우자의 유산은 물론이고, 아이마저 빼앗기는 등 갖은 사연 속에 이주여성쉼터 같은 곳을 찾지 않는 한, 스스로 신원보증인을 찾는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남편을 잃고, 혼자라도 아이를 키워보겠다는 융에게 적극적인 체류 지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보증 세울 수 없으면 대한민국을 떠나라!"고 강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출입국에 무슨 근거로 신원보증을 요구하느냐고 물었더니, '08년 출입국관리지침'에 의해 그런다고 답하더군요. 이상한 것은 대한민국 국적법에 의하면, 국제 결혼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이혼 소송을 통해 책임을 가리고 이혼 뒤 국적을 얻을 수도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국적법에 의하면 누군가의 신원보증 없이도 체류를 할 수 있다는 말인 셈입니다.

융의 경우만 아니더라도, 배우자와 사별한 결혼이주민들에게 제3자의 신원보증을 요구하는 출입국의 지침은 결혼이주민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의식을 깔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갑니다. 본의든 아니든 이러한 의식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낳고 정부 정책에도 고스란히 이 차별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사실상 결혼이주민에 대한 문제는 제도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상의 문제이자, 순혈주의에 기초하여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교육받아왔던 우리 국민의 의식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말로는 사회통합을 이야기하면서, 기본적인 체류 지원도 하지 않는 신원보증에 관한 출입국 지침은 하루 빨리 폐기돼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아기, 제가 키우게 해 주세요" 이어쓴 기사입니다.

- 고기복 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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