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고무신과 풍차
[늙수그레한 백수 4쌍의 여름휴가7 ]바람 부는 동해와 풍력발전소
▲ 노란 고무신과 괴목 수석 ⓒ 이승철
“오늘 아침은 조금 특별하게 영덕 게 요리로 먹어 볼까하는데 어때요?”
“값이 만만치 않을 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돈이 모자라면 내가 책임지지 뭘.”
아침에 포항에서 출발하면서 이번 여름휴가일정과 재정까지 모두 책임진 일행이 호기롭게 앞장을 선다. 아침부터 게 요리라니, 일행들 특히 아내들이 기대어린 표정들이다.
“대게 철이 아니라는데, 앞에 내놓은 대게들은 러시아산 수입대게들이래.”
수입 대게일 뿐만 아니라 더구나 요즘은 철이 아니라 대게의 맛도 별로라는 것이었다. 모처럼 맛있는 영덕 대게를 기대했던 일행들이 실망하는 표정들이다.
꿩 대신 닭? 대게보다 더 맛있는 조기 매운탕
“그럼 수입 대게라도 먹고 갈까요?”
호기롭게 큰소리친 일행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러니 러시아에서 수입한 대게라도 한 번 먹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아내들에게야 어디 통할 말인가. 전에도 먹어본 적이 있는 영덕 대게의 맛을 기억하고 있는데 맛없는 수입 대게를 먹겠다고 할 리가 없었다.
▲ 장사 바닷가와 작은 포구 ⓒ 이승철
“에이! 그럴 수야 없지요, 공연히 비싼 돈 내고 입만 버려요. 다른 걸로 먹읍시다. 대게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른 적당한 음식을 먹기로 하고 다시 천천히 달렸다. 저만큼 앞에 휴게소가 나타났다. 바닷가 언덕배기에 있는 장사 휴게소였다.
“모르는 곳에서는 손님이 많은 곳이나 기사식당으로 들어가면 실망하지 않는다는데 저 기사식당 어때?”
마침 바닷가 쪽에 기사식당이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이 보였다. 식당 앞엔 승용차도 몇 대 서있었다. 손님도 있고 더구나 기사식당이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식당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처럼 무뚝뚝해 보이고 늙수그레한 남자가 주인인 듯 우리들을 맞는다. 다른 식탁에도 10여명의 손님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차림표를 살펴보던 아내들이 음식을 주문했다.
“아저씨! 조기매운탕으로 주세요. 그리고 참, 맛있게 해주세요?”
“네에. 걱정 마세요, 맛있게 해드릴 테니까.”
주인아저씨는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부드럽고 친절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잠깐 기다리며 방안을 살펴보니 여느 식당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출입문에서 들어서면 바로 식료품을 파는 가게가 자리 잡고 그 안쪽 마루에 낮은 식탁들이 놓여 있었다.
▲ 러시아 산 수입 대게 ⓒ 이승철
식탁이 놓여 있는 방안 한쪽은 곧바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크고 넓은 유리창이었다. 동해바다 특유의 전망이 툭 트인 드넓은 바다는 짙은 코발트색이었다. 그 바다에 마침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오고 있어서 바닷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이다.
“자! 어서 드세요? 음식 나왔어요.”
바다와 파도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식탁 앞으로 다가 앉자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우선 조기찌개 국물부터 한 숟갈 떠 맛을 보았다. 약간 달콤하고 또 매콤하다. 그리고 조기 맛 특유의 감미로운 맛까지
“이 조기매운탕 맛이 매우 좋은 걸”
먼저 맛본 내가 칭찬을 하자 너도나도 모두 맛이 좋다고 한다.
“이건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알짜 맛이네.”
다행이었다. 조기매운탕 맛이 좋지 않았더라면 대게를 먹지 못한 아쉬움이 컸을 텐데 매운탕 맛이 좋으니 대게에 대한 미련 같은 건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4인분씩 나온 매운탕 안에는 사람 숫자에 맞춰 네 마리씩의 조기가 들어 있었다. 서로 신경 쓸 것 없이 한 마리씩 나눠먹도록 한 것 같았다. 이건 주방장의 배려이리라. 한상에 네 명씩 앉았으니 1인당 한 마리씩 먹을 수 있도록 맞춰 끓여준 것이다.
▲ 영덕 대게 직판장 ⓒ 이승철
다른 밑반찬들도 맛이 좋은 편이었다. 포항에서 이곳까지 달려오며 대게를 알아보느라 시간이 늦은 아침 식사는 조기매운탕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먼저 식사를 끝낸 내가 숟가락을 놓자 기다렸다는 듯 커피가 나온다. 주인 남자의 친절이 밴 행동이었다.
먼저 밥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벽 쪽에 있는 장식품 한 개가 눈길을 확 끌어 당겼다. 작고 노란 고무신이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의자처럼 보이는 받침대 위에는 괴목과 수석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수석 앞에 작은 고무신이 한 켤레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무신 양 옆에는 물고기 박제가 한 마리씩 놓여 있었다.
고무신, 요즘은 참 보기 드문 신발이다. 아무도 신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모두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특히 가난한 농어촌 사람들은 고무신 중에서도 값싼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하얀 고무신은 상대적으로 값이 비쌌기 때문이다.
노란 고무신 그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고무신을 신고 살던 옛날 어느 바닷가에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일곱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들 가족들도 모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그러나 이 가족에게 한 켤레의 하얀 고무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외출용 신발이었다.
▲ 바윗돌 해변풍경 ⓒ 이승철
그래서 이들 가족에게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은 아주 특별한 신발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을 항상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 그러다가 읍내에 갈일이 생기거나 누구네 집에 결혼식이나 회갑잔치라도 있을 때면 아버지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나갔다.
하얀 무명옷에 역시 하얀 색 두루마기를 입고, 하얀 고무신을 신은 아버지를 볼 때면, 아이는 아버지가 그렇게 멋져 보이고, 자신도 하얀 고무신이 신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모두 고기잡이를 나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을 몰래 신어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이었다. 바닷가 마당 한쪽에 핀 노란 국화가 흐드러졌던 어느 날 고기잡이를 나간 이들 부부는 풍랑을 만나 고깃배가 뒤집히고 말았다. 이들 부부는 깊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어머니는 정신을 잃은 채 바닷가로 떠밀려와 목숨을 건졌지만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때부터 아이는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하얀 고무신을 들고 나가 마당가의 노란 국화 옆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그해 가을이 가고 국화꽃도 모두 질 때쯤 어느 날, 아이는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이 노란 빛깔로 변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노란 국화는 아버지가 유난히 좋아해서 몇 년 전에 친구네 집에서 한 포기 얻어다가 옮겨 심어 놓았다는 것도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져버린 노란 국화꽃을 보며 아이는 아버지인 듯 노란 고무신을 가슴에 꼬옥 안았다.
▲ 영덕 풍력발전소 부근 해맞이 전망대 ⓒ 이승철
장사 바닷가의 언덕배기 식당 안에 놓여 있는 노란 고무신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보기 힘든 노란 고무신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옛날이야기를 생각나게 만든 것이다.
아침을 조기 매운탕으로 맛있게 먹은 일행들은 다시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바닷가에는 드문드문 군용으로 보이는 경비초소가 눈에 띠었다. 철조망은 보이지 않았다. 북쪽에서부터 바닷가에 둘러쳐져 있는 철조망은 울진 어느 바닷가에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군대 시절의 추억, 중대장과 대대장의 전등 불빛을 구분했던 바닷가 처녀들
“이곳이 내가 군대 생활할 때 근무했던 곳이야. 추억이 많은 곳이지”
일행 한 사람이 초소를 지나치며 하는 말이었다. 그는 군대생활을 이곳에서 초소장으로 근무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훈련소 훈련을 마치자마자 다시 하사관 학교를 나와 일반하사로 분대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대장이면 1개 초소를 책임진 초소장으로 상당한 구간의 해안경비를 책임진 지휘자였다. 낮이면 막사에서 잠을 자고 밤이면 경비근무를 하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 때 재미있었던 추억은 초소 근처 마을에 사는 처녀들과의 로맨스였다고 한다.
▲ 영덕 풍력발전소 전경 ⓒ 이승철
이들 처녀들과의 로맨스는 주로 밤 시간에 이루어졌다. 낮에는 잠을 자거나 작업을 했기 때문에 처녀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밤이면 바닷가 초소에 한두 명씩 따로 떨어져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처녀들이 접근하기가 좋았다.
초병들의 시선은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을 감시하는 임무였기 때문에 육지 쪽은 대단한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처녀들은 여름밤이면 찐 옥수수나 감자를 싸들고 초병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초병들의 졸리는 잠을 쫓아주기도 하고 출출한 배와 허기를 메워주기도 했다.
그런데 초소 근무자가 근무 중에 민간인과 노닥거리는 것은 절대 금기였다. 그래서 초병들은 처녀들이 찾아오는 것이 반갑기도 했지만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초소 근무를 하며 몰래 하는 데이트는 더욱 짜릿한 스릴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하는 동안 초병들뿐만 아니라 처녀들도 순찰하는 중대장이나 대대장 등 지휘관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데이트를 하면서도 눈과 신경은 해안도로 쪽으로 집중 되었다. 그러다가 저 만큼에 순찰 지휘관의 전등불빛이 보이면 잽싸게 피했다.
▲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들 ⓒ 이승철
“처녀들이 멀리서 전등 불빛만 봐도 중대장인지 대대장인지 알아보더라니까.”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데이트 한 사람들이 몇이나 결혼까지 골인했는데?”
“많지는 않았지만 몇 쌍은 결혼까지 했었지,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렇게 데이트 하던 커플들 중에는 제대할 때가 되어 몰래 숨어서 울고불고 눈물 쥐어짜며 이별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러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풍력발전소는 멋진 관광지가 되어 있었네.
“저 산 위에 보이는 것 있지? 저 곳이 바로 영덕 풍력발전소야?”
일행의 군대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달리다 보니 산모퉁이 너머로 천천히 돌아가는 풍차 날개가 바라보인다. 산자락을 끼고 돌아가자 해맞이 공원이 나타났다. 그러나 등대 아래 주차장은 차량들이 가득하여 들어설 곳이 없었다.
조금 더 달려 풍력발전소로 올라가는 입구 근처의 주차장에 잠깐 차를 세웠다. 앞에 일망무제로 펼쳐진 짙푸른 바다는 불어오는 바람에 울렁울렁 춤을 추고, 뒤편의 산 위에선 느릿느릿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가 기묘한 앙상블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 풍력발전소 내 잔디축구장 ⓒ 이승철
사진을 몇 컷 찍고 산 위로 차를 몰았다. 풍력발전소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차지 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별로 크지 않은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풍차의 기둥도 엄청 높고 컸지만 날개는 더욱 커보였다. 풍력발전용 풍차는 24개나 되었다.
“저 팔랑개비 겁나게 커부렀소 잉, 뭔 노무 팔랑개비가 저러코롬 크당가?”
“저기 저게 발전소랑 안카요? 전기를 맹그는 곳이라 카드만.”
할머니들이 신기한 듯 풍차를 올려다보며 나누는 말이었다, 서울 봉천동에서 온 할머니들이었다. 풍력발전용 풍차가 아닌 커다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산 아래 자락 녹색 잔디 축구장에서는 젊은이들이 뛰고 달리며 축구를 하는 모습도 바라보인다.
풍차의 높이는 아파트 25층과 맞먹는 무려 80m에 달했다. 발전소의 대지는 15만여 평으로 하늘을 향해 시위라도 하듯 불끈 치솟은 24기 발전용 풍차들은 보면 볼수록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FRP 재질로 만든 날개의 길이는 42m에 달하는데 날개의 값도 몇 억대가 넘는 고가의 제품이라고 한다. 이곳 풍력발전소는 지난 1997년에 발생한 산불로 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능선과 산자락에 세워진 것으로 24기의 풍차는 대형단지로는 국내 최초의 풍력발전소다. 시설과 설비는 모두 수입제품으로 지난 2004년에서 2005년에 걸쳐 1년 동안에 건설한 것이다. 건설비는 내자와 외자를 합쳐 약 675억 원이 들어간 대형 공사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 바닷가에 빙 둘러 이런 풍력발전소를 만들면 무공해 전기 에너지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네.”
일행의 말이다. 그러나 바닷가라고 모두 풍력발전소를 세우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 국내 기술진이 개발 중인 날개가 수직축인 풍차가 실용화 되면 가능한 일이긴 하다.
▲ 바람 부는 바다와 하늘 풍경 ⓒ 이승철
그러나 이곳 영덕풍력발전소와 같이 날개가 수평축인 풍차는 우선 바람의 방향이 연중 거의 같은 방향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바람의 방향이 달라 풍력발전용 풍차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영덕풍력발전소는 바람이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할 때는 날개가 돌지 않도록 특수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발전소라기보다 관광자원 역할이 더 큰 것 같네, 여기 모여든 사람들 좀 봐?”
우리일행들 외에도 주변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풍력발전소 소문을 듣고 몰려든 관광객들이었다. 풍력발전소는 무공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역할 만큼이나 관광자원으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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