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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서 해남(海男)을 만나다

[자전거세계일주_칠레1편] 국어사전에도 없는 '그들'을 만나다

등록|2008.08.26 12:18 수정|2008.08.26 14:08

▲ 미구엘의 오리발 ⓒ 박정규


12시. 20km. 어촌마을(Caramucho). 멀리 해안가에 낚시꾼이 있는 것 같다. 칠레 물고기를 보고 싶어 핸들을 돌린다. 비포장 길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어촌 마을에 가까워지고 있다. 해변에서 미역을 말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 반가워하며 반사적으로 손을 흔드는 사람, 이 겨울에 '여행자가?'라는 듯. 의아한 눈빛들을 지나 해변가 끝에 도착했다.

아! 낚시꾼이 있는 곳인줄 알고 도착한 곳에서는 '지렁이 친구'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빨간 자전거 헬멧을 쓴, 태양의 얼굴을 닮아가는 얼굴'(나)을 발견한 듯 신이 난 아저씨들이 '치노! 치노!(동양인 또는 친근한 사이에 부르는 말)'를 외치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Miguel, Yohani라는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다.

국적, 여행경로, 경비문제, 숙식문제 등 기본적인 것들에 답한 뒤에 이번에는 내가 질문한다. 이들의 '장비'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굴 부분만 뻥 뚫려 있는 상의, 쫄바지 보다 더 착- 달라붙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의, 청테이프와 은박 테이프로 마구 마구 감은 앞 부분이 유난히 넓고 긴 검정신발, 네모난 국화빵 크기의 납덩이 같은 게 주렁 주렁 달린 허리 띠…….

그들은, 바로 국어사전에도 없는 '해남(海男)'(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생계로 하는 남자들, 한국에서는 '해녀(海女)'만 있다)이었다. 100년 동안 바다 바람을 바라본 이 마을에는 약 60가구 120명이 살고 있고, 30명의 남성들이 해남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번 물 속에 들어가서 60-90초 가량 작업하면 15-20개의 해산물을 채취한다. 하루에 3-4시간씩 물 속에서 채취작업, 1-2시간씩 물 밖에서 다듬기 작업을 한다. 주로 '성게'를 채취하며, 이들의 땀과 바다 바람이 묻어있는 '해산물'들은 먼저 인근 공장에 보내진다. 제품화시켜 산티아고로 항공수송한 뒤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로 수출한다. 한국엔 '해녀'만 있다는 사실을 안 Miguel이 칠레에 '해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안 내 표정을 짓고 되묻는다. 한국에는 왜 해녀만 있는 거지? 글쎄, 모르겠어…….        

제주도 해녀에 대해서 따로 연구한적이 없고, 당연히 그래왔던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터라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사실’로 알고 있던 수 많은 ‘사실’들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얼마나 ‘왜?’ 라고 되물어올 ‘사실’ 또한 너무나 많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우리네 문화와 그들의 문화를 열린 눈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칠레 물가가 비싼 것 같다

▲ 오늘의 점심 메뉴(생선튀김) ⓒ 박정규


▲ 오늘의 점심 메뉴 ⓒ 박정규


13시30분. Chanavayita 식당. Miguel이 말하던 마을 식당에 왔다. 정말 5km여서 다행이다. 식당 앞에는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선 집중, 다행히 곧 자신들 음식으로 눈이 간다. 빨간 헬멧 쓴 배고픈 여행자를 식당 아주머니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관찰하며 오늘의 메뉴를 알려준다. 한참을 말하는데 가격 차이가 문제였다. 돈 있을 때 잘 먹자는 생각에 비싼 메뉴를 주문했다.(2500칠레페소 VS 3500칠레페소이었다. 약 7000원 짜리를 주문한 셈.) 아무리 생각해도 칠레 물가가 비싼 것 같다. 점심 한 끼에 거의 4-5달러 수준이니까…….

먼저 큰 빵이 나오고 다음 '엠파나다(저민 고기, 야채, 과일 등을 넣은 라틴 아메리카의 파이)'가 나온다. 우와! 따뜻하다! 가격이 비싸서 조금 유쾌하지 않았던 머리 속이 순식간에 '만족!'이란 단어로 채워진다. 여행자는 배부르면 일단 좋다!  밥 먹으면서도 조나단(자전거 이름)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밖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식당 유리 창이 높아 조나단의 몸은 보이지 않지만 깃대가 약 1m 하고 한 뼘이 넘으니까 너무 잘 보인다. 달릴 때는 칠레 국기가 헬멧을 툭- 툭- 칠 정도이니까……. 아까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왜 핸들이 그렇게 많이 흔들린 걸까? 앞 가방의 무게 중심이 달라서? 스포크는 부러진 곳도 휘어진 곳도 없던데, 잘 살펴 봐야겠다. 아 바다 햇님도 성격이 화끈해서 그런지 내 얼굴도 닮아가나? 썬크림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돈을 가지러 나가는데 운전기사가 "말(스페인어) 할 줄 아느냐"면서 악수를 건넨다. "세계를 아나요?"라는 어려운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 "몰라도 문제 없어요, 천천히 갈 거니까요……"라고 대답하고 나니 대답이 영 미지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은 있느냐고 묻는다. 물병 반 통을 가리키자 웃으며 자기 키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후식으로 무얼 먹을 건지 묻는다. 아이스크림을 선택! 10000칠레페소(우리돈 2만원)을 냈는데 잔돈을 조금 덜 거슬러 준다. 후식에 추가 경비가 들어갔나? 칠레 식당 문화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식전, 후 음식이 다 있고, 식당 안에서 위생모자를 쓴다. 페루나 볼리비아였다면 훨씬 더 편한 복장이었을 텐데……. 

30년 넘게 '해남' 생활을 한 루이스를 만나다

18시40분. 52km. Chanabaya. 10-15명이 살고 있는 작은 해안가 마을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관광객이 없어 썰렁하단다. 그래서 캠핑장이 있었구나……. 3명의 자녀는 노르웨이에 살고(기술대학 졸업 후 간 거란다.) 아내는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다음 달에나 온단다. Luis는 어부다…….

처음 마을에 들어오니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도 없는 캠핑장과 마을을 수호하는 듯한 아니 만선을 기원하는 조형물을 보고 망설이다가 집이 있는 골목을 하나 선택해서 올라갔다. 막다른 곳까지 가자 Luis가 1톤 트럭을 손보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여행자가 신기한지 멀뚱 멀뚱 호기심 경계 반으로 바라본다.

▲ 포터 안에 있던 마사지 홍보물 ⓒ 박정규


먼저 인사와 악수를 건네고 서서히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 가고 있고, 위에 보이는 오르막이 어디로 가는 거냐? 하루에 얼마나 간다. 한국인이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차를 가리키며 '현대!'란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가서 명함을 가져왔다.

헉! 섹시한 수영복 상의와 아주 짧은 청바지 입은 아가씨가 유혹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상황을 설명해주는 3글자! 마사지! 2002년도에 이키케(Iquique, 칠레 북부 도시)에서 구입한 중고차다. 많이 바빴는지 해외 고객을 위한 서비스 전략이었는지 몰라도 흐뭇하지는 않다. 차고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는 Luis에게 드디어 질문을 한다.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더 이상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텐트와 매트리스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고 가도 될까요?"

'창고'란 말을 모르겠다. '사무실' '기술 사무실'을 말해 보지만 이해를 못한다. 아마 내 '길거리 스페인어'를 이해 못한 것이리라. 밖에선 멍멍이가 짖어서 그렇고……. 이야기 하는 동안 계속 경계하는 눈빛의 Luis에게 여행노트와 스페인어 사전을 보여주려 하자 따라오란다.

▲ 루이스의 삶을 잘 보여주는 사진액자 ⓒ 박정규


집 한 편 창고로 가더니 발전기를 돌린다. 여러 번 경운기 시동을 걸듯이 돌리자 시동이 걸리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찾아왔다. 집 근처 불이란 불이 다 켜졌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건……. 가로 1m40 세로 1m 정도의 액자에 수 많은 사진들이었다. Luis의 삶을 한 눈에 설명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눈금 하나에 500km짜리 세계지도가 마음을 흐뭇하게 자리잡고 있다.

사전, 회화 책까지 모두 가져와 대화 시도! 차 한잔 하겠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물론 '네'다. 차와 빵이다! 생선 캔과 양파를 섞은 것을 빵에 넣어서 먹는다. 과거에 어느 도시에 살았고, 어느 도시는 위험하다고(카메라 조심) 여행정보를 알려주다가 우리 가족 사진 보여달란다.

피곤이 100m달리기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최선'이란 말이 마음을 두드려서 '조나단'
에게 가서 여권을 받아 들고 왔다. 여권 뒤에서 항상 기다리고 서있는 '우리가족사진'을 Luis는 유심히 본다…….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아버지는 60살이지만 여전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30년 동안 목수 일을 해서 팔이 아프다……"고 하자 62살로 30년 넘게 '해남'으로 살아온 Luis가 '나도 그렇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 따뜻한 저녁을 대접해 준 루이스. ⓒ 박정규


▲ 루이스가 준비해준 계란요리. ⓒ 박정규


루이스가 따뜻한 저녁을 준비했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 동안 도둑, 강도 만난 적은 없어? 다음 가는 지역에는 식당이 거의 없을 건데……. 다른 문제는 더 없니?"    
"특별한 거는 없고요, 배고픈 거만 문제예요."

식사가 끝나 갈 무렵 Luis의 눈빛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희망질문(당신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3가지만 알려주십시오. 그것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을 하고 일찍 트럭 짐칸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나의 간단한 매트리스와 슬리핑 백을 보더니 Luis가 담요 한 장을 더 갖다 준다…….

▲ 1톤 트럭 뒤의 보금자리. ⓒ 박정규


▲ 칠레의 북부 해안도로. ⓒ 박정규


아, 3개월 만에 자전거를 타느라 그런지 '적응'하는 시간이 온 몸에 그대로 느껴진다. 일찍 자야겠다. 아까 물어본 식당에서 저기 보이는 오르막이 4-5km짜리고, 다음 마을은 1시간이란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온 건 잘한 것 같다…. 

칠레 북부 해안도로는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루 종일 불어오는 맞바람, 하루 종일 내려다보고 있는 햇님, 시야 끝에 항상 머물러 있는 흐릿한 기운들, 검은 색 도로와 모래 빛 풍경 속에서 달리는 일, 바다가 없었고 마을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2008년 7월24일 칠레 북부 바다 마을 Chanabaya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희망여행 여행노트
이동경로: TARAPACA, Aeropuerto 6.6km 전 – Chanabaya
주행기록: 52km / 4시간 26분 / 평균속력: 11.8km/h
사용경비: 3,800 PESOS(1U$ = 500 PESOS)
섭취음식: 아침: 빵2, 차2, 참치 / 점심: 생선튀김, 밥, 음료수 / 저녁: 빵2, 차, 참치 / 간식: 물 1통
숙      소: 현지인 포터 짐칸
신      체: 전체피로, 근육통, 사타구니 통증
위생상태: 양말세탁, 세수(발), 양치
조 나 단: 내리막에서 핸들이 좌우로 제법 흔들림
도로상황: 평지와 모래사막과 바다 사이의 길, 하루 종일 맞바람 제법, 어촌 마을 조금씩 있음

추신. 그 동안의 사진 자료와 기타 자료를 저장했던 외장하드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아서 현재 한국으로 보내서 수리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한국에서 자료를 보관할 예정이며 여행기는 칠레이야기부터 다시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필자의 변명 – '여행기'에 대하여
2006년 5월16일, '희망'이란 테마로 시작된 '자전거 세계일주'는 몽골, 중국, 인도, 미국, 쿠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지나서 칠레 북부 IQUIQUE로 입국하여 (볼리비아에서 버스로 이동) 8월25일 현재, 산티아고를 향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배운 점들을 어떻게 함께 할까?' 하는 고민은 '나눔'을 사랑하는 모든 여행자들의, 특히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장 무겁고, 결코 버리기 어려운, 또 다른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 문제로 2년 동안 고민해왔고, 이제서야 나름의 '하나의 방법을 선택'해서 '실천'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여행기를 작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이 계속 되고(만남과 배움) 있음을 알리는 일, 길 위에 있는 여행자와 길 밖에서 응원해주는 분들과의 호흡을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매일 아침 배달되는 '젓소 친구들의 선물'처럼 '독자'들과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를 나누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겨울방학 동안의 일기를 개학 하루 전에 '만들던 경험'의 '짜릿한 추진력'으로 '완성'은 할 수 있습니다만, '거친 땀 냄새와 심장의 뜨거움'은 기대할 수 없겠지요.

여행이 '길 위의 만남'이라면, 여행기는 '길 밖의 만남(독자들)'이기에 '또 다른 나름의 접근방법'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숨결'이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규칙적'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지금에서야 느꼈습니다. 남은 시간들은 '적당한 장소와 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당한 장소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행동'하려 합니다. 앞으로는 '여행이 살아있음'을 전하기 위해서 1주일에 하나의 '하루'를 선택하거나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많은 격려와 조언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그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하루' 만에 꼭 만나야겠다고 '버럭!' 하시는 분들은 가까운 인터넷 서점에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을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image. [자전거세계일주_칠레1편] 국어사전에도 없는 그들.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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