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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천당! 승용차지옥? 차버리면 빠르지만... 수도권 출근 딜레마

이용자들이 본 평일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제

등록|2008.09.01 15:16 수정|2008.09.01 16:06
건국대에 재학중인 김아무개(22)씨. 김씨는 8월에 방학이지만 잠시 학교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 등교하다가, 예상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하게 된 것에 깜짝 놀랐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거주하는 김씨는 평소 강남역까지 1550-2번 직행좌석버스로 이동한 뒤 강남역에서 2호선 혹은 7호선 지하철을 통해 학교까지 이동했다.

강남역에서 건대입구역까지는 환승·대기 등을 고려해도 항상 30분 이내. 그러나 집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데에는, 1시간 30분(평일 아침 기준) 정도 걸렸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오전 6시 40분에는 현관문을 나서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등교 때 집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10분. 평소에 비해 20분이나 시간이 단축됐다.  방학 기간 중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반면,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박아무개(38)씨는 출근길이 더욱 고되졌다. 집(수원시 영통신도시)에서 논현동 직장까지, 평소 자가용으로 1시간 정도면 족히 닿았으나 이젠 직장까지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지난 7월 1일에는 평소처럼 나왔음에도 예상치 못한 자가용 정체 때문에 지각하기도 했다. 박씨는 그 뒤로는 야근을 할 경우 아침 출근난을 피해 회사 휴게실이나 찜질방에서 잔다.

경부고속도로 축선에 사는 두 사람의 아침 이동시간이 뒤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더 멀리 떨어진 김씨의 이동시간이 박씨에 비해 짧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5500번 좌석버스용인 수지지구(공식 차고지는 경기대입구)에서 서울 도심까지 오가는 5500번 좌석버스. 성남을 제외한 경부고속도로축 경기남부지역에서 서울 도심까지 올 때 가장 자주 운행되는 버스다. 하지만 이 노선 또한 출퇴근시간에도 12~20분 정도의 긴 배차간격을 보인다. ⓒ 이준혁


2008년 7월 1일.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출퇴근하는 수도권 시민들에게 이 날은 그 동안 생각해오던 출퇴근 시간의 패러다임이 바뀐 날이다.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가 시행되면서 버스(다인승 차량)의 이동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든 반면, 버스(다인승 차량)가 아닌 차량의 이동시간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제는 정부가 대중교통활성화를 통해, 고유가시대를 극복하고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전문가토론회-행정예고-공청회 등을 거쳐 지난 7월 1일부터 시범운영 중이다.

더불어 국토해양부는 지난 4월 한국교통연구원을 통해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제 시행방안' 연구용역을 시행 중이다. 연구결과와 시범운영 실태를 토대로 의견수렴과 보완책을 마련한 뒤 오는 10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버스는 40분 줄고, 자가용은 60분 늘고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평일 버스전용차로제는, 오전 6시부터 밤10시까지 오산 나들목에서 서울 한남대교까지 44.8㎞에 걸쳐 시행(9월까지 시범실시)중이다. 경기도를 기준으로 보면 오산·기흥·수원·판교 나들목 및 신갈·판교 분기점을 통해 경부고속도로로 진출·진입하는 차량들이 버스전용차로제 주요 적용대상이다.

편도 4차로인 해당 구간에서 버스차량과 비(非) 버스차량의 이동시간 변화는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자잘하게 5분~10분 정도의 변화가 아니었다.

버스로 이동할 경우, 10~20분(수원·용인 출발 버스)에서 30~40분(화성·오산 출발 버스) 등 큰 폭으로 시간이 감소했다. 반면, 비 버스차량은 동일한 구간이 20~40분에서 40~60분 정도 더 걸렸다. 비 버스차량의 이동시간이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가용을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물론, 크건 작건 화물차를 운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반발 등이 이어졌다. 특히 화물차 운전자들의 분노가 매우 거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언론은 평일 버스전용차선제가 대중교통 이용객 증가 효과는 크지 않고 승용차 이용객들의 불편만 가중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자가용파] "대중교통 못 타는 사람은 어쩌라고"

버스가 아닌 자가용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실제적 현실을 도외시한 졸속행정'이라며 국토해양부 및 한국도로공사 측을 비난했다. 버스로 모든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선 배차간격도 길고 러시아워에 많은 사람이 몰려 안전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버스로 몰아가려고만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수원시 정자지구에서 서울 잠실 직장에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윤아무개씨(47)는 "직장을 옮긴 후 서울로 이사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서울 집값도 비싸고 애들도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맨 처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다"면서 "그러나 25분이 넘는 배차 시간, 화물 짐짝처럼 이동하는 상황을 2개월 겪으며 요즘은 그냥 자가용으로 다닌다"고 밝혔다.

용인시 신봉지구에서 서울 용산으로 자가용 출퇴근하는 최아무개씨(32)는 "3개월간 참아가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해봤지만 모든 것이 마이너스였다"면서 "길은 막히고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으면서 사람도 많고, 몇 번씩 갈아타 회사에 도착하면 파김치 상태로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고 대중교통 출퇴근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씨는 곧 용인 집을 전세놓고 전세금으로 용산 인근 상도동의 작은 빌라로 이사할 계획이다.

이들은 평일 버스전용차로 시행이 대중교통의 다른 문제점으로 인해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강남역 3번출구 인천·안산·수원 방향 버스정류장강남역 3번출구 인천·안산·수원 방향 버스정류장에는 평일 퇴근시간이면 인천방향(9100, 9200, 9300), 수원방향(3000, 3001, 3003, 3007), 안산방향(3100, 700) 노선을 기다리는 줄이 각각 형성되어 줄마다 50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 있다. 이러한 지옥같은 퇴근길을 피하고자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 이준혁


[버스파] "대중교통 우대 당연... 화물차 보완대책은 필요" 

반면,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경부고속도로의 평일 버스전용차로제에 대해 더욱 확대할 것을 원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들은 "대중교통이 모든 목적지까지 직접 못 닿는 상황에서, 목적지 인근 주요 거점이라도 빠르게 이동해야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입장이었다.

오산시 운암지구에서 서울 강남 직장으로 5300번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이아무개(33)씨는 "대중교통 우대는 당연하다"라면서 "최근 일부 언론에서 왜 전용차로가 부작용이 있다고 말하는지 의문이다, 교통정체·고유가 등을 감안하면, 당연히 대중교통을 우대해야 한다, 화물차에 대한 대책 정도만 보완해주면 된다"라고 말했다.

용인시 동백지구에서 서울 도심의 직장으로 5000번 직행좌석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정 아무개(37)씨는 "본래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입석 승객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출·퇴근 시각에는 강남 방향이건 도심 방향이건 직행좌석버스마다, 입석 승객을 포함 한 대에 보통 60명 정도 타고 다닌다"고 전했다.

그는 "버스 1대에 60명이 타고 가면 자가용 60대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나마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선제 실시로, 버스로 출퇴근하는 것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정책 설정은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문가] "지선버스로 승객 모아 광역버스에 태우자"

이처럼 심각한 논란이 되고 있는 경부고속도로의 평일 버스전용차로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공공교통을 우대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한다. 문제가 있으면 보완을 해야지 축소·폐지 등으로 제도의 근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버스전용차로제는 대중교통 우대 원칙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라도 반드시 유지·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씨는 "버스전용차로제를 시행하면 수송력이 높은 차량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도로 전체의 수송력이 높아지게 된다, 문제는 일반차로의 속도가 떨어져서 수송력 증대를 상쇄시키거나 심지어 도로 전체 기준의 수송력을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경우인데 이 부분은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의견을 표했다.

이와 함께 "버스전용차로제로 일반차로의 차량 속도가 무조건 늦어진다고 보는 것은 교통시스템 특성을 무시한 주장이다"며 "교통시스템은, 입력에 따라 출력이 나오는 불변의 시스템이 아닌 입력의 변화가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특수한 성질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현재처럼 일반차로가 막히면 자가용 이용자들은 점차 공공교통으로 이동할 것이고, 이로써 일반차로는 속도 급저하를 극복해 효율적 버스운영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재 논란에 대해 "시행 초기의 문제점을 과대포장한 일부 언론에 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 전문가는 "일부 언론이 주변 정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부정적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논란을 지나치게 확산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작용의 근거로 드는 것이 '버스승객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방학·휴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기간에 승객이 늘어났다는 것이 효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고 지적했다.

또한 "향후 판교·광교·동탄2·병점·세교 등이 개발되는 상황에서 강제로라도 자가용 이용을 줄이지 않으면 경부고속도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택시 및 생계형 영업용 차량에 대한 보완은 필요하지만 버스전용차로제 축소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대중교통시설의 현주소서울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많은 동서울터미널(강변역) 인근의 과거 사진. 현재 이곳 일대는 개선작업이 완료되었지만, 아직 절대다수의 지역은 대중교통과 관련된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이처럼 대중교통에 대한 적극적이지 못한 투자가 시민들을 대중교통에서 멀어지게 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이준혁


그렇다면 경부고속도로 축의 대중교통망 개선을 위해 어떠한 후속 대책이 있어야 할까? 많은 대중교통 전문가들은 ▲광역버스 간지선제와 통합환승 ▲신도시 건설시 개발이익금 일부를 대중교통에 반강제로라도 투자하도록 하는 대책 마련을 꼽는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씨는 "버스전용차로의 용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버스를 더 많이 투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 2004년도 중앙버스전용차로 첫 도입 때 경기도 좌석버스들에 의해 벌어진 '버스기차'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며 "경기도 좌석버스들이 중앙차로를 탈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중앙차로 용량을 감안, 증차·증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좌석버스의 경우 출퇴근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도 낮 시간에는 10명도 못 채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버스회사들이 증차를 망설인다"면서 "승객들을 신도시 중심 환승센터에서 지선버스로 모은 뒤 광역버스에 모아태워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광역버스 간지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경우 개별광역버스 간 통합으로 운행거리가 짧아져서, 배차시간이 짧아지고 수송력은 높아지며 운행원가가 절감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는 "대용량·급행·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를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 신도시 건설시부터 개발에 따른 이익금은 물론 별도의 비용을 걷어서라도 일대 교통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우 대중교통의 중심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오염물질 배출이 거의 없는 철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포의 김포한강신도시를 건설하며 분양가로 1조원 정도의 교통시설 건설비용을 만들어 철도시설을 건설하려고 하는데, 향후 신도시 건설은 이러한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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