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후진타오보다 네팔 청년들이 더 반가웠던 까닭은?

네팔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광주 방문하던 날

등록|2008.08.27 14:11 수정|2008.08.27 18:12

▲ 네팔 자원활동가 그룹 '행복한 진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이 25, 26일 광주를 방문했다. ⓒ 이주빈



<오마이뉴스> 창간 초기에 오연호 대표기자가 시민저널리즘을 설명하면서 빠트리지 않는 사례성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부시의 방한과 시골 어머니의 상경 중 나에게 소중한, 새로운 소식은 무엇인가?'였다.

25일 아침 나는 광주역에서 이제는 조금은 촌스러워진 오래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며 행복해 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방한과 네팔 청년들의 광주 방문 중 나에게 소중하고 새로운 소식은 무엇인가?'

당연 네팔 청년들의 광주방문이었다. 나는 이 친구들과 지난 5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처음 만났다. 네팔 엔지오 품(Nepal NGO PUM, 대표 심한기·앙 장부 세르파)이 주최하는 '한국-네팔 청년문화 실천워크숍'에서였다.

그들은 청년들의 정치운동이 센 네팔에서 문화로 지역운동을 시도하는 '행복한 진동(Happy Vibration)' 소속이다. '행복한 진동'은 네팔 엔지오 품이 운영하는 자원활동가 그룹으로, 품의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는 네팔 엔지오 품이 진행하는 마을 학교를 살려내면서 마을공동체를 복원시키는 사업이다. 품은 1차 워크숍이 열렸던 지난 5월부터 네팔 모노허라 지역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마을 청년들이 스스로 '방과 후 학교'를 꾸리는 등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주민들을 원조와 시혜의 대상이 아닌 변화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사업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

'행복한 진동' 친구들의 이번 한국 방문도 '한국-네팔 청년문화 실천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1일 입국한 네팔 청년들은 경기도 안산 원곡동에 있는 전시공간 리트머스에서 '주인으로서의 손님'이라는 주제로 오는 29일과 31일 아카이브 전시회를 함께 할 예정이다.

오전 10시 30분 광주역 개찰구에 낯익은 네팔 청년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앙 상게 세르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친구는 지난 1월에 나와 함께 랑탕히말라야를 걸었다. 그리고 딥말라, 적어도 내가 보기엔 가장 열정적인 자원활동가다. 제 이름보다 슈퍼맨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라젠드라, 언제나 말없이 웃는 람, 록 밴드에서 활동한 치락….

카트만두에서 상근하고 있는 이하니씨도 함께 왔다. 그리고 지난 5월에 실천워크숍에 함께 했던 사진작가 임지은, 다큐멘터리 작가 김판중, 그림 그리는 김범준씨도 네팔 청년들의 남도 나들이에 함께 했다.

▲ 광주 망월동 5.18 구 묘지 입구에 있는 부서진 '전두환 민박 기념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 이주빈


▲ 장성 백양사에서 법일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있는 네팔 청년들. ⓒ 이주빈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난 이들에게 '오늘의 광주, 오늘의 남도 속에 깃든 한국'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현재진행형인 5.18을 얘기해주고 싶었고, 한국인들의 밑바닥 정서를 흐르고 있는 한국 불교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5.18 국립묘지와 5.18 옛 묘역, 옛 전남도청 등 오월항쟁 유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네팔 청년들은 숙연했다. 지난 5월 200년 왕정을 종식시킬 때까지 네팔 역시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 컸기 때문이다.

라젠드라는 항쟁의 근거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둘러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내게로 오는 것이 느껴졌다"며 "네팔에 돌아가서 광주의 오월과 네팔의 민주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딥말라도 "네팔도 광주와 같은 아픔을 겪었다"면서 "한국이나 네팔, 또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슬픈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회를 말했다.

광주에서 5.18유적지 순례를 마친 네팔 청년들은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템플 스테이(Temple Stay)를 하며 한국 불교를 체험했다. 백양사 템플 스테이는 저녁공양과 예불, 불교 명상, 법일 스님과의 차담(茶談), 암자 순례 등으로 진행됐다.

힌두교 신자가 태반인 네팔이지만 티베트 불교 신자도 있다. 특히 세르파족인 상게는 불교신자여서 백양사에서의 일정을 매우 즐거워했다. 상게는 "한국 불교는 명상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다"면서 "매우 즐거운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법일 스님과의 차담에서 치락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한가지인데 마음 속에선 여러 가지가 논다"며 "어떻게 해야 하나"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법일 스님은 "누구에게나 번민은 있는 법"이라면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좋은 벗들과 관계를 이어가면 그 속에서 번민을 깨칠 힘이 생긴다"고 답했다. 또 스님은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면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라면서 "마음 속에 화두 하나씩 담고 네팔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6일 서울로 간 '행복한 진동' 친구들은 29일과 31일 아카이브 전시회를 마치고 오는 9월 2일 네팔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들이 네팔에 돌아가서 또 어떤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을지 기대된다.

▲ 광주의 한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먹고 있는 네팔 청년들. ⓒ 이주빈


▲ 5.18항쟁 본거지였던 옛 전남도청에서 당시 시대상황을 설명듣고 있는 네팔 청년들. 재즈평론가 나의승씨는 이들과 동행하며 광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 이주빈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