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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일본 음악? "아니죠"

살롱 라우리안 주인장 안준모 안양포럼에서 '뽕짝예찬'

등록|2008.08.27 16:53 수정|2008.08.27 16:53

▲ 라우리안 주인장 안준모 선생 ⓒ 이민선


"뽕짝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한 회원이 "뽕 하고 짝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안준모 선생 강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안 선생은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작은 살롱 '라우리안' 주인장이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안양 모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다.

안 선생은 며칠 전 학교에 사표를 냈다. 그동안 꿈꿔왔던 '하고 싶은 일'만 하기 위해서다.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직은 얘기 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날 강연은 안양포럼에서 주최했고 안준모 선생은 강사로 초빙됐다. 강연 주제는 '노래로 읽는 근현대 사회 문화사'다. 안 선생은 뽕짝이 일본 음악이 아닌 우리 음악이라 강조했다.

"서양 음계는 7음계로 이루어 졌습니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레와 시를 뺀 5음계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일본 음악 특징은 느린 템포는 굉장히 슬프고 빠르면 저돌적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음악은 동요에서 군가까지 모두 이 5음계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뽕짝은 레와 시가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결국 일본 음악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말하며 안 선생은 아코디언으로 아리랑을 일본 음악(레와 시를 빼고)처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와 함께 '아~' 하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무엇인가 표현 할 수는 없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안 선생에 따르면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뽕짝'이 일본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층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측이 공존한다고 한다. 안 선생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문화는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것이기에 일본 노래라는 느낌이 좀 나더라도 덮어놓고 터부시 할 필요는 없다고 안 선생은 말한다.

"근대가요 작곡자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음악을 배운 분들입니다. 당연히 영향은 받았겠죠. 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일본 가요하고 비슷하게 나왔겠고.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나온 노래 가사는 다분히 민족적이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뽕짝'이 사랑 타령으로 흐른 것은 1970년대 이후입니다."

▲ 안양포럼 ⓒ 이민선


이렇게 말하며 안 선생은 '황성옛터'라는 노래를 소개했다. 황성옛터는 느린 3박자 슬로우 왈츠 리듬으로 5음계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단조 가요곡이다. 가사는 표면상 고려 왕조 멸망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은 일제에 의해 망한 조국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로 유명한 '목포의 눈물'도 민족적인 저항을 담은 노래다. 가사가 민족적인 저항시이기 때문이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에서 3백년이란 임진왜란에서부터 일제 침략기까지의 3백년을 지칭한다. 또 이순신 장군이 노적가리를 쌓아 왜적들을 속여 승리했던 역사적 사실을 표현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동요에서도 저항 정신을 엿 볼 수 있다고 안 선생은 전한다. '오빠생각'이 대표적이다. 작곡가 박태준은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라는 최후 구절을 작곡 할 때 떨어지는 눈물로 오선지를 다 적셨다고 회고했다.

해방 소식은 없고 가혹한 시련만 더해지던 당시 아픔이 은유적으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동요 '오빠생각'은 집나간 오빠를 기다리듯 해방의 그날을 간절히 바라던 당시 우리민족 희망가였다.

안양 포럼은 8월26일 오후 7시에 경기도 군포시 '산화랑'에서 열렸다. '산화랑'은 중년 화가 부부가 10년 전부터 일구어온 자연과 함께 하는 문화 예술 체험 공간이다.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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