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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왕은 신하를 생매장한 폭군이었다?

[서평] 이한의 <다시 발견하는 한국사>를 읽고

등록|2008.08.29 17:36 수정|2008.08.29 20:07
역사에 정답이 있을까? 웬 쌩뚱맞는 질문이냐고?

조금만 생각을 돌려보면 역사란 게 이현령비현령식이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인데 그 해석은 여러 가지다. 최근에 벌어진 한미FTA나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촛불 시위를 보더라도 처한 위치에 따라서 그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역사는 지금껏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고 정리되어 왔다. 또 배워왔고 그렇게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기록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록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사금파리 조각처럼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는? 사실 교과서 속 역사는 대부분의 사실의 기록들이다. 그런데 그 사실의 기록들이란 게 앞서 말한 진실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교육을 받을 때 그 내면의 숨겨진 이야기보단 연표 기록을 중심으로 배운다. 또한 의문을 갖지 않는다.

▲ <다시 발견하는 한국사> 이한 지음 / 조진옥 그림 ⓒ 뜨인돌


예를 들어 고대인은 목에 청동 거울을 달고 다녔다고 배운다. 하지만 왜 청동 거울을 목에 걸고 다니고 그 청동거울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를 아는 데는 소홀하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 책이 있다. <다시 발견하는 한국사>(이한 지음, 조진옥 그림, 뜨인돌 펴냄)다.
이 책은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 무늬만 통일이고 실상은 분단인 남북국시대(신라와 발해)와 고려시대에 있어서 평소 궁금해 했던 역사적 의문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나 시각들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저자가 주로 던지고 있는 질문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이런 것들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보다 낙랑이라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까닭은? 우리는 흔히 거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고구려라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론 삼국보다 낙랑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그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망한 이후 고조선 지역엔 한 사군이 설치되었다. 낙랑도 그 하나다. 그런데 중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도 낙랑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삼국이란 이름보다 낙랑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 암수 서로 정답구나 / 외로워라 이 내 몸은 / 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다. '공무도하가'와 함께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작품으로 알려진 '황조가'의 유리왕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저자는 유리왕은 왕 노릇도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임금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주몽>에선 유리는 꽤 능력 있는 인물로 그려졌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외국과의 관계는 늘 저자세로 일관했다. 자식들과도 불화가 지속되어 여러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또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세운 협보를 비천한 자리로 강등시겼다. 사냥이나 다니고 국정을 돌보지 않은 자신에게 충고했다는 이유다. 또한 제사를 지낼 돼지의 몸을 상하게 했다고 신하를 생매장해 죽이기도 했다. 일종의 독재 권력을 휘두른 폭군이었던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인물들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힘으로 몰아붙이는 격이다.

고구려의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긴 것도 저자는 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성 천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황조가'는 단순히 실연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어떤 국내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한탄만 하는 유리왕의 자책성 노래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밖에도 독자들이 평소에 의문을 가지고 있거나 뭔가 미흡하게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도 사료와 저자만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이런 것들이다.

백제의 토성인 풍납토성에서 고구려 유물이 다수 발견된 까닭은 무엇인가? 일설에 수백 년 뒤 고구려 패망이 장수왕 탓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화랑 중에 동성애자가 많았다는데, 과연 사실일까?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정지상의 유령에게 살해당했다는 게 사실일까? 고려의 공녀로 원나라에 보내졌다가 원나라의 황후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악녀였을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와 퍼뜨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인다. 고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고여 있지 않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연산군과 함께 폭군으로 알고 있던 광해군이 사실 중립을 통해 실리외교를 펼친 군주로 새롭게 조명 받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또한 역사는 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호흡한다. IMF, 한국 최초의 우주인,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 한미 FTA 그리고 촛불 시위…. 이러한 것들도 얼마 후면 역사라는 이름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나 시각은 고정되지 않고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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