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영어가 더럽히는 삶 (47) 시스템

[우리 말에 마음쓰기 412] '괜찮은 시스템', '1학기와 같은 시스템' 다듬기

등록|2008.08.30 17:42 수정|2008.08.30 17:43
ㄱ. 괜찮은 시스템

.. 다 먹고 나면 남는 것이라고는 돌멩이 몇 개뿐이다. 설거지할 그릇도 없었다. 그러니까 썩 괜찮은 시스템이었다 ..  《루터 스탠딩 베어/배윤진 옮김-숲속의 꼬마 인디언》(갈라파고스,2005) 124쪽

북미 토박이가 쓴 글을 우리 말로 옮긴 책입니다. 이 북미 토박이가 쓴 글은 영어로 되어 있었을 테니 ‘시스템’이라는 낱말을 썼을 테지만,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길 때에는 다른 낱말로 옮겨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 시스템(system) :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   따라 조합한 집합체
 │
 ├ 썩 괜찮은 시스템이었다
 │→ 썩 괜찮은 방법이었다
 │→ 썩 괜찮은 짜임새였다
 │→ 썩 괜찮은 일이었다
 │→ 썩 괜찮았다
 └ …

‘방법-짜임새-구조’ 같은 낱말로 담아내면 좋겠다 싶습니다. 아니, 그동안 우리들은 이와 같은 낱말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썩 괜찮았다”나 “썩 괜찮은 노릇이었다”로 담아내도 어울립니다.

수우족 사람들이 고기를 익혀 먹는 방법을 들려주는 대목이었는데, 들소 위장에 고기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달궈서 뜨거워진 돌멩이를 하나씩 넣으면서 익혀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기를 익혀서 다 먹은 뒤에는 냄비처럼 쓰던 들소 위장까지 남김없이 먹었답니다. 이렇게 하니 버리는 것, 쓰레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돌맹이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니 ‘썩 괜찮은 시스템’이 아니냐 하고 말합니다.

가만히 보면, ‘시스템’이라는 낱말은 미국말이라는 생각보다는, 일찌감치 토박이말로 자리잡힌 낱말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참 널리 쓰고 있는 미국말 가운데 하나이니, 이제는 나라밖 말이 아닌 들온말처럼 다루어도, 아예 토박이말로 삼아도 괜찮지 않느냐 이야기할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더구나, 요새는 웬만한 물건, 문화, 시설을 가리키는 말로 거의 다 미국말로 이름을 붙일 뿐 아니라, 알파벳으로 적바림하고 있으니, 몇 해만 더 지나면 참으로 많은 미국말이 우리 토박이말에 스며들리라 봅니다.

문화는, 주기만 하지도 않고 받기만 하지도 않으니, 우리가 쓰는 말도 토박이말만이 아니라 바깥말을 들여와서 함께 쓸 수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말도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나라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면서 쓰는 말은 나쁘지 않습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전부터 써 온 말이 있다면, 또 우리 삶과 사회와 문화를 담아내는 말이 넉넉하게 있다면, 굳이 바깥에서 새로운 말을 더 들여올 까닭이 있을까요.

우리한테 없거나 모자라다면 차근차근 살펴서 알맞게 들여오면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는 미국말은 얼마나 쓸모가 있어서 들여온 낱말인가요. 우리 말이 얼마나 ‘모자라거나 없거나 형편없다’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말인가요. 지식 자랑으로 쓰는 말은 아닌지요. 괜히 갖다 붙이는 말은 아닌가요. 영어권에서 쓰는 말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고대로, 고스란히 써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ㄴ. 1학기와 같은 시스템으로

.. 2학기에도 1학기와 같은 시스템으로 희원이 학교생활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창교-마이너리티의 희망노래》(한울림,2004) 99쪽

“희원이의 학교생활”이 아닌 “희원이 학교생활”로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토씨 ‘-의’를 엉뚱하게 끼워넣지 않는 말투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 1학기와 같은 시스템으로
 │
 │→ 1학기와 같이
 │→ 1학기 때 한 것처럼
 │→ 1학기 때 했듯이
 │→ 1학기와 같은 틀로
 │→ 1학기와 같은 방법으로
 └ …

흔히 쓰며 입에 굳은 말은 떼어내기 어렵습니다. 말뜻을 생각하며 쓴 말이라기보다 ‘세상사람들이 으레 쓰는 말’이기에 자기도 따라서 썼다고 하는 말 또한 입에서 떨어뜨리기 힘듭니다. 어쩌면 유행처럼 쓰는 말이기 때문에 새로운 유행이 찾아오면 저절로 자취를 감추는 말인데, 새로운 유행으로 쓰이는 말은 얼마나 알맞고 깨끗하고 좋은 말일까요.

이 자리에서는, “2학기에도 1학기와 마찬가지로 희원이 학교생활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예부터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교사가 부모한테 했던 말도 이런 말투였습니다. “1학기와 같이”, “1학기 때 그런 것처럼”, “1학기 때 했듯이”, “1학기 때 그대로”처럼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투를 왜 멀리하고 ‘시스템’을 곁들여서 쓸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시스템’이기 때문인가요.


ㄷ. 시스템은 그런 꼴

.. ‘왜! 돈 적어, 일하기 싫어? 그럼 관둬! 다음!’ 비록 그들이 이런 말을 그대로 내뱉진 않았지만 최소한 시스템은 그런 꼴이었다 ..  《이유경-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월간 말,2007) 22쪽

‘최소한(最小限)’은 ‘적어도’로 다듬어 줍니다.

 ┌ 시스템은 그런 꼴이었다
 │
 │→ 짜임새는 그런 꼴이었다
 │→ 얼거리는 그런 꼴이었다
 │→ 그런 꼴로 돌아갔다
 │→ 그런 꼴로 움직였다
 │→ 그런 꼴로 이루어졌다
 └ …

보기글을 곰곰이 헤아려 보니, ‘시스템’을 다른 낱말로 다듬지 않아도 괜찮을 듯합니다. “비록 그들이 이런 말을 그대로 내뱉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런 꼴이었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살을 붙인다면 “그런 꼴로 돌아갔다”나 “그런 꼴로 움직였다”나 “그런 꼴로 느껴졌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