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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일 냉동된 시신, 그리고 '코리안드림'

[동포아리랑 ⑥-①] 414일간 안치됐던 재중동포 한재준씨의 장례식

등록|2008.08.31 21:55 수정|2008.08.31 21:55

▲ 자식에 의해 버려진 뒤 414일간 장례식장 냉동고에 안치됐던 재중동포 고 한재준씨의 장례식이 지난 8월 27일 진행됐습니다. ⓒ 조호진


한국에 가면 한 몫 건질 수 있다는 돈 광풍이 불면서 연변과 목단강이 출렁거렸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조선족은 물론 산간벽촌의 농민 등 너나할 것 없이 고리사채 빚을 내서 한국으로 직행했습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러시아 시베리아·동남아 어디든지 가는 마당에 말 통하는 할아버지의 조국, 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면 어절씨구 춤추면서 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코리안드림'을 안고, 밀항선에 실려서도 갔고 위변조 여권을 들고서라도 갔고, 버젓이 내외 하는 남편과 이혼한 뒤 브로커를 통해 혼인비자를 얻어서라도 갔고, 어린 자식 두고서도 갔고, 늙고 병든 어머니·아버지를 두고서도 갔습니다.

온갖 수모와 냉대를 참았습니다. 몸이 골병 들지라도 악착같이 일해서 돈 벌었습니다. 다시는 가난하지 않으려고,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참고 참았습니다. 번 사람은 꽤 벌었습니다. 한국에서 한 달만 벌어도 중국에서 일고여덟 달치를 벌 수 있으니, 고리사채를 내고서라도 한국에 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금 목걸이도 걸치고 두 손 가득 선물꾸러미 들면서 금의환향 했고, 연변에 하얼빈에 집 한 채도 장만하고, 번듯한 가게도 차렸습니다.

이러려고 한국 오셨습니까

그런데 돈독이 가족을 흔들고 가정을 해쳤습니다. 남보란 듯이 살만해지면 가족과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자가 되면 뭐합니까. 자식은 부모를 돈 대주는 일꾼으로 알기 일쑤고, 부모는 자식을 팽개치고, 돈벌러 간 부인과 남편은 서로 바람나서 딴 살림을 차리고, 술에 취해서 길에 쓰러져 눕고, 동포가 동포를 밀고 해서 강제추방당하게 하고….

이 몹쓸 세상을 보자고 한국에 왔습니까? 그래, 이렇게 해서 잘살면 뭐합니까?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고 천륜마저 끊으면서, 돈방석에 앉으면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한재준 할아버지, 자식 앞세우고 한국을 찾아올 때 설마 자식에게 버림받을 줄 꿈에나 생각 하셨습니까? 병든 아버지로 인해 돈벌이 하지 못하는 자식 내외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돈 벌어서 모시러 갈 테니 얼마간만 참아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 버려두고 갈 때 그게 유기로 변할 줄은 모르셨겠지요. 암암, 그랬을 겁니다. 설마 내 자식이 부모를 내 버리는 천륜을 어긴 불효자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를 꼭 데리러 온다는 그 약속을 철썩 같이 믿었는데 자식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냉동고에 누워있는 당신을 한시 바삐 하늘나라로 보내려고 휴대폰 전화를 어렵게 알아내 "아버지의 장례는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례비 50만원 정도만 준비해주세요"라고 음성녹음까지 했는데, 당신의 자식은 전화번호조차 바꿔 버렸습니다.

"아버지 장례는 치르자" 음성 메시지 남겼지만

하늘이 정하여 준 부모-자식 간의 천륜마저 저 버리는 불효의 '코리안드림'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가족과 가정을 파괴시키는 미친'코리안드림'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동포가 동포를 밀고하고 주먹질 하게 하는 '코리안드림'은 사라져야 합니다. 나도 못 믿고 너도 못 믿는, 그래서 세상을 불질러 버리고 싶은 불신과 원망과 분노의 '코리안드림'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피해자입니다. 나라 뺏긴 채 유랑민으로 떠돌게 한 역사의 피해자이고, 부모 자식도 못 알아보게 한 불효시대의 피해자이고, '오직 돈만 벌면 된다'는 한탕주의의 피해자이고, 곁에서 죽어가는 동포를 보고도 외면하게 하는 냉정한 세상의 피해자입니다.

모두는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불효시대와 한탕주의와 냉정한 세상에 같이 장단을 맞추었으니 말입니다.

한씨 할아버지, 천륜마저 끊어버리게 한 불효의 세상을 어서 떠나세요. 아버지를 외면한 죄 때문에 고통받는 아들 걱정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하늘 아버지의 품에 안기세요.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시거든 동포가 동포를 사랑하며, 민족이 민족을 서로 돕고 격려하며 사는 아름다운 민족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 이날 재중동포들이 상주를 대신해서 눈물도 흘리고, 운구도 했습니다. ⓒ 조호진


다시는, 조국도 자식도 기다리지 마세요!

재중동포 고 한재준 할아버지 장례식이 지난 8월 27일 서울장례식장에서 진행됐습니다. 상주도 유가족도 없는 장례식이었습니다. 그 빈 자리를 재중동포들이 대신 했는데, 자식에게 버림받은 할아버지의 사정이 딱해서도 울고, 할아버지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도 울었습니다.

고인은 2002년 9월 아들 내외와 함께 한국에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풍으로 쓰러진 2006년 2월 며느리에 의해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버려졌습니다. 이듬해 7월 7일 병사했지만 유가족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414일간 서울장례식장 냉동고에 안치됐던 것입니다. 시신 안치료가 4842만원에 달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의 시신을 거두어주는 서울장례식장 대표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은 장례를 위해 1년 2개월 동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주한 중국대사관은 유가족 동의 없이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고인은 한 핏줄이지만 엄연하게는 중화인민국공화국의 공민이기 때문에 한국의 인권단체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처리해 드리려고 해도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공민의 죽음을 거두려는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인도할 테니 당신들이 책임지고 처리하라"는 최후통고를 하고서야 "시신을 대신 처리해달라"는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올림픽은 성대하게 치르는 공화국이었지만 자국 공민의 죽음을 거두어주는 데는 충분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공화국이었던 것입니다. 

▲ 벽제승화원에서 화장 된 고인은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에서 운영하는 '안식의집'에 안치됐습니다. ⓒ 조호진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으로
남부여대 식솔로 쫓기고 쫓기다
오도 가도 못하고 머문 땅
중화인민공화국 흑룡강성 오상현
그 나라는 태 묻을 모국 아니요.
그 나라는 뼈 묻을 조국 아니요.

아비가 죽으면서 유언한 나라
죽고 또 죽어서라도 묻히고 싶다던
할아비와 아비가 살다 죽어간
그토록 그리웠던 땅 조국
뼈가 삭고 살이 썩어지도록 서럽던
타국살이의 슬픔을 내려놓고
자식 내외 앞세우고 찾아온 조국

그 토록 오매불망 하던 조국 땅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칠순의 당신은
자식에게 버림당한 뒤 혈혈단신이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조국은 당신에게 등 돌렸고
인민의 나라는 당신의 죽음을 외면했습니다.
퀭한 눈으로 유기한 자식을 기다리다
기어코 눈 감은 그해 칠월 칠석엔
노둣돌도 오작교도 놓이지 않았고
두 눈 감겨줄 안수도 없었습니다.

상주도 없이 조국도 없이
인민도 국민도 아닌 유랑민으로
꽁꽁 언 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한씨 할아버지, 어서 어서 가십시오.
미련 두지 말고 잘 가십시오.
부디 부디 잘 가셔야 합니다.
남부여대의 고단한 삶도 없는 나라
유기와 병고와 목 메인 기다림도 없는 나라
꽁꽁 언 냉동고 안치실이 더 이상 아닌 나라
그 평온하고 따뜻한 하늘나라
아버지의 품으로

조시 '다시는, 조국도 자식도 기다리지 마세요! - 유랑민(고 한재준 할아버지 영전에')

고인은 이 날 벽제승화원에서 화장됐습니다. 414일간의 냉동고에 누웠던 고인의 시신은 2시간 만에 재로 변했습니다. 꽁꽁 언 채로 누웠던 그 기나긴 시간이 화로를 타고 들어가더니 뜨겁디뜨거운 불에 의해 일순 사라진 것입니다.

행방을 감춘 아들을 대신해서 고인의 유해를 안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를 유기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갈 아들 내외가 생각났습니다. 천륜마저 저버리는 몹쓸 코리안드림이 생각났습니다.

유해는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에서 운영하는 '안식의집'에 안치했습니다.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를 아들을 위해 고이 모시고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다음 블로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호진 기자는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이 운영하는 중국동포상담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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