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왜정 때부터 권력의 시녀 정권 때마다 나는 감시대상이었다"
[인터뷰] 전투기 굉음과 맞선 '길 위의 신부' 문정현
▲ 문정현 신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촛불 시국미사 뒤에는 세상에 알리지 않고 일본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일본에서 매일 하루 4시간씩 학원을 다녔다.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있는 동북아 3국에서, 민중 문화교류를 통한 아시아연대야말로 동북아 평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게다.
일본 사회운동가들이 촉매가 됐다. 민중 문화교류를 위해 일본 사회운동가들 사이에 한국말 공부 바람이 분다는 걸 알고, 노령의 은퇴 신부가 먼저 책을 펴고 히라가나와 가다카나를 외우기 시작했다. 요즘은 '일본어 인강(인터넷 강의)'에 흠뻑 빠져있다.
지난달 29일 군산 옥서면 옥봉리에 새 둥지를 튼 '평화바람' 사무실에서 문정현 신부를 만났다. 미군 F15 전투기가 이따금씩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시끄러울 게 전혀 없는 한적한 마을에서 문 신부와 마주했다. 이명박 정부 6개월과 진보진영의 역할, 최근 근황 등을 물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은퇴했지만, 투쟁 현장에서는 늘 '현업'인 문 신부의 요즘 생활을 들어보자. 다음은 문 신부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정권 바뀌어도 늘 감시대상, 이제 맘놓고 하는 것"
- 얼마 전 전북경찰청 정보과 종교담당 형사가 신부님의 근황을 물었다.
"유신 때부터 하도 사찰을 많이 받아 놀라지도 않았다. 직접 경찰 직원들이 붙어 다녔다. 5~6년간 항상 따라다녔던 경찰이 있는데, 내가 따돌리고 어다 가있으면 금세 40~50명의 경찰이 나타날 정도였다. 수시로 내 방을 드나들고 감시했다. 정말 긴 세월 감시를 받아왔지만, 지난 10년간은 직접 대놓고 감시당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내가 정부의 감시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 이명박정부가 왜 감시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나.
"전북경찰청이 아주 이례적으로 그런 게 아니다. 익산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내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작은자매의 집'을 휘젓고 다닌 적도 있었다. 경찰 순찰차가 수시로 순찰한다. 옥서파출소장은 대놓고 내 방문 앞까지 들어왔었다.
그동안 경찰이 민주화의 힘 때문에 드러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명박정부가 됐으니 맘 놓고 하는 것이다. 색소탄 쏴서 아무나 잡아가고, 인터넷에서 조중동 광고중단 소비자운동 했다고 구속하지 않나. 지금 그런 지경이다."
- 이명박 정부 6개월, 민주화의 성과가 허물어지는 것 아닌가.
"원래 권력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노무현정부 때 대추리에서 군대까지 동원하는 걸 봤다. 그렇지만 촛불집회의 정당성이 살아있는 한 무력으로는 안 된다. 일단은 덮어질지 모르나 오래 못 간다. 민주주의는 늘 그런 희생을 딛고 계속 일어섰다."
- 왜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보나.
"왜정 때 고등계 형사를 정리하지 못한 탓이다. 일제시대 경찰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온 게 문제다. 경찰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계속 했다. 장면 정권 넘어 박정희 집권 뒤에는 '절대 시녀'였다. 온갖 나쁜 짓 다 했고 불법으로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죽이고 고문했다. 민주화 됐을 때도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또 새로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으니까.
김대중-노무현 민주정권 10년간, 독재 유산을 정리했어야 했는데 결국 못하고 또 넘어왔다. 권력의 맛을 본 민주정권 사람들도 그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꼴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사문화됐다고 그냥 뒀지만, 지금 어떤가. 또 살아 꿈틀대고 있다. 생각해봐라. 어청수 경찰청장? 노무현정부 때 발탁된 인물이다. 그런데 이 사람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별별 무리한 짓을 다 하고 있다. 결국 백성을 위한 경찰이라고 볼 수 없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유성호
"죽어가는 시민사회, 과오를 잘 생각해봐라"
- 최근 검경의 무리한 촛불수사로 시민사회가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진보세력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칭 '진보정치인'들 잘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날 나의 과오가 없었는가. 내가 썩어야 새 생명이 나온다는 철학을 갖고 일했는가. 혹시 당파에 연연해 분파주의에 빠지지 않았나 등등.
시민사회단체도 마찬가지다. 정부 돈 타 쓰면서 급진성을 잃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지난 대선 이후 '진보가 망했다'고 얼마나 절망했나.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길에 박힌 돌이 튀어나와 말한다'고 하더니, 이번 촛불이 딱 그 격이다. 여중생들이 촛불 든 게 이렇게 위력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나. 앞으로 진보의 여지는 있다. 유신 때는 절벽과 같았지만 지금 그 정도는 아니다. 한 발짝도 허용이 안 되는 그런 시기는 아니지 않나."
- 한나라당은 좌파정책을 우파정책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한나라당의 뿌리가 뭐냐. 박정희 유신,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이다. 그들에 대적해 10년간 정권을 빼앗아온 사람들이 좌파라면, 그들은 당연히 우파를 내세우며 정치한다. 그렇지만 유신 때처럼 운신의 폭이 좁은 건 아니다. 그간 이뤄놓은 일도 많다. 아직 꽃을 피우진 못했지만 여전히 그 성과는 우리 안에 남아있다.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 예전만큼 시민사회에 힘이 없지 않나.
"침체된 지 한참 됐다. 민주노총도 '60만 조합원 총파업' 운운했지만 제대로 된 게 몇 번이나 되나. 오죽하면 단체들이 진보연대를 다 하겠나. 이 때 엉뚱하게 길에 박힌 돌이 촛불을 든 게다. 나는 지난 6월 대한민국이 다 모였다고 본다. 87년 6월 항쟁 때도 그렇게 많이 못 모였다. 이명박 정부는 소방관이 불씨를 잡듯 완전히 촛불을 제거하려 할 거다. 그러나 쉽게 잡히는 불씨가 아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살아있는 불씨를 어떻게 끌 수 있나. 평생 못 잡는 불길인 거다."
- 이명박정부 5년 뒤에도 보수집권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미군 장갑차 사건 때 <LA타임스> 기자가 취재를 왔다. 촛불 반대집회에 갔더니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곳은 어떠냐고 물었다. 여긴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더라. 진보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야 한다. '보수정권' 운운하는 사람들 전부 일찍 세상 떠날 사람들이다. 지난 5월 촛불을 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10대 청소년들이다. 자라나는 세대를 어떻게 감당하겠나. 반드시 촛불이 꽃피게 돼 있다."
- 진보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동안 진보진영이 급진성을 유지했어야 옳다. 정치를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이 저쪽 손을 들어줬다는 것은 땅을 치고 반성할 일이다. 과거 아스팔트에 있다가 관으로 들어간 사람들, 지금 어정쩡할 게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제자리로 와야할 텐데 쉽지도 않을 게다. 결국 새로운 사람들이 어두움을 거둬내는 일에 앞장서야 진정한 새 날이 온다."
"여기서 삶 마감하겠다, 미군기지를 공원으로 만들고"
▲ ⓒ 장윤선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반대 투쟁을 하는 동안 군산 미군기지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 쪽 막는 동안 이 쪽이 활발히 진행된 거다. 이 곳은 공여지 문제가 심각하다. 국방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유보지'로 결정된 3300만㎡에 대해 미군이 요구하고 있는 걸로 안다. 미군 범죄와 기지 문제에 대한 상담소를 만들어 활동중이다.
나는 여기서 여생을 마감할 계획이다. 늘 내가 하던 주장대로 미군 기지를 국립공원으로 만들고. 외국군대가 남의 나라에 영구히 주둔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나가야 할 때 정확히 보고 '나가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리로 이사도 온 게다.
미군기지 주변은 일이 많다. 전화 제보도 꽤 있다. 가령 전투기가 떠서 토끼가 싹 죽었다 등등. 얼마 전 소음측정기도 샀는데, 이 곳은 97~100데시벨 된다. 사람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 신부님이 새로 정착하신 옥서면은 어떤 동네인가.
"미군과 관련된 역사가 많은 곳이다. 나 태어나기 전부터 군사 기지가 있었을 정도니까. 지금은 이라크와 아프간 파병 병사들이 주로 오는 모양이다. 더러 알코올중독 문제가 있는 병사들이 사고를 일으키는데, '빈 집 노인 성폭행 사건' 같은 것도 발생해 조사했다. 미국 본토에서 정신적 문제를 치료할 사람들이 도로 한국 오는 꼴이 되니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도 이라크처럼 분쟁지역이라 병사들이 1년씩 순환 배치된다."
- 6일 군산 평화대행진이 예정돼 있다.
"매년 하는 행사다. 이번엔 6일 오후 2시 군산시 남수라마을에서 한다. 새만금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화대행진이다. 이 곳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 다닌다. 전투기가 뜬 뒤에는 서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다. 굉음이 아주 심각하다. 그 문제를 전국에 알리는 평화행사다.
우리는 군산이 미군에 장악되는 전쟁기지가 되지 않도록, 아름다운 철새들의 고향이 되도록, 주민들이 조용하고 안전하게 농사 짓고 동물을 키울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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