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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똥? 혹은, 괄호하고 대학교수다?

<시인세계> 가을호, 시인들에게 시를 묻다

등록|2008.09.01 09:51 수정|2008.09.01 09:51

▲ 독자들의 눈길을 끈 <시인세계> 가을호 기획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 ⓒ 문학세계사


중국요리집 주인에게 "당신은 자장면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혹은, 어시장 상인에게 "생선이란 대체 뭘까요"라고 묻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실은 대답하기 힘든 질문.

그렇다. 생을 걸고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무엇'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이냐고 묻는 건 무용하거나 가혹하다. 바로 이 무용한 듯 보이면서도 유용하고, 유쾌한 듯 가혹한 질문을 문예계간지 <시인세계> 가을호가 시인들에게 던졌다.

"당신에게 시란 무엇입니까?"

<시인세계> 역시 이 질문이 시인들에게 얼마나 덧없으면서도 어려운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잡지 편집자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읽고 삶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란 말로 이 질문의 난폭성(?)을 고백하면서,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해에 가까운 '진실게임'에 응해 준"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을 정도.

그러나, 이 난해한 질문을 받아든 44명 시인은 언제나 그래왔듯 자기만의 언어로 '시를 정의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 독자들 앞에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다.

지난 시절과 달리 시를 쓰는 것이 자긍이 될 수 없는 시대. 밥이 될 수도 돈이 될 수도 없는 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을 살아온 시인들은 과연 시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구체적이건 추상적이건 이들의 대답이 지닌 공통점을 미리 말해두자면 답변에 응한 모두는 시를 '밥의 영역'이 아닌 '꿈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연가"... "숟가락으로 단지 가리기"... "저녁 연기 같은 것"

시인 강은교는 "빈 방에 꽂히는 햇빛"이라는 다분히 시적인 정의를 통해 시의 본질에 접근한다. 강 시인에게 시는 "영원회귀의 사막 기슭에서 우연긍정들이 현재들을 필연긍정하려는 몸부림"인 동시에 "최고의 연가를 꿈꾸는 (어떤)것"이라고 한다.

원로 김규동은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어찌할 도리 없을 때" 터져 나오는 것이 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십 년이 넘게 시와 함께 울고 웃었음에도 아직도 "지내놓고 보면 쓴다는 것, 만들어 본다는 것, 그것은 끝없는 운산이요 연습이었음을 깨닫는"다고 겸양해한다. 김 시인의 고백은 시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파괴하는 전위적인 시를 주로 써온 김언희 시인은 자신의 시풍처럼 난해하게 "(시는) 숟가락으로 단지 가리기"라고 상징적으로 말한다. 한발 더 나가 김종철 시인은 장자와 공자, 목월과 미당까지 동원해 "시는 똥이다"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이 자학적인 어투엔 냉소보다 눈물의 냄새가 읽힌다.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고 서두를 뗀 김중식 시인. 지금의 그는 시를 "어쩔 줄 모르는 삶의 흔들리는 언어"라고 말한다. 노향림 시인은 다분히 진지하고도 진중하게 "꿈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내 삶 그 자체"라고 시를 정의했다. 

앞서 언급된 이들 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란 무엇인가'라는 우문에 현답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대답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암호의 압축"(김종해 시인)
"시는 괄호하고 대학교수이다"(박남철 시인)
"허기진 사람에게서 약동하는 것이다"(박형준 시인)
"시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다"(오탁번 시인)
"시란 언어의 탄환으로 명중시킨 진실의 과녁이다"(이가림 시인)
"육체는 기쁨에 떨게 하고, 정신은 한없이 풍부하게 채워주는 것"(이성부 시인)
"시는 몸이며 생성이다"(정진규 시인)

이처럼 시인들은 각자의 촉수로 제 삶을 더듬어 스스로가 해온 '시 쓰기'라는 작업을 정의해냈다. 그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비슷한 질문이 우리 앞에 놓인다면 어떨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진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해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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