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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의 힘, 시민들의 '효자손'이 되다

방송 10주년 맞은 KBS '시청자 칼럼 우리 사는 세상'

등록|2008.09.01 15:45 수정|2008.09.01 15:47

▲ <시청자칼럼> 출연자들 ⓒ KBS


"안녕하십니까." 차렷 자세로 서있는 이가 꾸벅 인사를 한다. 월요일~금요일 오후 6시 55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온 인사다. 화면 속 주인공은 심각한 얼굴로 문제제기를 하고 주장을 펼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시간이 다할 때쯤이면 누군가는 묵은 체증을 날려버린 듯 만족스러워 하고, 누군가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안타까워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렇게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수천 개의 사연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선 지 10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3개월도 못 갈 것"이라던 KBS 1TV <시청자 칼럼 우리 사는 세상>(연출 박혜령·김동훈·김영환·정승우, 이하 <시청자 칼럼>)이 벌써 방송 10년을 맞았다. 1998년 6월 15일 '저축대장 석홍이'를 주인공으로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벌써 만 10년도 넘었다.

'시청자 주권 찾기'를 지향하는 <시청자 칼럼>은 최근 화두가 된 '퍼블릭 액세스'란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그 의미를 실천하며 시청자의, 시청자에 의한,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존재해왔다. 말하자면 공영방송 KBS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방송이다.

<시청자 칼럼>의 주인공은 농민·장애인·주부·직장인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다. 지난 10년하고도 4개월여 동안 <시청자 칼럼>의 문을 두드린 출연자들은 무려 2309명. 집안에 있는 전봇대를 없애 달라는 사연부터 체불된 임금을 달라는 퀵서비스 직원들의 하소연까지, 그들의 문제제기는 작게는 자신의 가정에, 크게는 사회 전체에 의미 있는 변화들을 이끌어냈다. 자동차 연식이 오래될수록 자동차세를 감액 받고, 진료기록 사본을 구입할 때 진찰비를 내지 않게 된 것도 바로 누군가의 문제제기와 인내, 그리고 <시청자 칼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 <시청자칼럼> 10주년 특집방송 <세상을 바꾸는 5분, 10년의 기록> ⓒ KBS



그런 <시청자 칼럼>이 방송 10주년과 방송의 날을 기념해 지난 1일 <세상을 바꾸는 5분, 10년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80분간 특집 방송을 실시했다. 이금희, 윤인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특집 방송엔 유인경 <경향신문> 기자,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운동 대표 등 익숙한 얼굴들이 출연했다. 수년전 <시청자 칼럼> 카메라 앞에 섰던 이들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주인공인 <시청자 칼럼>에 변호사 시절의 오세훈 서울시장,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등의 유명 인사들도 출연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 1주일에 500만원이란 제작비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그 사이 첫 방송의 주인공 석홍이는 어느새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 됐고, 돌이 막 지나 쌍둥이로 공개입양 됐던 대한이와 민국이는 소년으로 자라 가족과 함께 입양 홍보단이 됐다. 장애를 가지고 입양됐던 세진이도 어엿한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어 <시청자 칼럼> 10년을 축하했다.

2309명의 주인공들이 보내온 축하엽서는 '희망나무'에 열매로 맺혀 스튜디오에서 공개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한 할머니의 엽서. <시청자 칼럼>이 절대 없어져선 안 된다던 할머니는 "시민의 효자손으로 있어 달라"고 당부했다.

누군가에겐 무의미한 5분. 그러나 누군가에겐 절박한 5분. 누군가에겐 그냥 흘려보내도 좋을 5분. 그러나 누군가에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5분. 저마다 의미는 다르겠지만, <시청자 칼럼>이 5분이란 시간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짧지만 강렬한 5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 ⓒ KBS


<시청자 칼럼>을 거쳐 간 50여명의 PD들은 투표를 통해 '시청자가 찾은 권리 10'을 선정해 지난 1일 공개했다. 강도로 돌변한 손님에게 얼굴을 난자당한 곽순택씨는 <시청자 칼럼>에 무려 6번이나 출연,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우며 산재 장해등급의 남녀 차별 규정을 없앴다. 진료 기록 사본을 떼는 데 병원에서 진료비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전무성씨는 단돈 1만4500원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한 끝에 이제 거의 모든 병원에서 진료비를 요구하는 관행이 사라지게끔 했다. 또 마을을 통과하는 철도 때문에 6명의 사망자를 낸 충남 횡성군 신곡리에선 철도당국과 군청이 지하통로 건설을 약속하며 80년의 숙원이 해결되기도 했다.

법을 개정하고, 관행을 고치고, 생활을 바꾼 많은 사연 중에도 제작진이 특히 마음에 둔 사연이 있다. 26명의 PD들이 표를 던진, 박승일씨가 주인공이다. 농구 선수 출신인 박씨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코치 생활을 시작할 무렵, 루게릭병에 걸려 장애등급 2급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침대에 누워 거동을 못하면서도 <시청자 칼럼>과 함께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문을 두드린 끝에 장애등급 지급 규정을 바꾸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많은 시청자들이 부단한 노력과 인내로 권리를 되찾았지만,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시청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며 공분했던 사연의 주인공, 정동석씨. 정씨는 자동차 정비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사업 허가를 받고, 빚까지 내가며 6억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 준공 승인까지 받았다. 그런데 건축 허가를 내줬던 군청이 영업 허가를 거부해 정씨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시청자 칼럼>이 4월에 이어 6월 후속 방송까지 내보냈지만, 미해결 상태. 제작진은 또 다시 후속 취재를 계획하고 있다. 단발성에 그치는 뉴스와 달리 안 되면 될 때까지 후속 취재를 해 개선책을 찾는 것이 <시청자 칼럼>의 원칙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PD저널'(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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