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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더럽히는 말과 삶 (9)

[우리 말에 마음쓰기 414] '부끄러운 존재', '노동자의 존재와 가치' 다듬기

등록|2008.09.02 11:55 수정|2008.09.02 11:55
ㄱ. 부끄러운 존재라고만 여긴

.. 나는 지금까지 누나를 부끄러운 존재라고만 여긴 것이여 ..  <누나의 오월>(윤정모, 산하, 2005) 53쪽

저한테는 형이 있습니다. 때때로 누나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누나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동생이 있어도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재미나게 살 수 있습니다.

 ┌ 부끄러운 존재라고만 여긴 것이여
 │
 │→ 부끄러운 사람으로만 여긴 것이여
 │→ 부끄럽게만 여긴 것이여
 │→ 부끄럽다고만 여긴 것이여
 └ …

저한테 있는 형은 ‘형으로 있을’ 뿐입니다. 저한테 ‘존재하는 형’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형을 따로 ‘자랑스러운 존재’나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지 않습니다. ‘존재’라 하니 퍽 우습고 어줍잖네요. 그냥 옛날부터 해 온 말대로 하자면, “형을 훌륭하다고 느끼거나 부끄럽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형은 그대로 형일 뿐입니다. 때때로 있는 줄 잊어 버리고 안부전화 한 통도 못하는데, 드문드문 형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곤 합니다. 그럴 때면 늘 미안하면서 반갑습니다. 잘 살고 있구나, 이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 자기 나름대로 삶을 꾸려 가고 있구나 싶어서.

 ┌ 넌, 형이 부끄럽니? (o)
 └ 넌, 형이 부끄러운 존재니? (x)

어릴 적부터 동무들하고 줄곧 나누어 온 이야기입니다. 동무들은 자기들 형제를 놓고 ‘부끄럽니?’ 하고 말하지 ‘부끄러운 존재니?’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랑스럽니?’ 하고 말하지 ‘자랑스러운 존재니?’ 하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소설책에서는, 시집에서는, 또 연속극에서는, 무슨무슨 문화인류학 논문에서는, 또 지식인들 입에서는, 여성학자들 강의에서는 ‘존재’가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존재’를 찾는 당신들께서는, 어릴 적 동무들하고 이야기를 할 때에도 “부끄러운 존재”라는 말을 쓰는가요? 당신들께서는 열두어 살 나이에, 국민학교(나 초등학교) 다니던 그때에 ‘존재’라는 말을 쓰셨는가요? 당신들이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이 ‘존재’라는 말을 쓰는가요? 당신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존재’라는 말을 쓰는지요? 머리로 어떤 지식을 생각할 때, 또 머리로 생각한 어떤 지식을 글로 옮기고 말로 읊을 때 쓰는 ‘존재’가 아닌지요?

ㄴ. 우리 노동자의 존재와 가치

.. 이런 점에서 우리 노동자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  <참된 삶을 위하여>(채희석, 현장문학사, 1989) 16쪽

“이런 점(點)에서”는 그대로 두어도 안 나쁘지만, “이리하여”나 “이렇기에”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노동자의 입장(立場)에서”는 “노동자 눈높이에서”나 “노동자 눈길로”로 다듬습니다. ‘중대(重大)한’은 ‘크나큰’으로 손질합니다.

 ┌ 우리 노동자의 존재와 가치를
 │
 │→ 우리 노동자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 우리 노동자는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를
 │→ 우리 노동자는 어떤 사람이며 무슨 뜻이 있는가를
 └ …

글월을 하나씩 떼어 놓고 살펴봅니다. “우리 노동자의 존재를 깨닫고”라면 “우리 노동자는 어떻게 있는가를 깨닫고”쯤 됩니다. “우리 노동자의 가치를 깨닫고”라면 “우리 노동자는 어떤 값을 하는가를 깨닫고”쯤 됩니다. 이 둘을 더하면, “우리 노동자는 어떻게 있고 어떤 값을 하는가를 깨닫고”가 됩니다. 이렇게 적으면 보기글보다는 조금 길어지지만, 뜻과 느낌을 곧바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있고”는 “누구이며”로, “어떤 값을 하는가”는 “어떤 사람인가”로 풀어내 봅니다.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로 풀어내 보기도 합니다.

곰곰이 곱씹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앞에 놓고, “우리 아이들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자” 하고 말한다면, 아이들 가운데 어느 누가 이런 말을 알아들을까를. 아이들은 이런 말투를 알아들을 수 있으려나요.

“우리 할머니들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자” 하고 말할 때 어느 할머니가 이런 말을 알아들을까요. 알아듣는 할머니가 계시려나요.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할머니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이리하여 노동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 어디에서나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학교를 나오고 적잖은 지식을 머리에 넣고 있으며, 입시교육을 집어넣는 제도권교육에 길든 사람들이나 알아듣는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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