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텃밭에서 모셔온 '팔첩반상'
3평 텃밭에는 '칠순의 어머니 사랑'이 영글고 있다
▲ 이름하여 '팔첩반상기'병환 중인 노모께서 손수 가꾼 텃밭에서 모셔온 푸성귀들로 마련한 저녁 성찬, 고춧잎 고구마순 쪽파무침에다 속음배추김치와 물김치, 토장국과 추어탕, 지리멸치무침 등 여덟가지 반친이 먹음직하게 차려져 있다. ⓒ 박종국
퇴근 무렵이면 으레 직장 동료(대부분 여선생님)들은 저녁 찬거리 걱정을 앞세운다. 오늘 저녁에는 무얼 해 먹을까. 어떤 국을 끓이지. 반찬은? 뾰족이 별난 음식을 차려먹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되풀이되는 이 일은 결코 행복한 고민이 아니다.
▲ 고춧잎무침 여름내 알싸한 맛을 제공했던 고추, 하지만 이제는 제 역할을 마감할 때다. 가을배추를 심기 위해 고춧대를 뽑았는데, 노모는 그 잎사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가려내어 집간장과 깨소금, 참기름으로 무쳐냈다. 노모의 말씀에 따르면 고춧잎을 데칠 때는 물을 팔팔끓이다가 살짝 데쳐야한단다. 그리고 조물조물 무치는 게 키포인트다. ⓒ 박종국
식탁에 오른 맛깔스런 반찬들에 식구들이 젓가락을 가져다 대면 마음이 흐뭇해지지만, 이것도 저것도 깨작깨작 거릴 때면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나도 그렇다. 애써 장만한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으면 힘이 쭉 빠진다. 그런 경우 음식을 장만하는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음식은 정성과 사랑을 양념삼아 깔끔한 손맛을 곁들여야한다. 보잘 것 없는 잎채소 하나도 정성이 담기고 사랑이 배어있으면, 진수성찬이나 다름 없다. 사랑이 담뿍 담긴 음식은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즐겁게 한다. 그러니 똑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매만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 고구마순 무침이즈음의 고무마순무침은 그 어떤 반찬보다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하다. 무침을 할 때는 줄기의 껍질만 벗기고 잎은 달린 채 그대로 데친다. 무칠 때는 된장과 젓국을 주양념재료로, 깨소금과 참기름에다 풋고추와 홍고추를 잘게 다져 머무려야 제 맛이다. ⓒ 박종국
그런데 요즘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실시간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먹을거리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곳에 머물고 있으면 눈요기만으로도 먹을거리에 대한 과부족을 못 느낀다. 그러나 진열대에 턱하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 중엔 가족의 건강을 저해하는 것들이 많다.
아토피나 알레르기 등 지독한 피부병은 먹을거리에 가해지는 농약이 근본원인이다. 오죽했으면 깻잎도 약을 치지 않으면 검게 말라버리고, 고추도 꼭지부터 허물어져 내린다고 할까. 상추나 쑥갓, 배추, 과일도 마찬가지다. 완전 무공해 식품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만큼 농작물도 내성이 강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뿌린 대로 거둔다'는 정설은 계절을 거스르며 재배되는 채소나 과일일수록 그대로 들어맞는다.
▲ 쪽파무침열흘 전 비오는 날 심었던 쪽파가 웃자랐다. 그중 토실하게 자란 놈을 골라 간장과 마른고춧가루에다 참기름 조금넣고 조물조물 무치다가 식초를 한 방울 곁들였다. 쪽파무침은 새콤달콤해야 제맛이 난다. ⓒ 박종국
한때 웰빙(well-being)식품이 모든 건강을 담보하는 것처럼 회자된 적이 있다. 그래서 주식·부식 모두를 산지와 직거래 하곤 했다. 그런 까닭에 자연농법으로 재배된 식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잔뜩 공해가 찌든 도시공간에 숨쉬고 살면서도 입맛 돋운다는 얄팍한 욕심은 마침내 자연생태를 파괴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은 예전보다 각종 피부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전량 무공해식품을 먹었는데도 건강은 오히려 잰걸음이거나 뒷걸음이다.
▲ 풋고추만 송송 썰어 넣은 토장국야채비빔밥에는 토장국을 곁들여야 제맛이난다. 멸치다시물에다 찬물을 조금 섞어 잘잘 끓이다가 청량고추 팍팍 썰어 살짝 끓으면 맛난다. 이때 양파를 넣지 않아야 한다. 양파의 단맛 때문에 다른 무침들의 맛을 잃게 된다. ⓒ 박종국
지난 30년 동안 도시에 살다가 농촌에 붙박이하며 산 지 7년째다. 살만하다. 우선 각박하게 부대끼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바삐 서둘러야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발품을 팔면 다 닿는 데 있는 생활여건이어서 그렇겠지만, 그보다도 사람 사는 향기가 순간순간으로 와 닿는다. 하나 불만(?)스러운 게 있다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탓에 '익명성'을 담보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차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훤히 다 공유하고 산다. 그러니 비밀스럽게 감춰둘 일이 없다.
▲ 지리멸치무침우리집 식탁에서 비빔밥을 만들 때 색다른 비법은 지리멸치무침을 곁들인다는 것이다. 멸치 특유의 고소한 맛도 맛이거니와 자칫 푸성귀들로만 짜여진 식단에 결핍하기 쉬운 칼슘을 보충한다는 의미가 크다. 비빔밥 멸치무침은 반드시 자잘한 '지리멸치'를 사용해야한다. ⓒ 박종국
그런데 시골이라고 해서 대형마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 비해, 상주인구에 비하여 지나치리만큼 많은 슈퍼마켓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농촌의 논밭에 가득 자라고 있는 푸성귀들과 똑같은 먹을거리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5일장에 있다. 닷새마다 장터를 트는 그곳에 가면 농부들이 손수 키운 야채과일들이 싱싱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로 반찬을 만들어 보면 안다. 그 맛이 얼마나 달착지근한지를. 설령 도시 사람들은 사가더라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 정녕 신토불이라는 것은 생산지 그 땅에서 먹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시골살이가 행복한 것이다.
▲ 가을추어탕우리 가족이 즐겨먹는 가을 보양식은 '추어탕'이다. 추어탕의 주재료가 미꾸라지지만 굳이 토종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토종미꾸라지를 구하기가 말보다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중국산이라고 해도 그것이 중국산이란 것을 알면 부재료로 담백한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다. 추어탕에는 반드시 방하잎과 산초(재피가루)를 넣어야 그 향취를 더한다. ⓒ 박종국
더욱이 행복한 것은, 병환중임에도 노모가 당신의 생명처럼 가꾸는 '노모의 텃밭'이 있다는 거다. 텃밭이래야 집 뒤란에 서너 평 남짓한 땅이다. 하지만 손바닥만은 그곳에는 이파리 싱싱한 속음배추, 우엉, 겉절이 상추, 들깻잎과 고추, 쪽파, 대파, 가지가 당차게 서 있으며, 호박넝쿨이 담을 타고 넘나들고 있다.
노모는 이런 푸성귀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주기는 물론, 겨우내 삭힌 음식물거름을 넘치지 않을 만큼 나눠주신다. 좀 덜 자라도, 이파리에 벌레 먹어 구멍이 송송 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바로 입에 들어가야 하니까 농약비료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다. 먼지가 조금 내려앉은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식품이다.
▲ 갖은 무침을 얹은 비빔밥 널찍한 대접에다 밥 한 공기 넣어 갖은 무침을 올렸다. 보기만 해도 맛깔스럽다. 비빔밥을 비빌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숟가락으로 비비지 않고 젓가락으로 솔솔 부추기듯 비벼야하는 데 있다. 그래야 밥알이 토실토실하게 살아나고 무침의 향기가 고루 배어난다. ⓒ 박종국
그렇다고 노모에게 드러내놓을 만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푸성귀를 애지중지 돌보는 사랑이과 정성이 있을 뿐이다. 텃밭의 푸성귀들은 한결같은 노무의 돌봄으로 제각각 맛좋게 자라는 것이다. 이는 애써 돈 들여가며 값비싼 재료들을 사 놓고도 그 맛을 못 느끼는 도시 사람들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오늘 저녁엔 노모가 그동안 손수 가꾸었던 푸성귀로 성찬을 마련하셨다. 이름 하여 '팔첩반상'이었다. 그 맛 함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다만 사진으로나마 눈요기하시라. 더 이상 무얼 먹을까 고민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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