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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 같은 절집 7호실, 호텔방 같았다

[내설악 도보기행 ⑤] 봉정암 참살이 기행

등록|2008.09.03 09:59 수정|2008.09.04 12:04

봉정암사리탑에서 본 봉정암. ⓒ 김강임


참살이 기행 그 아름다움

8월 24일 오전 10시, 오세암에서 출발한 지 3시간 30분만에 설악의 최고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는 봉정암에 도착했습니다. 설악의 산 속에 숨어 있는 암자 봉정암, 사람들은 이 암자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기도처로서 명성을 이야기 합니다. 물론 간절한 소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는 최고의 약발이 되기도 합니다. 언제였더라. 나 역시 아이 둘이 고 3을 맞이할 땐 간절한 순간이 있었지요.

하지만 설악의 바위 능선을 가로질러 암자를 찾은 것은 방학이 끝나갈 즈음, 참살이 기행은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걸어 온 10km 길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이 길이 고뇌의 길이라 했지만, 봉우리를 넘어설 때 느끼는 감흥은 환희 그 자체입니다. 조그만 암자 법당에서 들리는 염불소리가 촉촉이 마음을 적셔 옵니다.

7호실? 호텔방 아닌가?

요사체요사체. ⓒ 김강임


절집 신발절집 신발. ⓒ 김강임


먼저 종무소에 들러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봉정암 앞마당은 그저 한가롭더군요.

"보살님, 7호실입니다."

종무소 스님의 말에 나는 "호텔방 아닌가?"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산속 오지에서는 그나마 하루 묵을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봉정암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요사채입니다. 요사채는 종무소 직원과 스님들이 거처할 공간이기도 하지만, 길손들이 하루 묵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봉정암에서 요사채가 이렇게 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이유를 하나 들라면 산행 중 나그네들이 묵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한 차원이겠지요. 그러나 종무소에는 각종 기도 접수를 위해 머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인적이 끊이지 않는 산속 절집에서 요사채가 가장 넓을 수밖에요.

방석 크기 사각형 공간, 군대 내무반 같아

7호실은 군대 내무반 같다고나 할까요. 긴 방은 두 편으로 갈라 누울 수 있습니다. 키에 맞게 직사각형을 그려 놓았습니다. 직사각형 크기는 절집 방석만 합니다. 그 직사각형 안에 누워 잠을 자야 합니다. 때문에 키가 1m 60cm가 넘는 사람은 다리를 뻗지 못할 것 같더군요. 2개의 방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방석크기 네모 안 공간은 다음날 아침까지 내가 거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여정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리 불편한 줄 몰랐습니다.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마음도 절집에서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방석 침대 만드니 푹신푹신

봉바위봉바위. ⓒ 김강임


그날 밤 2개의 방석은 최고의 잠자리를 제공하더군요. 방석 하나로 침대를 만들 수 있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절집 방석은 왜 그리도 푹신푹신한지요. 또 다른 방석은 둘둘 말아 베개로 사용했지요. 전날 반 오세암에서 배낭을 베고 새우잠으로 지새웠던 생각을 하면 호텔방 아닌가요?

봉 바위 아슬아슬... 암좌 언제까지 무사할까?

법당봉정암 법당. ⓒ 김강임


약수봉정암 약수. ⓒ 김강임


오전 10시 10분, 목탁소리에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법당 뒤에는 금방이라도 우르르 떨어질 것 같은 봉바위가 장관이지 뭡니까. 천년을 넘게 지탱해 온 봉바위 아래 자리 잡은 봉정암 법당, 봉황새는 왜 저리도 아슬아슬한 봉바위에 자장율사를 안내했을까요?

"저 바위가 언제까지 무사할까?"

길손은 부질없이 걱정을 해 봅니다.

법당에 들어서니 상단에 부처상은 없고 사리탑을 향하여 창문이 열려 있습니다. 봉정암이 적멸보궁이었던 게지요. 상단에 오세암에서 함께 했던 다람쥐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길손입니다. 깔딱고개까지 나를 인도해줬던 다람쥐가 아니었던가요? 열려진 창문을 드나들며 요술을 부리는 다람쥐는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설악의 암좌에서 한나절, 호젓함에 빠져

풍경풍경. ⓒ 김강임


대청봉 가는 길대청봉 가는 길. ⓒ 김강임


점심공양은 미역국입니다. 성철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봉정암까지 오시느라 땀을 흘렸으니 미역국으로 철분을 흡수해야지요!"라고.

설악의 바위에 걸터앉아 먹는 미역국은 아마 내 생애 최고의 미역국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사방에서 설악의 향기가 풍겨 나오니 신선놀음을 하는 것 같아 괜히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것 같더군요.

오후 1시, 일행들이 대청봉에 오를 즈음, 난 절집에 남았습니다. 봉정암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며 산책을 했지요.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환절기 암좌의 하오는 참 차분했습니다.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담가보니 그 촉감은 부드러움 그 자체였어요. 소청봉으로 오르는 산길을 걸어보며 호젓함에 빠져 보기도 했지요.

내가 원하는 휴가는 고무줄 달린 월남치마 입고 실컷 쇼파에서 뒹굴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심하게 설악의 바위와 계곡, 나무들과 함께 있으니 여느 휴양지에 온 것보다 편안하더군요.

새벽 6시, 공양간새벽 6시, 공양간 앞에 공양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김강임


절집 선물은 가장 멋진 8월 크리스마스 선물

8월 25일 새벽 2시 50분, 딱-딱-딱-. 7호실 천정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설악의 아침을 깨웠습니다. 암좌 도량을 도는 스님의 머리 위에 그믐달이 떴습니다. 스님의 목탁소리는 바위를 깨웁니다. 설악의 능선을 타고 흘러내린 계곡물도 숨을 죽이고 있더군요. 바위틈에 자라는 식물들도 잠들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목탁으로 세상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6시 20분, 다시 도보 기행을 위해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홀쭉해진 배낭 속에다 절집 마지막 아침 미역국의 감칠맛과 자판기 커피의 따스함을 담았습니다. 길손들을 위해 만든 절집 주먹밥도 챙겨두었지요. 그리고 갈기갈기 찢어진 날아갈 듯한 봉 바위와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일몰, 늦여름 설악의 짙은 향기도 함께 선물로 담았지요. 

이날 설악의 절집 봉정암에서 받은 선물은 가장 멋진 8월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것 같습니다.       

석등석등 ⓒ 김강임


       
덧붙이는 글 봉정암 7호실 방 사진은 절집이라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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