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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수제비요, 속은 밀가루인 것은?

어르신들 수제비 한 번 만들어 보시지요

등록|2008.09.03 10:39 수정|2008.09.03 10:39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완성된 수제비귀찮아서 손을 크게 뜯어 넣었더니 덩어리가 꽤 크다. ⓒ 양중모


혼자 사는 남성에게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라는 말만큼 매력적으로 들리는 낱말이 또 있을까. 자주 찾는 요리 사이트에 요리 난이도 '하'인 음식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수제비! 그런데 워낙 쉬운 까닭인지 '감자 수제비' 등 '수제비' 앞에 꼭 무언가가 붙는 것이었다.
최대한 적은 노력과 투자로 많은 것을 먹고 싶은 나이기에 '수제비'에도 그런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재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요리를 하는데 드는 정성은 늘고 돈도 많이 드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리법이 너무 쉬워서인지 요리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냥 수제비를 만드는 법이 없었다. 이런 난감한 경우가 있다니.

수제비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시던 음식이라 가끔 어깨 너머로 만드는 법을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기억에 남는 것은 오로지 밀가루 반죽을 떼어 내어 뜨거운 물에 넣었다는 것뿐이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런 것이었다.

1. 밀가루 반죽을 만든다.
2. 반죽을 뜯는다.
3. 물에 넣는다.

정리하고 나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넣는다, 끓인다, 기다린다'가 다인 라면 끓이는 법과 수제비를 만드는 법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던가.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밀가루도 사왔으니 일단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밀가루 반죽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또 다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뜨거운 물을 섞으면 '반죽이 잘 된다'고 했다. 뜨거운 물을 섞어 반죽을 시작하니 처음보다 밀가루 반죽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반죽을 했으니 이제 뜨거운 물에 넣을 차례다. 반죽에서 조금씩 떼어 넣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거 반죽에서 조금씩 떼어 뜨거운 물에 넣으려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내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로 반죽을 뜯어 거의 던지다시피 뜨거운 물에 넣기 시작했다.

하면 할수록 손에 익는 것이 아니라 반죽을 뜯으면 뜯을수록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는 밀가루 반죽에서 떼어낸 덩어리가 꼭 물만두 크기처럼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래서 맛있는 수제비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물에 들어가면 크거나 작거나 수제비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니 별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밀가루 반죽에서 떨어져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던 덩어리들이 점차 수제비처럼 변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그 수제비와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 흠, '역시 수제비는 간단한 것이군'이라며 한 개를 꺼내 살짝 베어 먹어보았다.

"우웩!"

겉으로 보기에는 잘 익은 듯 했지만 속은 밀가루 본연의 모습 그대로에 가까웠다. 대체 이게 무슨 맛이람. 마치 병원에서 주는 가루약을 먹은 듯 해 속이 영 거북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속까지 제대로 안 익었던 것일까. 그래도 괜찮았다. 좀 더 오랜 시간 끓이면 속까지 금방 익을 것이 아닌가.

"치이익"

앗,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수제비가 냄비 아래 들러붙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을 꺼버렸다. 그 때 생각난 것은 오로지 수제비가 냄비 아래 찰싹 달라붙으면 설거지 할 때 '엄청 고생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물을 더 붓는 등 분명 다른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 때는 설거지 할 때 고생하기 싫다는 생각이 워낙 지배적이라 더 이상 수제비를 끓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겉은 수제비, 속은 밀가루겉은 수제비 모습을 갖추었으나, 속은 완전히 밀가루 맛 그대로였다. ⓒ 양중모


결국 그 상태로 수제비를 먹기 시작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겉은 수제비요, 속은 밀가루 그대로일 것이 틀림없는 수제비를 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그래도 아까 전보다 수제비 속에 든 밀가루가 단단해 져 있었지만 여전히 밀가루 원래 맛이 느껴졌다. 그래도 두 눈을 꼭 감고 먹었다.

이 쓴 맛을 가슴 속 깊이 기억하리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던가. 수제비를 빨리 만들어 먹겠다는 지나친 욕심이 결국 맛없는 수제비를 만들었으나,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교훈을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처음 만들어 본 수제비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아, 가만 이 수제비 만드는 것을 권유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네. 그토록 쉽다는 수제비를 한 번 만드는 데도 실패를 경험하고 그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는가. 이 경험을 꼭 하셔야 하는 분들이 있는데 말이다. 누구냐고? 지금 나라 살림을 맡으신 분들 말이다. 과거 했던 실패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셨는지 또 다시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혹시 아는가. 맛있는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노력하시다 과거의 실수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깨달음을 얻으실지. 겉은 수제비 모양인데 속은 밀가루 그대로인 것을 보면서  정작 챙겨야 할 서민들이나 중소 기업을 제대로 못 챙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든가 하는 깨달음 말이다. 수제비 하나에 걸기에는 너무 과한 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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