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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39) 아름다운 여성미

[우리 말에 마음쓰기 415] '여성미-남성미'를 엉터리로 풀이한 국어사전

등록|2008.09.03 14:30 수정|2008.09.03 14:30
.. 붉게 상기된 얼굴, 흐르는 땀을 닦는 그 건강한 모습처럼 아름다운 여성미는 없는 것 같다 ..  <송건호-아쉬움 속의 계절>(진문출판사, 1977) 82쪽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을 가리켜 '상기(上氣)되었다'고 합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은 겹말입니다. "붉어진 얼굴"쯤으로 손봐야 합니다. '건강(健康)한'은 '튼튼한'으로 손봅니다.

 ┌ 여성미(女性美) : 여자만이 지니는 아름다움. 여성의 정숙하고 부드러운 성질
 │    이나 몸매의 아름다움 따위를 이른다
 │   - 이런 머리형은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면서 다사롭고 감미로운 여성미를
 │     잘 표현해 준다
 │
 ├ 아름다운 여성미는 없는 것 같다
 │→ 아름다운 여성 모습은 없는 듯하다
 │→ 아름다운 여성은 없다고 본다
 └ …

'여성미'는 '여성한테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가리키니, '아름다운 여성미'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이 짧은 보기글에 두 군데 겹말이 보이는군요. 글을 쓴 분께서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지 못했네요. 우리 말과 글 빛깔을 조금 더 찬찬히 헤아리지 못했군요. 한결 단출하면서 손쉽게 쓸 수 있던 글이 못 되고, 아쉽게도 흐리멍덩 얄궂은 글이 되고 맙니다.

말썽거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글을 다듬는다며 국어사전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랄 만한, 어쩌면 놀랄 만하지 않는 '흔한' 말썽거리를 하나 봅니다.

 [여성미] 여성의 정숙하고 부드러운 성질이나 몸매의 아름다움 따위를 이른다
   -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면서 다사롭고 감미로운 여성미를 잘 표현해 준다

국어사전 풀이를 보니, "정숙하고 부드러운 성질"에다가 "몸매의 아름다움"이 '여성미'라고 덧달아 놓습니다. 여성은 조용하고 다소곳하기만 해야 '아름답다'는 소리일까 궁금합니다. 말을 잘하거나 바지런히 움직이고 일하면서 힘쓰는 사람한테서는 '아름다운 여성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소리일까 궁금합니다. 키가 작거나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면서도 훌륭하게 살아가는 여자한테서 '여성미'란 깃들 수 없는 모습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싶어서, 국어사전에서 '남성미'를 찾아봅니다.

 [남성미] 체격이나 성질에서 남성만이 갖는 특유의 아름다움
   - 남성미가 넘친다

국어사전에 실린 '남성미'에는 덧달아 놓은 풀이가 없습니다. "남성한테만 있는 아름다움"만 말합니다. 몸매가 아름답다거나 마음결이 부드럽거나 어찌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냥 '남성미'는 "남성만이 갖는 특유의 아름다움"이라고만 적어 놓습니다. 더구나, 국어사전에 붙은 보기글은 "남성미가 넘친다"일 뿐, 남성을 어느 한쪽으로만 바라보려는 눈길이 담기지 않습니다.

 ┌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면서 다사롭고 감미로운 여성미
 └ 남성미가 넘친다

'남성미'가 무엇인지 살을 붙여서 이야기하면 어떤 보기글이 실릴까요. 남성이 '다사롭거나 감미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남성다운 아름다움이란 없을까요. 소름이 돋거나 닭살이 돋을까요. 남성은 얼굴이 작아 보이면 안 될까요.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는 데에서 여성미를 찾는다면, 얼굴 큰 여성은 태어날 적부터 아름다움이란 아예 없는 셈인가요.

사람을 볼 때 겉모습으로만 아름다움을 따진다면, 마음씀이나 사람됨으로는 아름다움을 따지지 않는다면, 돈이 많은 사람이 훌륭하고 돈이 적은 사람은 훌륭하지 않다는 소리하고 다를 바 없다고 느낍니다. 이름값이 높아야 거룩한 사람이겠습니까. 큼지막한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아야 대단한 사람이겠습니까.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차를 몰아야 고개숙여 인사할 만한 사람인가요.

지금 우리 나라 국어사전은, 이 나라 사람들한테 어떤 생각을 심어 주려고 하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말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을 담아내는데, 우리 나라 국어사전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틀이 고스란히 담기는 말이며, 우리가 바라보는 곳과 나아가려는 길이 숨김없이 담기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지기도 하고 갚기도 한다는 옛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어사전 말풀이와 보기글 하나하나는,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함부로, 생각없이 달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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