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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결혼식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결혼 앞두고 출입국관리소 단속에 걸린 응우엔 반호아

등록|2008.09.03 16:24 수정|2008.09.03 16:24

▲ 지난 2005년 황반민씨의 결혼식 장면. ⓒ 고기복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사회 전반에서 인권지수가 후퇴한다는 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똑같은 인권 사안 비교를 통해 과연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9월 6일 국가인권위 침해구제위원회는 '서울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응우엔 꿕 비엩(Nguyen Quoc Viet)에게 불법체류자 20명의 명단 알아내기 위해 강제퇴거 대상자라는 절박한 상황을 이용, 웅우엔 꿕 비엩을 회유·협박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인권위는 감독기관인 법무부장관에게 향후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서울출입국관리소장에게는 담당공무원 및 관리자를 경고 조치하고 소속 직원에 대하여 자체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는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만에 내려진 조치인데, 당시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베트남인 황반민은 출입국에 단속될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3년 전 불법체류자를 믿어줬던 출입국... 그러나

황반민은 단속에 걸렸을 때, 강제출국 되더라도 결혼은 꼭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강제출국에 앞서, 법무부와 인권위 조사에서 결혼예정 사실을 말하면서 불법체류자인 예비신부의 이름 대신, 거짓으로 합법체류자의 이름을 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조사를 진행했던 인권위 담당자나 법무부 체류심사과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이틀 전 황반민의 결혼 사실에 대해 알고 있던 법무부 출입국에서 "결혼은 인륜지대사인데,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신원보증만 된다면 결혼식은 하도록 조치하겠다"며 결혼식 하루 전날 출국명령을 내려 결혼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렸던 황반민은 보호소에서 나올 당시 약속했던 대로 결혼식을 마친 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자진 출국했고, 신부 역시 한 달 후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출입국은 한 명의 불법체류자를 믿어줌으로 인해 두 명의 불법체류자를 줄일 수 있었고, 인권보호라는 명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황반민의 경우 체류 심사과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로 신뢰를 잃은 바 있고 신랑·신부 둘 다 불법체류 신분이었지만,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명분과 당시 인권 지향적이었던 법무부 출입국 체류 심사과 직원들의 협조로 무사히 백년가약을 맺은 후,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신원 확실하고 보증금도 낸다는데, 안 된다?

그런데 최근 이 건과 똑같은 상황임에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예비부부가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응우엔 반호아는 베트남 풍습에 따라 길일을 택해 오는 추석 연휴에 결혼할 생각으로 지난 7월에 예식장을 예약하고, 결혼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8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린 것입니다.

단속에 걸리자, 응우엔 반호아는 그동안 결혼준비를 위해 예약했던 예식장 접수증과 친구들에게 돌린 청첩장 등을 제시하며 자신이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보증금을 내더라도 보호를 일시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의아한 것은 응우엔 반호아의 예비 신부는 합법체류자로 신원이 확실하고 보호 일시해제에 따른 보증금까지 전액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황반민의 사례를 생각하며 당연히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낙담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결정 과정에서 보호 일시해제를 위한 안건을 서면으로 다룰 수 있는 '외국인권익증진위원회 소위원회' 소집 요구에 대해서도 "추석 이후에 위원회 전원 회의를 할 예정이라 소위원회를 소집하는 것이 번거롭다"며 거절했습니다.

'인권'측면에서 다시 한 번 논의해주길

왜 똑같은 관할 부서, 똑같은 사안, 아니 좀 더 손쉽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허락이 되지 않는 걸까요.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 유엔 사무총장 배출 등으로 한층 높아진 것 같은 대한민국의 인권 수준이 이 정도라니, 실망입니다. 혹, 인권에 대한 관심이 인권의식의 내실을 다지는 것보단 겉모습 가꾸기에만 영향을 준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황반민이 결혼할 당시에는 법무부에 '인권국'이라는 부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법무부에는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조사하여 신속하게 구조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인권국'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인권국이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법무부가 다시 한 번 '인권'의 측면에서 이 사안을 논의해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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