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결혼식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결혼 앞두고 출입국관리소 단속에 걸린 응우엔 반호아
▲ 지난 2005년 황반민씨의 결혼식 장면. ⓒ 고기복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사회 전반에서 인권지수가 후퇴한다는 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똑같은 인권 사안 비교를 통해 과연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이후 인권위는 감독기관인 법무부장관에게 향후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서울출입국관리소장에게는 담당공무원 및 관리자를 경고 조치하고 소속 직원에 대하여 자체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는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만에 내려진 조치인데, 당시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베트남인 황반민은 출입국에 단속될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3년 전 불법체류자를 믿어줬던 출입국... 그러나
황반민은 단속에 걸렸을 때, 강제출국 되더라도 결혼은 꼭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강제출국에 앞서, 법무부와 인권위 조사에서 결혼예정 사실을 말하면서 불법체류자인 예비신부의 이름 대신, 거짓으로 합법체류자의 이름을 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조사를 진행했던 인권위 담당자나 법무부 체류심사과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이틀 전 황반민의 결혼 사실에 대해 알고 있던 법무부 출입국에서 "결혼은 인륜지대사인데,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신원보증만 된다면 결혼식은 하도록 조치하겠다"며 결혼식 하루 전날 출국명령을 내려 결혼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렸던 황반민은 보호소에서 나올 당시 약속했던 대로 결혼식을 마친 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자진 출국했고, 신부 역시 한 달 후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출입국은 한 명의 불법체류자를 믿어줌으로 인해 두 명의 불법체류자를 줄일 수 있었고, 인권보호라는 명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황반민의 경우 체류 심사과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로 신뢰를 잃은 바 있고 신랑·신부 둘 다 불법체류 신분이었지만,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명분과 당시 인권 지향적이었던 법무부 출입국 체류 심사과 직원들의 협조로 무사히 백년가약을 맺은 후,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신원 확실하고 보증금도 낸다는데, 안 된다?
그런데 최근 이 건과 똑같은 상황임에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예비부부가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응우엔 반호아는 베트남 풍습에 따라 길일을 택해 오는 추석 연휴에 결혼할 생각으로 지난 7월에 예식장을 예약하고, 결혼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8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린 것입니다.
단속에 걸리자, 응우엔 반호아는 그동안 결혼준비를 위해 예약했던 예식장 접수증과 친구들에게 돌린 청첩장 등을 제시하며 자신이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보증금을 내더라도 보호를 일시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의아한 것은 응우엔 반호아의 예비 신부는 합법체류자로 신원이 확실하고 보호 일시해제에 따른 보증금까지 전액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황반민의 사례를 생각하며 당연히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낙담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결정 과정에서 보호 일시해제를 위한 안건을 서면으로 다룰 수 있는 '외국인권익증진위원회 소위원회' 소집 요구에 대해서도 "추석 이후에 위원회 전원 회의를 할 예정이라 소위원회를 소집하는 것이 번거롭다"며 거절했습니다.
'인권'측면에서 다시 한 번 논의해주길
왜 똑같은 관할 부서, 똑같은 사안, 아니 좀 더 손쉽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허락이 되지 않는 걸까요.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 유엔 사무총장 배출 등으로 한층 높아진 것 같은 대한민국의 인권 수준이 이 정도라니, 실망입니다. 혹, 인권에 대한 관심이 인권의식의 내실을 다지는 것보단 겉모습 가꾸기에만 영향을 준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황반민이 결혼할 당시에는 법무부에 '인권국'이라는 부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법무부에는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조사하여 신속하게 구조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인권국'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인권국이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법무부가 다시 한 번 '인권'의 측면에서 이 사안을 논의해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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