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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계 이력서'라고라?

[서평] <80번의 데이트 세계일주>를 읽고

등록|2008.09.03 16:48 수정|2008.09.03 16:48
제니퍼 콕스. 영국 여성(여행 당시 38세). <80번의 데이트 세계일주>(도서출판 이프)의 저자이다. 

유명 여행전문 출판사 기자를 거쳐 여행전문 방송인이 된 저자는 제목 그대로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러 세계 일주를 떠났다.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는 인맥들에게 괜찮은 남자 한 명씩만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추려 채워진 인원이 80명이었나 보았다.

그러나 의문. 우리나라처럼 나이들수록 이성을 만나기 어려운 구조도 아닌데 생활 주변에서 찾지, 뭔 남의 나라까지 원정가고 난리랴? 게다가 이분의 직업과 인맥으로 보자면 영혼의 동반자는 구해도 벌써 구하고도 남을 견적인데 너무 많아서 오히려 존재가치가 희박해서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분은 영혼의 동반자를 구하러 세계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그 떠남의 기록이다. 북유럽의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시작으로 해서 서남 유럽, 미국, 호주, 일본,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남을 가졌다. 참으로 팔자 한 번 늘어졌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막상 이 책을 읽어 나갈수록 그렇게 상상대로 장밋빛 여정이지만은 않았다.

▲ 저자는 영혼의 동반자를 찾아 80번의 데이트 세계일주 나섰지만 ,이성과의 데이트 말고 다른 주제를 가지고 80번의 데이트 일주를 해도 재미있을터. 일테면 80번의 음식과의 만남, 풍경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등등... ⓒ 정명희

‘남자가 한 명도 아니고 80명씩이나 줄 서 있으니 월매나 좋으까?’ 땡! 실상은 무척 피로하고 괴로운 날의 연속일 때가 더 많았다.

하긴 각기 다른 80명의 인물과 데이트 한다는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시도 아닌가. 한 번쯤 꿈 꿀 수는 있어도 이렇게 옹골차게 정해진 기간 안에 실행한 사람은 아마 저자가 단연 으뜸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말이 좋아 데이트 여행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렸다. 물건 사는 일이야 이것저것 만져보고 안사면 그만이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물건 사기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80번의 데이트(예정은 80번이었으나 실지는 76번으로 쫑 냄) 중 호감이 가는 축보다 호감도 안가고 공감대도 형성 안 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때문에 저자는 그만 여정을 중도에 작파할까 회의도 많았으나 다시 용기를 내고, 또 내고 하면서 여정을 소화했다. 그러다 총 데이트 여정의 3분의 2 지점인 55번째에서 꿈에 그리던 영혼의 동반자를 만났다. 시애틀에 사는 미국남자였다.(내 눈엔 별로^^)

동반자를 만나고도 형식적 완주를 위하여 계속 데이트 여행을 하던 중 76번째에서 55번 남자에 버금가는 매력을 발견하고 심히 ‘흔들’렸다. 그러나, 처음으로 ‘전기’를 느꼈던 55번 남자와 잘 해보기로 하고 애써 미련을 떨쳤다. 그리고 이미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 상태에서 더 이상의 데이트 여행은 명분이 없다 생각하고 나머지 77, 78, 79, 80번 여정은 취소하였다.

과거 연애사를 당당히 밝혀도 되는 사회가 부러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저자가 자신의 ‘연애 이력’을 하나도 숨김없이 까발린 것이었다. 30대 후반인 저자는 책 앞부분에 그 동안의 삶에서 만난 이성 관계를 요약 정리하였는 바.

첫사랑, 첫 동거의 남자부터 시작하여, 결혼, 일시적 관계, 동료관계의 남자까지 빠짐없이 소개하였는데 총 8명이었다. 8명 하니까 생각나는데 선진 외국 사람들은 일생 몇 명의 이성과 관계를 맺을까.

인즉슨, 며칠 전에 본 <선데이 나이트 섹스 쇼>라는 ‘슈 조핸슨’ 할머니 성 상담가의 상담방송에서 언뜻 비춰준 통계에 의하면 캐나다의 성인은 평균적으로 일생 14명(?)의 이성과 관계를 맺는다고 하였다. 미국은 12명 호주는 10명이었나 그랬다. 그에 비하면 영국은 순위에 언급 되지 않은 걸로 보아 위 나라들 보다 소박할 것이라 추측.(웃음)

아무튼, 여자의 ‘변신’은 무죄이나 여자의 ‘과거’는 무죄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다른 무엇보다 저자의 소위 ‘관계 이력서’라는 것이 눈에 들었다. 뿐인가. 총 76번의 데이트 중 나름 선방한 남성들과는 죄다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우리네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렇듯 과거든, 현재든 이성관계의 이력을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제 짝 찾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예전엔 남자의 과거쯤은 무죄였으나 요즘은 남자의 과거도 그리 당당하지 못한 듯한데. 남자고 여자고 피차 과거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웃음)

나아가, 결혼을 생각할 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한번 살아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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