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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이 좋다

아침 다르고 점심 다르신 우리 어머니

등록|2008.09.06 11:55 수정|2008.09.06 11:55
[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

우리 어머니
오늘도 아예 까놓고 그러신다.
민망하게

푸른꿈 고등학교 강의 다녀와서
콩 국수 해 드릴 국수다발을 의기양양 내 놓고
"다녀 왔습니다."
넙죽 절을 했더니

"벌쌔오나? 그다네 댕기오나? 늦게 올 줄 알았띠 벌쌔 오네. 그래 내 아들이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내가 한 숨 돌릴 새도 주지 않고 상찬이 이어진다.
"만날 봐도 방가와 우리 아들. 만날 봐도 와 이리 방가욱꼬?"

민망스럽기도 하고 점심이 늦기도 해서
옷도 못 갈아입고
바로 부엌으로 가면서
"콩 삶아서 갈아가지고 콩 국씨 해 드릴게요."했더니
내 뒤통수에 대고 한참을 계속 하셨다.

"만날 웃는 얼굴이라. 된 줄도 모르고 만날 웃응께 내가 머락 칼 수가 있나."
"없으믄 돌라 칼 줄도 모르고 배고파도 더 달라 칼 줄도 모르고 커디마는 저기 한 번도 얼굴 안 찡그리고 힘들단 말도 없이 만날 웃어."

아.
우리 어머니.
오늘 아침 일을 까맣게 잊으셨군.

아침에 콩 국수를 해 달라고 해서
콩은 있는데 국수가 없어서 사다가 점심 때 해 먹자고 했더니만

"지 에미가 오죽하믄 그락까이 집 앞에 점빵에 가서 사 오믄 되지!"
대 놓고 푸념을 하셨었다.
"대신 누룽지 끓여드릴게요" 했더니
내 앞에선 알았다고 하고선
내가 방을 나오기 무섭게 내 뒤통수에 대고는
"저기. 지가 처먹고 시픙께 누룽지 끄린닥카지 잉가이 지 에미 생각해서 저랄락꼬?"
라고 하셨다.

밥상을 치우고 한참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강의 준비하랴 비온 뒤라 마당 정리하랴
몸이 두 쪽 나게 나대다가
우리 어머니 뭐 하시나 방에 다시 들어와서
"어머니. 또 나가서 설거지 하고 올게요" 했더니
"응"
하시더니만
방문을 채 닫기도 전에 역시 내 뒤통수에 대고

"이제까지 무슨 지랄하고 인자서 설거지 한닥꼬 찌랄학꼬."
라고 하셨다.

이럴 때는 분명 내력이 있는 법.
나는 아예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어머니 푸념을 엿들었다.

집에 있는 맛있는 거는 손님 오면 아까운 줄 모르고 다 퍼 준다느니
손님들이 다녀가고 나면 이것저것 다 없어진다느니
화장실 만날 청소 해 봐야 길가 가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와서 싸 놓는다느니
설거지부터 해 놓고 딴 일을 보야지 일 순서를 모른다느니
일 순서를 모르면 저만 생고생 한다느니
그리고는 늘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
"저래각꼬 저기 언제 사람됙꼬 츳츳."
하는 말씀이었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 처지에서 옛 사람 살림살이 기준으로 보면 딱 맞는 말이었다.

아침 일을 한 토막도 가슴에 남겨 두지 않으신
우리 어머니
콩 국수를 점심으로 맛있게 드시더니

지금 봉투를 붙이고 계신다.

어머니책을 보낼 봉투에 주소 라벨을 붙이시는 어머니 ⓒ 전희식


라벨용지를 인쇄해서 봉투와 함께 드리면서
붙여 보라고 했더니
삐뚤빼뚤 열심히 붙이신다.
거꾸로 붙이기도 하고
봉투 하나에 여러 장을 붙이기도 해서
다시 뜯어내게 해서는 풀로 다시 붙이게 했다.

<똥꽃> 공동저자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시는지
이웃들에게 우송하는 책
근 50장 봉투 라벨을
다 붙이셨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이
참 좋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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