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휴학하고 엄친아는 취직하고... 어쩌지?
[좌충우돌 대학생의 휴학 생존기 ①] 엄친아에 대처하는 휴학생의 자세
2008년 9월, 대학교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나는 덜컥 휴학을 신청해 버렸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계속 학교를 다니는 게 어떠냐고 말을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당당히 "아니오"를 외쳤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꼭 하고 싶었던 공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망대해. 휴학의 바다에 빠진 대학생에게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부모님의 눈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용돈의 압박, 공부에 대한 부담감 등등을 다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적으로도 부담이었다.
물론 부모님께서 직접 표현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지레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이 그렇다. 얼른 취직해서 반듯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내 욕심 때문에 그것을 미뤘다는 것은 분명 죄송스런 일이니깐. 게다가 집안 경제사정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은 더 커지고 있었다.
큰일났다, 정선이가 취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휴학을 신청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큰 위기(?)가 발생했다. 어머니의 친구 분인 목동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어머니와 막역한 사이인 목동 아주머니는 틈틈이 전화를 걸어와 사소한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통화를 하시곤 했다. 며칠 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날 따라 목동아주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나는 궁금한 마음에 그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아뿔싸,
"정말? 정선이가 출판사 취직했다고? 아…정말 잘됐네!"
깜짝 놀랄 소식을 듣고 말았다. 정선이가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불현듯 내 마음이 불안해졌다. 속으로 '오, 진짜 큰일났다'를 외쳤다. 부러움 가득한 어머니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정선이는 목동 아주머니의 아들이다. 게다가 내 또래. 하지만 정선이랑 날 친구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내가 가까이 할 수 없는 '엄친아(엄마친구아들)'이기 때문이다. '엄친아'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정도로 통한니깐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려오던 '엄친아'님의 전설적 이야기에 난 감히(?) 정선이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온종일 공부만 해서 S대학에 갈 실력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설에는 목동 아주머니를 통해 우리 어머니에게 전해진 허풍이 심하게 더해졌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덕분에 당시 놀기 바빴던 내가 괴로워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여튼 정선이는 수능을 망쳐서 S대학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정선이가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겉으로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뒤로 전해진 정선이의 이야기는 그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정선이는 학교의 장학금을 거의 다 탔고, 또 군대에서는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 부모님께 드리는 효심을 보였다고 한다.(세상에, 군대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게다가 제대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얼렁뚱땅, 설렁설렁인 나랑은 너무 비교되는 것들이었다.
군대월급 모아서 부모님께 드린 전설의 '엄친아'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드디어 정선이가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설적 이야기의 최종 완결점인 것이다. 화룡정점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회사도 반듯하고 근무여건도 무척 좋다고 한다.
어머니의 부러움 연발 감탄사는 전화통화 곳곳에서 묻어난다.
"연봉이 000만원이 넘는다고? 정말 잘됐네. 진성이? 아. 진성이는 아직 공부해."
아들이 고액 연봉 회사에 취직했다고 자랑하는 목동 아주머니 앞에서 자신의 아들은 아직 공부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아쉬움과 걱정이 잔뜩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괜히 부모님께 마음이 미안해져서 그 통화를 못 들은 척 내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가슴은 쿵당쿵당 떨렸다.
'목동 아주머니는 왜 하필 오늘 전화해서 자랑을 하시나? 큰일났다. 분명 어머니가 한 소리 하시겠지?'
통화 후, 어머니의 한 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끝낸 어머니가 이상하게도 별 말씀을 안 하신다. 이 기분은 뭐랄까? 받아야 할 벌을 미뤄둔 듯한 찜찜한 기분이다.
'정선이는 취직했는데 너는 뭐하냐'라고 핀잔이라도 주면 이래저래 변명이라도 늘어놓겠지만 그런 말씀이 없으니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결국 내 예상과는 달리 어머니는 외출하실 때까지도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것저것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이끌어냈다. 정선이가 취직을 한 마당에 내가 가만히 선비처럼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설거지며 집청소며 밥짓기며 다 내가 맡고, 아르바이트도 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위 자급자족하며, 성실한 휴학생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외출 다녀오기 전에 집 대청소를 시작했다. 이것이 바야흐로 '엄친아'에 대처하는 휴학생의 자세 아니겠는가? 쓱싹쓱싹.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집안을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성처럼 바꿨다. 물론 잡다한 집안일 설거지·밥짓기를 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이 녀석아, 넌 후회없이 공부해"
잠시 후,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시장에 다녀온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신다. 혼자 뭐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엄마! 저 휴학했으니까 앞으로 집청소·설거지 제가 담당할게요. 아르바이트도 해보려고요."
당황하신 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녀석, 누가 너 보고 그런 거 하래? 이런 건 엄마가 할테니깐 넌 네가 선택한 휴학, 후회 남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후회없이 열심히 해보는 거야. 알았지?"
짧은 말이지만 어머니 말씀에 괜히 마음이 울컥 했다. 단지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깊은 생각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지금 부모님이 휴학생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잡다한 집안일을 눈치보며 하는 것이 아닌 자기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매우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괜히 마음이 짠했다. 난 당연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던 모양이다. '엄친아'에 대처하는 휴학생의 자세는 빨래·청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꿈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최선을 다해서 '엄친아'에 버금갈 만큼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망망대해. 휴학의 바다에 빠진 대학생에게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부모님의 눈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용돈의 압박, 공부에 대한 부담감 등등을 다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적으로도 부담이었다.
물론 부모님께서 직접 표현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지레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이 그렇다. 얼른 취직해서 반듯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내 욕심 때문에 그것을 미뤘다는 것은 분명 죄송스런 일이니깐. 게다가 집안 경제사정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은 더 커지고 있었다.
큰일났다, 정선이가 취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휴학을 신청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큰 위기(?)가 발생했다. 어머니의 친구 분인 목동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어머니와 막역한 사이인 목동 아주머니는 틈틈이 전화를 걸어와 사소한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통화를 하시곤 했다. 며칠 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날 따라 목동아주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나는 궁금한 마음에 그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아뿔싸,
"정말? 정선이가 출판사 취직했다고? 아…정말 잘됐네!"
깜짝 놀랄 소식을 듣고 말았다. 정선이가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불현듯 내 마음이 불안해졌다. 속으로 '오, 진짜 큰일났다'를 외쳤다. 부러움 가득한 어머니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 '엄친아' 정선이는 수능을 망쳐서 S대학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겉으로 아쉬워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려오던 '엄친아'님의 전설적 이야기에 난 감히(?) 정선이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온종일 공부만 해서 S대학에 갈 실력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설에는 목동 아주머니를 통해 우리 어머니에게 전해진 허풍이 심하게 더해졌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덕분에 당시 놀기 바빴던 내가 괴로워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여튼 정선이는 수능을 망쳐서 S대학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정선이가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겉으로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뒤로 전해진 정선이의 이야기는 그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정선이는 학교의 장학금을 거의 다 탔고, 또 군대에서는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 부모님께 드리는 효심을 보였다고 한다.(세상에, 군대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게다가 제대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얼렁뚱땅, 설렁설렁인 나랑은 너무 비교되는 것들이었다.
군대월급 모아서 부모님께 드린 전설의 '엄친아'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드디어 정선이가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설적 이야기의 최종 완결점인 것이다. 화룡정점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회사도 반듯하고 근무여건도 무척 좋다고 한다.
어머니의 부러움 연발 감탄사는 전화통화 곳곳에서 묻어난다.
"연봉이 000만원이 넘는다고? 정말 잘됐네. 진성이? 아. 진성이는 아직 공부해."
아들이 고액 연봉 회사에 취직했다고 자랑하는 목동 아주머니 앞에서 자신의 아들은 아직 공부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아쉬움과 걱정이 잔뜩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괜히 부모님께 마음이 미안해져서 그 통화를 못 들은 척 내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가슴은 쿵당쿵당 떨렸다.
'목동 아주머니는 왜 하필 오늘 전화해서 자랑을 하시나? 큰일났다. 분명 어머니가 한 소리 하시겠지?'
통화 후, 어머니의 한 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끝낸 어머니가 이상하게도 별 말씀을 안 하신다. 이 기분은 뭐랄까? 받아야 할 벌을 미뤄둔 듯한 찜찜한 기분이다.
'정선이는 취직했는데 너는 뭐하냐'라고 핀잔이라도 주면 이래저래 변명이라도 늘어놓겠지만 그런 말씀이 없으니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결국 내 예상과는 달리 어머니는 외출하실 때까지도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것저것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이끌어냈다. 정선이가 취직을 한 마당에 내가 가만히 선비처럼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설거지며 집청소며 밥짓기며 다 내가 맡고, 아르바이트도 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위 자급자족하며, 성실한 휴학생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외출 다녀오기 전에 집 대청소를 시작했다. 이것이 바야흐로 '엄친아'에 대처하는 휴학생의 자세 아니겠는가? 쓱싹쓱싹.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집안을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성처럼 바꿨다. 물론 잡다한 집안일 설거지·밥짓기를 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 그래, 꿈을 향해 달리는 거야! ⓒ 곽진성
"이 녀석아, 넌 후회없이 공부해"
잠시 후,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시장에 다녀온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신다. 혼자 뭐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엄마! 저 휴학했으니까 앞으로 집청소·설거지 제가 담당할게요. 아르바이트도 해보려고요."
당황하신 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녀석, 누가 너 보고 그런 거 하래? 이런 건 엄마가 할테니깐 넌 네가 선택한 휴학, 후회 남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후회없이 열심히 해보는 거야. 알았지?"
짧은 말이지만 어머니 말씀에 괜히 마음이 울컥 했다. 단지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깊은 생각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지금 부모님이 휴학생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잡다한 집안일을 눈치보며 하는 것이 아닌 자기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매우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괜히 마음이 짠했다. 난 당연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던 모양이다. '엄친아'에 대처하는 휴학생의 자세는 빨래·청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꿈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최선을 다해서 '엄친아'에 버금갈 만큼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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