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위해 '노'라고 말한 사람들
[서평]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NO!>
▲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NO!> ⓒ 이마고
간디, 그라쿠스 형제, 쑨원, 잔 다르크, 체 게바라 그리고 솔제니친. 이 여섯 사람에게서 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공통 분모가 없어 보인다. 성별도, 국적도, 시대도, 직업도 다르다.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생애를 돌아본다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통 분모 떠올릴 수 있다. 그 공통점은 바로 '노'(NO). 이들은 비합리적인 기존 체제에 맞서 당당히 '노'라고 외쳤던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예스'(YES)라고 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위의 여섯 사람 이외에도 역사의 진보를 위해 기득권층과 다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에서든 역사의 발전에는 '노'가 있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중 대부분이 '노'를 통해 얻어졌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노'를 외쳤을까.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NO!>(장 프랑수아 칸 지음, 이상빈 옮긴, 이마고 펴냄)에서는 '노'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노'.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기존 체제와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힘든 일이다. 기존 체제의 부정은 권력자들의 필연적인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인도의 간디는 뜻을 이루기까지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고대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는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외쳐온 '노'는 결국 세상을 바꾸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독립했고,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었다. 노예제도는 종식되었고 동성애 커플의 권리는 인정되었다. 어린이 노동은 사라졌으며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목숨을 건 투쟁이 없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당연한' 권리다.
"'노'라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들 생전에 세상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장 프랑수아 칸의 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영구집권을 노린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시민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결국 제2공화국의 출범을 끌어냈다. 또한 1980년 광주를 짓밟은 군부세력이 그 당시에는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라고 외친 시민들이 승리했다. 지금도 '노'는 진행형이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불합리한 사회를 향해 '노'라고 외치며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지 않나.
물론 모든 거부가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변화와 진보를 거부하는 '노'는 역사를 진전시키는 '노'와 다른 것이다. 아이들의 노동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너무 빠르고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거부했던 프랑스 의회와 노예제도를 향해 '노'라고 외친 빅토르 쇨셰르는 다르다. 어떤 기준을 갖느냐에 따라 '노'는 '예스'가 될 수도 있다. '노'와 '예스'는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한 쌍이다. 즉, 기준점을 어디로 잡느냐가 중요하다. 저자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와 히틀러는 똑같이 '노'를 표명했지만, 예수는 증오에 대해, 히틀러는 사랑에 대해 '노'라고 이야기했다. 오직 악마만이 그들을 동일한 카테고리에 넣기를 꿈꿀 것이다."
'노'를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반공주의를 부르짖으며 독재를 한 피노체트, 수하르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도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 나라 전체를 병영화하고 죽을 때까지 지도자로 있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거부하는 '노'는 인류의 역사를 진전시키는 '노'가 될 수 없다.
또한 저자는 "'예스'를 이끌어내거나 암시하지 않는 '노'는 결국에 가서 어떤 이득도 없다"며 "그러한 '노'는 무책임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고, 위험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다"고 말한다.
역사를 퇴보시키려는 시도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필요하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역동성에 대해 '노'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막으려는 시도에도 '노'라고 말해야 한다. 차가운 자본의 논리, 시장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이 책은 프랑스의 시사주간지의 특집호에서부터 비롯된 기획이라 내용이 서양에 편중되어 있다. 하지만 책의 교훈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단지 '노'라고 외친 사람들의 소개서가 아니라, '노'를 통해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짚어 주는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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