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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향이 안 되면, 우편향은?

등록|2008.09.09 14:42 수정|2008.09.09 14:42
한동안 물밑 아래 잠자고 있던 <한국 근현대사>가 좌편향되었다는 논란이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지난 4일 전국 16개 시·도교육감들은 현행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분단의 책임을 미국 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돌리는 등 이념적 편향성이 강한 교과서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다른 교과서가 선정되도록 노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좌편향된 교과서를 선정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의는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예견된 일이다. 현행 <한국근현대사>가 좌편향 되었다고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 뿐만 아니라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까지 나서 주장했기 때문이다.

교과서 부분 점유율이 50% 정도인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는 2004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에 이어 2005년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포럼'이 친북·좌파적 내용이라고 지적하는 등 보수단체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 왔던 교과서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 5월 14일 보수 성향 모임인 광화문 문화포럼에 참석하여 "지금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이 다소 좌향좌 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교과부 수장이 현행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이 좌편향되었다는 주장을 보수 성향 모임에 참석해 발언함으로써 현행 역사 교과서의 개편 또는 새로운 교과서 활용은 예견된 일이었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발벗고 나서서 좌편향되지 않는 교과서를 선정하겠다고 함으로써 정부 여당과 보수세력들은 쉽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감들은 교과서 선정 과정을 위하여 교장을 연수시켜 좌편향된 교과서를 걸러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 선정에는 교사들이 해당 교과서를 추천하여 학교운영위윈회가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를 무시하는 방침이다.

<한국 근현대사>는 역사 학계에서 전혀 인정 받지 못하는 교과서가 아니다. <한겨레>는이 교과서가 2004년 한국사연구회와 한국역사연구회, 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학회들이 심포지엄을 열어 "교육부의 7차 교육과정에 제시된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 원칙에 충실했다"고 공개 검증까지 마친 상태라고 보도했다.

교과서 선정 과정도 무시하고, 역사 학계 검증까지 마친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매도하고, 선정 하지 않겠다고 결정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시도교육감들이 좌편향된 교과서 대신에 어떤 교과서를 택할지 모르겠지만 교과서는 오타와 오자, 명백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아니라면 내용 자체를 한 두 달 안에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현행 교과서 내용 전체를 수정하기는 힘들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면서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 포럼'이 지난 3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펴냈다. 과연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현행 교과서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이념에 편향되지 않고, 역사와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인가 따져 봐야 한다.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는 나올 때부터 ▲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고 ▲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하며 ▲ 이승만·박정희 반공 독재체제를 긍정한 내용을 담아 논란을 일으켰다고 비판을 받는 책이다.

과연 이런 논란이 일고 있는 책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보다 내용이 더 나은지 묻고 싶다. 아직까지 시도교육감들이 교과서 포럼이 펴낸 <대안교과서>를 선정한다고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비판하는 보수세력과 집권세력이 <대안교과서> 내용과 맥을 같이하고 있고, 이에 덧붙여 시도교육감들이 공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당장은 <대안교과서>를 선정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교과서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집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교과서는 특정 이념만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역사교과서는 실증사료에 바탕하여 정확한 해석을 필요로 하며 역사학계가 심도 있게 논의한 후 미래 세대에게 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집필되어야 한다. 자신들 이념에 맞지 않다고 역사 자체를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좌편향이 문제라면 우편향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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