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예술 작품, 몰라서 안 보이면 어떤가

7번째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제대로 관람하는 방법

등록|2008.09.10 08:53 수정|2008.09.10 12:50

▲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당시 플래카드 모습 ⓒ 윤은희



이탈리아어로 표기된 비엔날레(Biennale)란 사전적인 의미로 ‘2년간 계속되는’, 혹은 ‘2년마다’라는 뜻이다.  2년 마다 열리는 행사나 집회를 모두 비엔날레로 볼 수 있겠으나, 특히 미술 분야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전시와 부대행사를 들어 일반적으로 비엔날레라 일컫는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엔날레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와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가 있다. 이 외에 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미술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미술행사로 5년 마다 열리는 독일 카셀의 카셀도큐멘타가 있으며 유럽현대미술비엔날레로서 유럽 각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는 마니페스타 등이 있다. 

지난 9월 5일 광주비엔날레가 열렸다. 11월 9일까지 66일 동안 계속되는 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올해로 벌써 7회째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995년,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지방화라는 기치에 부응하여 당시 강운태 광주시장이 광주가 갖는 특성과 장점을 살려 부가가치를 높이는 상품으로 만들어내자는 생각으로 창설하게 되었다.

광주의 아픈 역사와 관련하여 왜곡 되어있는 광주의 인식을 명확하게 하고 예향으로서 빛의 도시 광주가 되기를 희망하며 준비된 국제현대미술전이었다.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던 1회 광주비엔날레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164만이라는 놀라운 -사실은 비정상적인- 관람객 동원으로 국내외 미술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당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채 전시관 안에서 안내를 담당했던 도우미의 모습은 외국 기자들에게 기이하게 보였던지 해외 미술잡지에 희화화되어 소개되어지기도 하는 등,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던 비엔날레였다.

회를 거듭하는 사이 몇 번의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이제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 제일의 비엔날레로 견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동안 관람객들의 작품을 보는 안목 또한 대단히 높아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서울의 어느 미술대학교수로부터 광주 지역학생들의 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타 지역학생에 비해 매우 신선하며 창의적이다는 칭찬의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비록 단체입장으로 수박겉핥기식의 감상을 했을지언정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세계미술계를 주도해가는, 혹은 주도해 갈 여러 나라 작가군의 패기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보아 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비엔날레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반 관람객이 대하기에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엔날레의 작품들이 단순히 미술을 그려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담론을 제안하거나, 때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는, 대단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로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시장내에 부착된 도식적인 명제표나 관람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기술적인 용어와 난해한 표현이 기술된 설명판만으로는 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람자로서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난해한 작품을 소화해 내야 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일천한 미술지식만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작품들에 대해 크게 당혹해하거나 스스로 무지하다는 생각으로 낙심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 전시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갖게 될 소지 또한 크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의미는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관람자가 처한 상황이나, 성향, 가치관 등에 의해 의미는 조정되어지고 재구성 된다. 그러하기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언어는 그 작품을 읽는 관람객의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긍정적으로 의미가 확대되고 재생산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왜곡되고 폄하되기도 한다. 

눈으로만 쇼핑하듯 작품 앞을 스쳐 지나면서 그저 어렵다고 탄식하거나 비난하고 저주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며 감성의 싸이클을 맞추어 보고, 그것이 작품인지 아닌지 의아해하기도 하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혀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그 작품이 단지 쓰레기에 다름 아니라고 단정 짓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술작품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모르면 모르는 만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질 않은가. 이번 비엔날레 작품이 혹 어렵다면, 그래서 길이 보이지 않고 의미 또한 읽히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주기 위해 준비된 도슨트라는 커뮤니케이터가 항상 대기 중이므로, 그들의 도움을 요청해 볼 필요도 있다. 

부디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하는 관람객 모두가, '꽃'이 되어 줄 멋진 작품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 작품들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하고 있었던 소외된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눈을 맞추고, 함께 무릎을 맞대고 앉아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광주드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