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에서 추석까지는 '포도순절', 포도 드세요
다산(多産)과 모정(母情)을 상징했던 포도
'포도순절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
다산(多産)과 모정(母情)을 상징했던 포도
어제는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새콤하고 달콤한 포도를 실컷 먹었습니다. 여름내 마당을 시원한 그늘로 만들며 탐스럽게 익은 싱싱한 포도였는데요. 농약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더욱 달고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말벌들이 단물을 빨아먹어 마당에 떨어진 포도를 한 소쿠리나 쓸어내는 것을 보며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릅니다. 엊그제는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밭으로 감자순과 깻잎을 따러 가자고 해서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이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컴퓨터 사용방법을 잊을 정도로 시골인심에 푹 빠져 지냅니다.
추석과 포도
옛날 사람들은 추석이 다가오면 고향의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첫머리에 '어머님 아버님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이란 구절을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백로에서 추석 사이의 열흘 안팎 되는 시기를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입니다.
또 참외는 '중복'까지 수박은 '말복'까지 맛있고, 복숭아는 처서, 백로(白露)에는 포도가 맛있다며 제철 과일로 정해놓고 먹었다고 하는데요. 과일 하나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세월을 노래했던 조상들의 여유와 멋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예로부터 알갱이가 주렁주렁 영근 포도는 다산(多産)을 의미했는데요. 그 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백자에 포도 그림이 많은 것도 이러한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군요.
지금도 시골에는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며 호통을 치는 노인들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 처녀와 다산의 어울리지 않는 관계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한편, 생각하면 우리 문화의 뿌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어린 자식의 입에 넣어주던 정을 '포도의 정'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포도는 어머니의 정을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옛날 어른들은 자식이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면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라며 개탄했다고 합니다.
백로에서 추석까지
지난 7일은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였습니다.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는 말이 전해져오는 것을 보면 예전의 우리 가을이 얼마나 맑고 청명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24절기에서 열다섯 번째인 백로는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들어 있는데요. 밤에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이 흰색으로 느껴지는 백로는 가을걷이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백로까지 핀 고추 꽃은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효도하는 꽃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색을 띠기 시작하고,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 : 양력 8월 중순 - 9월 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수확량도 많아지게 됩니다.
맑은 날이 이어지는 이때의 따가운 햇볕과 늦더위야말로 농작물엔 보약과 다름없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가끔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도 있어 농작물의 자람과 결실을 방해해 수확을 줄이기도 합니다.
농민들은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고 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지장이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또 간혹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하는데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옛날에는 오곡이 무르익는 시기인 백로에서 추분까지의 15일을 5일씩 3후(候)로 나눠, 초 후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에는 제비가 돌아가며, 말 후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했습니다.
최근에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늦더위가 짜증 날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제가 사는 마을 농민들은 벼가 잘 영그는 데 필요한 물을 논에 대느라 정신없이 바쁩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은 10만 섬이 넘는 쌀을 증산시켜준다고 하니 농민들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늦더위와 땡볕은 오곡이 무르익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데요. 여름 장마로 자라지 못한 벼나 과일들이 충실해지고 단맛을 더하게 하여 추석에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니 오묘한 자연의 이치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을 찾아 어머니 품속에서 고단함을 녹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고향방문이 어렵다면 부모님께 '어머님 아버님 포도순절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문안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성묘를 가고 싶어도 산소가 없어 가지 못하는 외로운 이웃이나, 형제가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다산(多産)과 모정(母情)을 상징했던 포도
▲ 이웃집 마당에 탐스럽게 열린 포도. 얼마나 맛있던지 주인아주머니에게 두 송이 얻어 아내와 함께 먹었는데, 아내도 무척 맛있다고 하더군요. ⓒ 조종안
어제는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새콤하고 달콤한 포도를 실컷 먹었습니다. 여름내 마당을 시원한 그늘로 만들며 탐스럽게 익은 싱싱한 포도였는데요. 농약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더욱 달고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추석과 포도
옛날 사람들은 추석이 다가오면 고향의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첫머리에 '어머님 아버님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이란 구절을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백로에서 추석 사이의 열흘 안팎 되는 시기를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입니다.
또 참외는 '중복'까지 수박은 '말복'까지 맛있고, 복숭아는 처서, 백로(白露)에는 포도가 맛있다며 제철 과일로 정해놓고 먹었다고 하는데요. 과일 하나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세월을 노래했던 조상들의 여유와 멋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예로부터 알갱이가 주렁주렁 영근 포도는 다산(多産)을 의미했는데요. 그 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백자에 포도 그림이 많은 것도 이러한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군요.
지금도 시골에는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며 호통을 치는 노인들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 처녀와 다산의 어울리지 않는 관계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한편, 생각하면 우리 문화의 뿌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어린 자식의 입에 넣어주던 정을 '포도의 정'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포도는 어머니의 정을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옛날 어른들은 자식이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면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라며 개탄했다고 합니다.
백로에서 추석까지
지난 7일은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였습니다.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는 말이 전해져오는 것을 보면 예전의 우리 가을이 얼마나 맑고 청명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24절기에서 열다섯 번째인 백로는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들어 있는데요. 밤에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이 흰색으로 느껴지는 백로는 가을걷이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백로까지 핀 고추 꽃은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효도하는 꽃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색을 띠기 시작하고,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 : 양력 8월 중순 - 9월 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수확량도 많아지게 됩니다.
맑은 날이 이어지는 이때의 따가운 햇볕과 늦더위야말로 농작물엔 보약과 다름없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가끔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도 있어 농작물의 자람과 결실을 방해해 수확을 줄이기도 합니다.
농민들은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고 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지장이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또 간혹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하는데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옛날에는 오곡이 무르익는 시기인 백로에서 추분까지의 15일을 5일씩 3후(候)로 나눠, 초 후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에는 제비가 돌아가며, 말 후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했습니다.
최근에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늦더위가 짜증 날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제가 사는 마을 농민들은 벼가 잘 영그는 데 필요한 물을 논에 대느라 정신없이 바쁩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은 10만 섬이 넘는 쌀을 증산시켜준다고 하니 농민들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늦더위와 땡볕은 오곡이 무르익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데요. 여름 장마로 자라지 못한 벼나 과일들이 충실해지고 단맛을 더하게 하여 추석에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니 오묘한 자연의 이치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을 찾아 어머니 품속에서 고단함을 녹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고향방문이 어렵다면 부모님께 '어머님 아버님 포도순절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문안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성묘를 가고 싶어도 산소가 없어 가지 못하는 외로운 이웃이나, 형제가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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