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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은 에너지''00 민주주의'에서 지워진 글자는?

낙서를 보면서 20년 전을 생각한다

등록|2008.09.12 09:47 수정|2008.09.12 09:47
한강에 때 아닌 낙서와의 전쟁입니다. 촛불이 한창일 때 하나 둘 보이던 정치적 낙서. 촛불 집회에 갔다가 한강으로 몰려와 술 한잔하고 취기에서 한 낙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낙서가 며칠 있다가 지워지고 새로 쓰이길 반복됩니다. 한 두달은 족히 넘은 것 같습니다.

한강 낙서이 낙서는 지금 은색 페인트로 덧칠되어 보이지 않는다. ⓒ 안호덕


한강 낙서반포대교 밑에 있던 낙서 ⓒ 안호덕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은 매직 하나씩 가지고 다녔습니다. 붙잡혀 갈까봐, 강제 징집을 당할까 봐, 쥐도 새도 모르는 곳에서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할까 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구석진 벽 모퉁이에서 낙서를 했습니다.

‘광주 학살 전두환은 물러가라’ ‘독재타도. 민주 쟁취’ 이런 구호성 낙서에서부터 ‘대머리 주걱턱. 노가리’로 시작하는 권력자를 희화화하는 낙서까지. 그 때도 어김없이 며칠 지나면 검은 페인트로 덧칠해 지워지고. 그 자국만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그림 따위를 장난으로 아무데나 함부로 씀. 시사나 인물에 관하여 풍자적으로 쓴 글이나 그림’ 이것이 사전에 정의된 ‘낙서’입니다. 한강 다리 교각에 낙서를 하는 사람들. 장난이든 어떤 목적을 가졌든 간에 답답한 현실에 대한 반항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을 겁니다.

한강 낙서"조중동 신문 사절한다"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안호덕


한강 낙서“■■은 에너지다" 왜 앞 글자만 지웠을까? ⓒ 안호덕


한강 낙서“■■ 민주주의?” 보는 사람들에게 퀴즈 게임이라도 하자는 걸까? ⓒ 안호덕


낙서로 자기주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낙서라는 은밀한 방법을 통해 주의주장을 펼쳐야 할 만큼 경직된 사회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조중동 광고주 압박운동을 전개하던 네티즌이 구속 됩니다. 촛불 반대 소송을 제기한 광화문 상인들에게 전화를 한 사람들에게도 출두 요구서가 발부됩니다. 언제부터인지 온라인 공간에서 검열의 공포는 생각의 소통을 막아 버렸습니다.

온라인 공간도 더 이상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도 위축되어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섣부르게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한강에서 쓰여 지고 지워지기 반복되는 낙서.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지하방에서 등사기로 찍어 내던 출처가 적혀 있지 않는 유인물. 그 유인물들을 돌리려고 경찰과 무서운 숨바꼭질을 하던 20년 전. 언론도 정권의 나팔수에 지나지 않았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유인물과 대자보. 낙서가 소통이 수단이 되었던 그 암흑 같은 시절은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될,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입니다.

한강 낙서지워진 자리도 깔끔해 보이지는 않는다. ⓒ 안호덕


오늘 아침도 여전히 지우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미쳐 다 지우지 못하고 중요한(?) 글자만 지웠네요. “00은 에너지” “00 00한다” “00 민주주의” 무슨 글자가 지워졌을까, 왜 그 글자만 지웠을까 궁금합니다.

깨끗하게 지웠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지우는데만 급급해 덧된 것 같이 보기 싫게 지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불온(?)한 글자만 지우지 마시고 미관을 고려해 잘 지워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며칠 있으면 서울시의 야심작 반포대교 분수를 감상할 최고의 명당자리입니다. 거기에 갈겨 쓴 낙서도, 그 낙서를 지운 투박한 페인트 자국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00은 에너지” “00 00한다” “00 민주주의” 이런 낙서는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요? 그냥 페인트로 덧칠한다고 지워져 없어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며칠 있으면 또 누군가에 의해서 쓰여지는 낙서...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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