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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만'을 노래할 거예요!

불만합창단, 지난 10일 첫 번째 모임 열려

등록|2008.09.13 10:50 수정|2008.09.13 10:50

▲ 지난 10일, 김이혜연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불만합창단원들에게 '불만합창페스티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희망제작소


살다 보면 누구나 불만을 느낀다. 이러한 불만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보통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 짜증나니깐, 신경질 나고 화나니깐 자연스럽게 표정이 굳어진다. 이런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방도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 불만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불만이 또 다른 불만을 낳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불만'을 '노래'하기 위해 모인 불만합창단 단원들은, 불만을 이야기할 때 신이 나있었고 '다른 사람의 불만은 무엇일까'하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각자의 불만을 하나하나 이야기할 때마다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이곳이 정말 '불만'을 이야기하는 모임이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술, 욕으로 풀은 '불만', 이제 노래로 풀려고 모였다!

▲ 불만합창단 단원 황순영씨 ⓒ 희망제작소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종로 희망제작소 사무실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진 불만합창단원들은 16명. 여고생·교포·대학생·직장인·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불만'을 노래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그동안 불만이 쌓이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거나,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노래 부르기, 불만 대상자에게 직접 말하는 등으로 불만을 풀어냈다.

직장인 이준용(37·남)씨는 "불만이 있어도 막상 이야기를 안 하게 된다"며 "'사는 게 그렇지 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라는 생각으로 불만을 참거나 술 혹은 욕으로 푼다"고 불만을 풀어낼 다른 방법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불만을 마음껏 토로할 수 있는 장을 만난 그들. 불만을 '왜' 노래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도 다양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합창단을 검색하다가 불만합창단 모집을 보고 신청한 참가자,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표출하는 게 마음에 들어서, 합창을 좋아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등의 이유를 든 참가자들도 있었다.

단원들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박찬진(17·여)씨는 "불만합창단을 통해 다양한 연령층의 분들을 만나고 싶었다"며 "연령은 다르지만 '불만'을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참가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이어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이은영(여)씨는 "불만합창단 모집을 보고 '나의 불만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불만을 표출하여 마음속에 쌓인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30대 직장인 장명진(여)씨는 "평소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나와 달라 겪어야 하는 불만을 표현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쟤 정말 까다로워', '유별나다' 등의 말을 들었다"며 "불만합창단에서는 불만을 충분히 이야기해도 핀잔들을 일이 없고 오히려 나의 불만이 아이디어로, 가사로 채택될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자신 있음을 내비쳤다.

15분 만에 종이를 가득 채운 불만... "대통령도 리콜하자"

▲ 불만합창단 단원들이 불만을 쓰고 있다. ⓒ 정미소

단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불만을 적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명 '브레인 전지 라이팅'라고 해서 각자의 불만을 쓰고, 전지를 돌려가며 다른 사람 불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이다. 여기에는 커닝 장려, 다다익선, 질보다 양, 비판금지 등 4가지의 사항이 지켜져야 한다. 비판금지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불만을 '이것도 불만이야?', '이 사람 뭐 이런 불만을?' 등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

펜을 든 단원들은 첫 글자를 쓰는데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종이 위로 한 글자 한 글자가 쓰여 지기 시작했다. 15분이 지나자 하얀 종이 위로 '불만'이 빼곡하게 찼다. 그야말로 불만이 넘쳐났다.

"왜 대통령은 리콜이 안 되나?"
"바지 살 때마다 길이를 수정해야 해."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데 왜 솔로들이 세금을 더 내야 돼?"
"택배 아저씨는 내가 집에 없을 때만 와."
"한 남자 혹은 한 여자랑 사는 건 너무해."
"회식은 맨날 술, 폭탄주 자기는 못 마시면서 후배는 원샷하래."

환경, 평화 운동을 한다는 황순영(65·여)씨는 "전 세계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불만"이라며 "전쟁하는 돈과 힘으로 복지 혜택을 만들어주면 세상 사람들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만합창단을 통해 '전쟁 없는 세상'을 노래하고 싶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영주(24·남)씨는 "자기들만 살 궁리를 하는 현 정권이나 정치권력, 대기업 등에 불만이 많다"며 "축구협회의 축구 행정이나 감독 선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래로 표현하고 싶은 불만들을 토로했다.

이준용씨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아빠로서, 아이들이 맨날 학원으로 나가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 고민이고 불만이다"며 "1등 안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 불만합창단 단원 이영주씨가 다른 단원들과 작성한 불만을 발표하고 있다. ⓒ 희망제작소


"불만합창단은 이해와 설득의 과정 중요"

한편, 희망제작소는 다음 아고라를 통해 접수된 200여건의 불만과 이날 모아진 불만을 내용별로 정치, 개인 등 영역을 나눌 계획이다. 영역이 나눠지면 각자 이야기하고 싶은 영역으로 모여서 불만 가사를 만든다.

김이혜연 희망제작소 연구원은 "불만합창단은 나의 사소한 불만도 마음껏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불만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곳이다"며 "불만 가사를 만들 때는 무엇보다 나와 다른 불만을 이해하고 나의 불만을 이해하게끔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만 가사를 만드는 작업은 오는 9월 17일(수) 불만합창단 두 번째 모임에서 진행되고, 불만합창단의 공연이 열리는 '불만합창페스티벌'은 10월 11일(토) 서울 곳곳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정미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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