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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달리 뻥 뚫린 성묘 가는 길

가고 싶은 길만을 갈 수는 없는 것이 인생

등록|2008.09.15 14:01 수정|2008.09.15 14:01
“길이 하나도 막히지 않네.”
“명절 맛이 하나도 나지 않네.”

막힘이 없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길이면 언제나 걱정이 앞섰다. 도로는 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령의 한 가운데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였다. 짜증도 나고 고통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명절의 맛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모두가 좋은 날이니,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어려움이었다.

성묘가는 길 ⓒ 정기상

그런데 이번 성묘길은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었다. 평소 때보다도 더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마음먹은 대로 달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이상하였다. 막혀야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반대여서 이상하였다. 시원하게 뚫려 있어 좋은 것이 아니라 당혹스러웠다. 습관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옳은 것이 아닐지라도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면, 정의도 바꿔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로는 달리기 위해 만들어놓은 시설이다.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한 생활 도구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도로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 것이 지속되다 보니, 당연한 것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막힘없이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정상이다.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는 이미 도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히지 않으니, 이상한 것이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살아온 날들이 되살아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에 배인 대로 잘못 알고 살아온 것은 없을까?

낟알황금 ⓒ 정기상



어머니 묘 앞에 앉아 있으니, 많은 것이 겹쳐진다. 지난날들이 모두 다 되살아난다. 살아오면서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들이 하나하나 생생해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의지를 꺾고 감수하는 일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더 망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웠었다.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낟알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어머니의 사랑이 넘쳐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인생이란 결국 돌고 도는 것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오신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머니가 더욱 더 절실하게 그리워진다.

어머니 앞에 서니 어머니가 더욱 더 보고 싶어진다.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생생하기만 하다. 그러나 없다. 손을 내밀어보지만 빈 바람만 잡힐 뿐이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어도 가슴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깊은 주름 사이로 환하게 웃으시고 계신 어머니 품에 안겨 편안해지고 싶다. 언제까지나.

인생가야만 하는 ⓒ 정기상



“아버님 산소에도 가야지요.”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 그곳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의 바람이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훈훈해지는 사랑의 바람이. 그곳에서 어떻게 떠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사랑이 온 몸을 곱게 물들이고 있으니,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집사람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일어서기는 하였지만, 아쉬운 마음은 컸다.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인가? 어머니 곁에서 언제까지 머물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알알이 차올라 그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 숙인 수수를 바라보면서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가고 싶은 길만을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인생이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도 막힘이 하나도 없었다.
덧붙이는 글 사진은 08년 9월14일 전북 고창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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