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석종가집 멍석은 보름달 입니다. ⓒ 김강임
세상에 둥근 것은 참 많습니다. 해, 달, 사과, 공, 지구, 호수, 그리고 보름달. 사람들은 둥근 것은 좋아 합니다. 사람들은 왜 둥근 것을 좋아 할까요?
▲ 막걸리 항아리막걸리 항아리도 보름달입나다 ⓒ 김강임
9월 14일 제주시 근교 종가집. 추석 차례를 마치고 아침상을 물리니 정오가 됐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명절날에는 점심 저녁 시간이 따로 없지요. 명절날에는 하루 종일 먹다 보면 하루해가 저무니까요.
▲ 종가집 어르신윷을 던지는 종가집 어르신 ⓒ 김강임
1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한가위 윷놀이게임
종갓집 마당에서 드디어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게임은 해마다 추석에 종갓집 마당에서 열리는 윷놀이입니다. 큰조카는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 신청을 받더군요. 올해도 종갓집에 오신 분들은 모두 신청을 했습니다. 게임등록비는 1만원입니다. 큰조카와 둘째조카는 사다리를 만들어 조 편성을 하더군요. 우리 부부는 꿈을 잘 꿨는지 예선 없이 올라가는 행운을 안게 되었습니다.
종갓집 어르신께서는 멍석을 깔더군요. 멍석은 현재 생존해 계시는 98세 되시는 큰 아버님께서 손수 짜신 것입니다. 파란 잔디 위에 깔아 놓은 멍석은 참 운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둥그렇습니다. 큰 형님은 어린이들을 위해 파란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소풍 온 기분입니다.
▲ 윷가락과 술잔윷가락과 술잔 ⓒ 김강임
추석날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이슬비는 점심 때가 돼서야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큰 형님께서는 추석 전에 손수 만든 막걸리 항아리를 독째로 안고 나오십니다. 항아리는 둥그렇습니다. 술 항아리를 열어보니 둥그런 독에 마치 하얀 달이 뜬 것 같습니다.
윷가락은 큰조카가 만들었습니다. 윷가락을 담는 그릇은 조그만 술잔입니다. 술잔도 둥그렇습니다. 윤노리 나무로 만든 윷가락은 작다 못해 앙증맞습니다. 정말이지 둥그런 멍석과 술잔, 그리고 윷가락이 조화롭습니다.
종갓집 어르신이 윷가락을 던질 차례입니다. 하얀 모시옷과 고무신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예년에는 윷가락을 던지면 '모' 아니면 '윷'이더니 이번 추석에는 어찌된 일인지 '개'만 나더군요. 따라서 아우들로부터 '개'박사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혹시 상대자가 아우이니 일부러 져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윷놀이가 던지는 사람 마음대로 되던가요?
▲ 윷가락 던지는 조카스트레스 날리는 조카 ⓒ 김강임
대구 형님께서 던지는 윷가락은 자꾸만 멍석 밖으로 나갑니다. 아주버님께서는 형님에게 잘 던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요.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듯 윷가락도 마찬가지 입니다. 윷놀이도 던지는 손에 힘이 들어가면 윷가락이 멍석 밖으로 떨어지게 되지요.
▲ 윷가락 날리는 조카조카 며느리도 윷가락 날려 ⓒ 김강임
드디어 앞치마를 입은 종갓집 며느리들 차례입니다. 조카며느리는 신발까지 벗어던졌습니다. 파란 잔디가 보송보송하니 아마 파란 카페트 위에 선 느낌일 겁니다. 비행기 타고 추석 이틀 전부터 시댁에 와서 시장 보랴 명절 준비 하랴 힘들었을 테지만, 입가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 세살조카 윷놀이세살조카 윷놀이 ⓒ 김강임
세대 간 격차 허물고 게임으로 즐겨
3살짜리 조카 녀석은 큰 윷가락을 잡고 어른들 흉내를 냅니다. 연습을 하는 것이겠지요. 작은 손에 윷가락 4개를 잡을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그 녀석, 엄마 품에 안겨 징징대더니 파란잔디 위에 멍석 깔아 놓으니 갑자기 신이 났습니다.
▲ 윷놀이 연습윷놀이 연습 ⓒ 김강임
6살짜리 조카 녀석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혼자서 윷놀이 연습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윷가락을 던지자니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겠습니까? 그러니 실전 대비를 위해 부지런히 연습을 하는 것이겠지요.
▲ 응원응원하는 조카 ⓒ 김강임
게임을 보며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는 조카 녀석들도 있습니다. 이 녀석들은 자기 엄마 아빠 응원만 합니다. 행여 자기 엄마가 던진 윷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땅을 치기도 합니다. 물론 윷가락을 잘 던지면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 윷놀이윷놀이 ⓒ 김강임
신세대 조카, 마누라 대신해서 술상차려
이쯤해서 서울 작은 조카는 술상을 준비해 왔더군요. 이 조카는 어르신들이 조카며느리들한테 '술상 봐 와라'고 할까봐 미리 선수를 치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 종갓집에서의 윷놀이 게임은 몇 시간 만에 끝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웃어댔는지 목이 다 아프더군요. 아마 하늘을 지나가던 뭉게구름도 함께 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부전승으로 올라간 우리부부와 대구 큰댁이 결승에서 붙었습니다. 예선전에서 두 번이나 멍석 밖으로 윷가락을 던지신 형님, 결승전에서는 승부욕 강하더군요. 말 그대로 윷판을 세 번 돌리니, 상대편은 기가 죽을 수밖에요. 그러나 참가한 친척들은 결승전 선수들에게 '은메달을 따놓은 주인공들이다'라며 박수를 아끼지 않습니다.
드디어 게임이 종료됐습니다. 우리 부부는 추석날 종갓집에서 치러진 윷놀이 게임에서 금메달 영광을 안게 됐지요. 그리고 드디어 아이스크림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파란 잔디, 둥그런 멍석 위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이 참으로 달콤하더군요. 어른도 아이도 모두 그 달콤함에 빠졌답니다.
▲ 윷놀이 윷놀이 ⓒ 김강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왜 둥근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둥그런 멍석 위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종갓집 형님이 술을 담근 둥그런 항아리에도 보름달이 뜨더군요. 윷가락에 맞춰 환호성을 울렸던 가족 얼굴들도 모두 동글동글했습니다. 이들의 얼굴에도 보름달이 뜨더군요.
추석날 밤 제주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때문에 보름달은 뜨지 않았지요. 하지만 나는 보았습니다. 종갓집 파란잔디 위에 뜬 가장 밝고 맑고 둥그런 보름달을. 세상에서 둥근 것은 맑고 아름다우며 모나지 않아 잘 굴러간다지요. 멍석 위에 뜬 보름달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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