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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서재에는 '책 향이 가득'

30년 동안 닥치는 대로 모은 수천 권의 책들

등록|2008.09.16 10:30 수정|2008.09.16 10:30

우리집 거실에 마련한 서재 우리집 거실은 서재다. 벽면 천장까지 가득 쌓인 책들 ⓒ 박종국


나는 자칭 ‘모범장서가’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출판문화협회 모범장서가로 선정되기는커녕 어느 신문방송 한 꼭지에도 얼굴을 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나 스스로가 ‘책을 읽는 게 좋아서’, ‘그냥 책을 즐겨 읽다보니’ 지금에 이르렀을 뿐이다. 근데 지금에 ‘모범장서가’ 운운 하는 것은 시답잖은 얘기 같다. 

나는 자칭 '모범장서가'다

생각해보건대 내가 처음으로 한 권을 끝까지 읽었던 책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장발장’이었다. 지금 읽어도 대단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그 당시 학교마다 ‘고전읽기대회’란 개최되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수업 중에 불쑥 내일까지 고전읽기대회에 준비해서 읽을 책 한 권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때 그 순간은 무척 난감했다. 왜냐면 조상대대로 농투성이로 살아 온 우리 집안에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들송판과 붉은벽돌로 쌓아올린 책장에는 책이 가득, 근래에 읽은 책은 모로 쌓였다. ⓒ 박종국


그런데 난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 말씀’이라면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한다는 순둥이였다(물론 지금도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에만 집착하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쩌나? 어디 가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책을 구해오나? 내 눈썰미를 아무리 챙겨보아도 우리 집안에는 내가 읽을만한 책이 없는 것을 아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일을 얘기 삼으면 그냥 깔깔댈 뿐이다.   

"얘들아, 언제든 밥은 꼭꼭 챙겨먹어라. 내가 너희만 했을 때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왜 밥을 굶어요? 밥 먹기 싫으면 빵을 먹거나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
"……."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과부족을 모르고 산다. 책만 해도 그렇다. 학교도서관은 물론, 교실책장에 읽을만한 책이 백여 권은 빼곡히 꽂혀 있는데도 꺼내드는 아이들이 흔치 않다. 그보다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엠피쓰리 이어폰을 끼고 있다. 아이들을 사사로운 따져들 게재가 아니다. 세대차이가 아니라 이미 그것은 그들의 생활문화가 됐다.

책 도둑은 없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던 나는 다음날 하교 무렵 학교 도서관에 몰래 들어가 난생처음으로 책 한 권을 훔쳤다(그때 내가 훔친 책이 ‘장발장’이었다. 헌데 그 책 표지에는 공교롭게도 학교도서관 날인이 찍혀 있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마나 내달렸을까. 숨이 벅찬 것보다 가슴이 더 콩닥거렸다. 한참을 내달리다가 길섶에 앉아 책 표지를 들여다봤다. 빅톨 위고 <레미제라블>(장발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빅톨 위고'나 '레미제라블'은 너무 생소했다. ‘장발장’은 라디오를 통해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졸필원고와 만년필2000년 <경남작가>로 글을 썼다. 요즘같이 컴퓨터 워드프로세스가 유행이지만, 난 언제나 원고지에다 만년필로 글을 쓴다. ⓒ 박종국


집필실의 서재거실 서재와 달리 안방에 마련한 집필실과 서재 ⓒ 박종국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소죽을 끓이면서 쪼그려 앉아 독파해버렸다. 더러 이해되지 않은 구절도 있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장발장’은 내 마음을 환하게 펴 주었다. 나의 첫 독서 경험이다. 그러나 나의 첫 독서는 다음날 깡그리 헛물을 켜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이번 고전 읽기는 우리나라 고전만 해당이 된다.’고 말씀 하셨던 까닭이다. 어린 마음에 그때의 낭패감은 이루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장발장’이 너덜너덜 다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잡동사니 묵은 책들독서 이력 30년째 묵은 책들이 많다. ⓒ 박종국


그 뒤로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음독과 묵독, 속독과 지독, 통독과 적독, 정독과 남독, 다독과 과독, 균독과 편독, 재독을 섭렵했다. ‘마구 읽기’(남독)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많이 읽기’(다독)를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깊이 읽기’(정독)에 이르렀다. ‘고루 읽기’(균독)와 ‘다시 읽는 방법’(재독)도, 아마 나의 독서 ‘이력’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위편삼절(韋編三絶), 재독(再讀)의 의미를 알만한 나이

삼십년 세월이 후딱 지난 지금, 공자는 주역의 가죽 표지가 닳아서 세 번이나 그 표지를 갈아붙이면서까지 반복해서 읽었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 재독(再讀)의 의미를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새 손때 묻혀가며 모아 둔 책이 1만여 권이다. 집안 곳곳마다 천장까지 가득하게 쌓였다. 나를 에워싸고 도는 ‘책향’(冊香)이다.

취재수첩2000년부터 글감을 써 모은 취재수첩이다. ⓒ 박종국


흔히 ‘책 도둑은 없다.’고 한다. 현재의 나의 독서 이력의 모태는 책 도둑질의 결과였다. 그런 까닭에선지 나 역시도 지금까지 종잡아 천여 권은 도둑(?)을 맞았다. 빌려갔거나 가져간 사람들이 돌려주지 않았으므로 도둑맞은 책이다. 내게서 떠난 책들은 이미 내 책이 아니다. 책은 소장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랑하면 ‘삼불출’(三不出)이라고 한다지만, 근데도 나는 자칭 모범장서가다.                

졸작 수필집 두 권2000년 <경남작가>로 글쓰기 시작하여 그 동안 써 두었던 글들을 모아 <제 빛깔 제 모습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은 아름답다>(2002, 도서출판 두엄)과 <하심下心> (2007, 에세이풀판사) 등 두 권의 졸작을 출판했다. ⓒ 박종국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종국 기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현재 창녕부곡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고 있으며,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 소리"에 알토란 같은 세상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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