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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샵' 어머니 영정사진... 근데, 누구세요?

떠돌이 사진사, '페이스 오프' 수준으로 성형했네

등록|2008.09.16 17:10 수정|2008.12.12 11:23
어머니 얼굴

ⓒ 장재완


시골 어머니 방에 가면 맘에 들지 않는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머리맡 벽에 걸린 액자에 들어있는 바로, 어머니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어머니가 여산 5일장에서 떠돌이 사진사에게 찍었다는 영정 사진이다.

이 사진을 처음 보게 된 것은 2년 전쯤. 처음에 나는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가 했다. 말 그대로 "누구세요?"하고 안부를 물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 같기는 한데 정말 어머니인지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 "근데, 누구 찍은 거여?"

▲ 팔순 노모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니 "얼라? 왜 자꾸 사진을 찍고 그러다냐?" 하신다. ⓒ 장재완

눈치 빠른 분들은 예상하셨겠지만, 그것은 바로 '뽀샵(포토샵)'효과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뽀샵은 젊은이들이 자기 얼굴을 '샤방샤방'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선명효과도 주고, 밝기도 조절하고, 잡티도 제거하고…. 그렇게 성형(?)을 하지만, 어머니 사진의 뽀샵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5일 장터 떠돌이 사진사는 아예 어머니 얼굴 전체를 들어냈다. 이 사진사가 성형의사였다면, 아마도 영화 <페이스 오프>에 출연했을지 모른다.

자세히 사진을 뜯어보니, 머리 모양을 가다듬고, 눈썹을 그리고, 주름을 펴고, 입술 라인을 그려 색감을 입혔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입었던 옷을 날린 후 얌전한 한복으로 갈아 입혔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 속 어머니와 실제 어머니는 눈동자·코·귀만 닮았을 뿐, 나머지는 다 가짜라는 이야기다.

거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올해로 팔순이 되신 어머니가 20년은 젊어 보이니 나쁠 것도 없고, 그래도 나름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시는 사진을 나중에 영정 사진으로 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최소한 자식들은 사진의 주인공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전문가가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왠지 어색한 '뽀샵'의 조합은 너무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사진 어디에서 찍었어요?"
"장에 가서 찍었지, 5만원 주고…. 이 동네 사람들 거짐 다 찍었어."
"5만원이나? 근데, 어머니인지 잘 몰라보겠는데?"
"긍게, 참 신기허데…. 그 사람이 그냥 암시케나 찍으면 다 알아서 콤퓨타로 그려준다고 해서 찍었는디…. 오메나 저렇게 곱게 한복을 입혀서 가져왔데…. 신기하게."
"저거 그려넣은 게 너무 티 나는데, 다른 분들도 다 저렇게 그렸어요?"
"아 그럼, 다 똑같여…. 월매나 좋아 저렇게 걸어농게."

그랬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마도 그 장터 사진사는 한 가지 틀에 온 동네 할머니들을 다 꿰맞췄나 보다. 어쩌면 놀이공원에서나 보던 얼굴만 내밀고 찍는 사진과 비슷하리라.

떠돌이 사진사보다는 아들이 찍는 게 낫지

▲ 어머니 방에 걸려있는 영정사진. ⓒ 오마이뉴스 장재완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 얼굴을 사진에 담기로 마음먹었다. 사진기도 그리 좋지 않고, 실력도 별로지만 그래도 그 영정사진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고 어머니를 졸라댔다. 그런데 웬일? 어머니는 자꾸 사진 찍기를 거부하신다.

"얼레? 왜 자꾸 사진을 찍어댄다냐?"
"엄마, 그냥 찍는 거여…. 저 영정 사진이 하도 거시기 혀서."
"얼레? 뭐가 거시기혀? 좋기만 허고만…. 저리 치워."

어머니는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신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꽃을 배경으로 한 장 찍으면 안 되겠냐고 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신다. 어쩌면 20년은 젊게 나온 그 영정 사진이 마음에 들어 그 이후 주름살 많이 나온 사진이 찍히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기회를 잡았다. TV를 보시는 어머니 앞에 가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엄마, 여기 봐봐! 웃어야지~ 우르르 깍꿍~"하고 연신 재롱을 떨지만 고개를 돌리신다.

"어머니, 나만 볼게요. 이 사진 영정사진으로도 안 쓰고, 그냥 나만 볼라고…. 늦둥이 막내가 엄마 두고두고 볼라고 그렁께 여기 좀 보고 웃어봐요. 응?"
"얼레? 자가 진짜 왜 근다냐? 그냥 맥없이 웃어? 거기 보고? 이렇게?"

엄마는 결국 웃고 마셨다.

▲ 마지 못해 웃어주신 어머니 얼굴. ⓒ 장재완

그 순간을 놓칠세라 난 어머니의 억지웃음을 사진에 담았다. 비록 주무실 때 입으시는 꽃무늬 셔츠와 정돈되지 못한 어머니 머리카락이 마음에 걸리지만, 5일 장터 사진사 작품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성공한 어머니 얼굴사진을 노트북에 옮겨 담으며 계속 웃음이 났다. 어머니의 표정에 사진을 찍던 순간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듯하다.

어머니는 연신 "얼레?" "이렇게 웃어?" "자, 하하하" 그러시면서 날 힘겹게 했지만 그 하나하나의 표정이 담긴 사진은 날 즐겁게 한다.

그래서 난 어머니와의 약속을 깨고 <오마이뉴스>에 어머니 사진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뽀샵 없는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을 인터넷에 퍼트려서 정체모를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쓸모없게 만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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