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나 6일간 안 씻었어, 잘했지?

[우간다 르웬조리 등반기 ⑩] 르웬조리 여섯째날 이야기

등록|2008.10.01 15:30 수정|2008.10.02 08:11
다섯 번째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바로 일어나 짐을 챙겼다. 며칠 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한참 헤매던 나였지만, 이제는 짐을 싸는데 제법 능숙했고 속도도 빨랐다.

그것은 그만큼 르웬조리에 오래 있었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모레면 르웬조리에서의 일정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산에서의 시간은 도시에서의 그것과 달리 재빠르게 흘러갔다.

하산길도 끊임없는 바위와 진흙길의 연속

산행 길에는 비가 흩뿌렸다. 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늘은 무심하게 흐릴 뿐이었다.

다음 목적지 가이요만(Guy Yeoman) 산장(3505m)으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 바위가 많았다. 대원들은 비로 젖은 커다란 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나는 조심성이 부족한 탓인지 자꾸만 엉덩방아를 쪘다. 멍이 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바위가 나오면 거의 앉아서 내려갔다. 두 발로 내려가기에는 엉덩이가 너무 얼얼했다.

▲ 산행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김진철 대원. ⓒ 이지수


바위 구간이 끝나고서는, 며칠 전과 같은 진흙길이 이어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며칠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기분과 지금의 기분은 전혀 달랐다. 그 때는 짜증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그리움이 생겼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밟을 수 없는 진흙길의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었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고산식물 로벨리아와의 작별

산장 도착을 약 10분 앞두었을 때였다. 가이드 조엘(Joel)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나와 화정 언니를 불렀다. 그에게 다가갔더니, 그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라며 말했다.

"This is the last time(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무엇이 마지막이라는 것일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그는 길쭉한 식물을 가리켰다. 산행 중에 흔히 보던 고산 식물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이언트 로벨리아(Giant Lobelia)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식물은 이곳까지가 마지막이었다.

▲ 자이언트 로벨리아(Giant Lobelia)가 완전히 자라기 전 단계. ⓒ 이지수


자이언트 로벨리아는 동아프리카 산의 습지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다. 해발 약 3300m에서 4600m의 고산지대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이 식물은 고도가 낮아지면 더 이상 살 수 없어 열매를 남긴 뒤 전부 죽고 만다. 그런데 대원들은 하산하면서, 어느새 자이언트 로벨리아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고도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대부분이 죽고 겨우 일부만 살아 있었다. 이제 더 고도를 낮추기 전에 이 식물과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엘과 자이언트 로벨리아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 해발 약 3300m에서 4600m의 고산지대에 사는 자이언츠 로벨리아(Giant Lobelia). 대원들은 이 식물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에 아쉬움을 남겼다. ⓒ 이지수


대원들의 깜짝 생일파티, '대하 오빠, 생일축하해요!'

대원들은 오후 5시쯤 산장에 도착했다. 지난 이틀간 묵었던 산장에 비하면 아주 쾌적한 곳이었다. 다른 대원들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산장 앞에서 나머지 대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대원들이 없는 산장은 한적하고 쓸쓸했다.

하늘을 쳐다보니 파란 하늘에 덮인 구름 사이로 하얀 해가 눈부셨다. 햇살은 시야가 넓게 뚫린 산행 길을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얼마 뒤, 저 멀리 햇살을 받으며 걸어오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산의 전경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 나머지 대원들이 게이요만(Guy Yeoman) 산장(3260m)으로 오는 동안 사진을 찍었다. ⓒ 이지수


전 대원이 산장에 도착하자, 대원들은 곧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마침 이 날은 대하 오빠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대원들은 대하 오빠 몰래 아껴두었던 행동식 과자들을 한 곳에 숨겨 두었다. 대하 오빠는 매우 부지런했기 때문에, 혹시나 대원들의 작전이 들킬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도 우리의 작전은 성공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소윤이와 화정 언니가 케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산장 밖으로 나왔다. 케이크는 초코파이와 찰떡쿠키를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아올린 뒤, 위에 풀을 꽃아 장식한 것이었다.

▲ 모두 박대하 대원의 생일을 축하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이지수


과자가 전부 부스러져서 볼품은 없었지만, 케이크에는 대원들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대하 오빠는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이후 이 날을 '아프리카에서 평생 잊지 못할 생일'이라고 했다.

'내가 제일 더러워!' 부끄럽기보다 자랑스러운 더러움

생일 파티가 끝나고서는, 각자 얼마나 더러운지 자랑하는 시간을 보냈다. 모두 한꺼번에 손을 펼쳐보니, 거뭇거뭇한 손가락에 때가 잔뜩 끼어있었다. 르웬조리에서 지낸 지 벌써 6일째, 그동안 전 대원이 샤워는 물론이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산에서 물을 사용하려면 매번 끓여서 써야 했는데, 끓인 물 대부분이 식수로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 모두 한꺼번에 손을 펼쳐보니, 거뭇거뭇한 손가락에 때가 잔뜩 끼어있다. ⓒ 이지수


그렇기에 이 날 대원들의 모습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더러운 모습일 것이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자, 대원들은 각자를 마음껏 꾸미기 시작했다. 6일간 숙성된 자연 왁스 덕분에 머리 스타일은 자유자재로 연출이 가능했다.

덕분에 대원들은 르웬조리 산행 중 가장 엽기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대원들은 더러움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더러운 만큼 르웬조리에서 얻은 것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도전에 대한 열정과 서로 간의 우정이었다.

▲ 6일간 씻지 못한 대원들. 부끄럽기보다는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 이지수


대원 팀 vs. 가이드와 포터 팀의 막상막하 씨름 대결

르웬조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쉬운 대원들은 가이드와 포터들에게 씨름 대회를 제안했다. 가이드와 포터들은 이 제안을 곧바로 승낙했다. 몇 번씩이나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서인지 힘 싸움이라면 자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진철 오빠가 심판을 맡고 남자 대원 5명과 가이드와 포터 5명이 겨루기로 했다. 씨름 방법은 우간다식으로 했다. 우간다에서는 샅바를 잡는 대신 서로 몸을 끌어안았는데, 등이 땅에 닿는 사람이 지는 것이었다.

▲ 김진철 대원이 심판을 맡고 남자 대원 대 가이드- 포터 5쌍이 겨루기로 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박정태 대원과 포터. ⓒ 이지수


씨름 방법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풀밭에서 씨름 대회가 열렸다. 대원 중 첫 번째 선수는 동일 오빠였다. 가이드와 포터들 중에서도 선수가 한명 나왔다. 동일 오빠와 대결을 펼칠 포터는 키가 작고 다부졌다.

얼마 뒤, 진철 오빠의 신호와 함께 팽팽한 경기가 시작됐다. 누가 먼저 넘어질지 알 수 없었다. 몸이 한 쪽으로 기우는가 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지 탐사대원이 되기 위해 체력심사를 거친 동일 오빠도 힘이 셌지만, 포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부딪고 맨 땅에 넘어지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씨름은 대원들이 산행하면서 친해진 현지인들과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었다.

▲ 씨름은 대원들이 산행하면서 친해진 현지인들과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었다. 가이드와 어깨동무하고 있는 곽동일 대원. ⓒ 이지수


한밤중에 끓인 라면, 손으로 먹어도 맛있어

씨름이 끝나자, 밤이 더욱 깊어졌다. 대원들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 끝날 것 같지 않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 수 없었다. 피곤했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 와중에 몇몇 대원들이 산장 밖에서 라면을 끓였다. 밤공기는 쌀쌀했지만, 입 속으로 들어가는 뜨끈한 라면 국수는 마음까지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대원들은 근처에 앉아있던 포터들과, 가이드 가브리엘에게도 라면을 주었다. 그들은 라면이 매울 법한데도 매우 맛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들은 손으로 라면을 집어 먹기도 했다. 당시 대원들에게는 젓가락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젓가락을 쓸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를 생각해서 포크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실수였다. 

그래도 모두 맛있게 라면을 먹은 덕분에, 냄비는 순식간에 비었다. 대원들은 포터들, 그리고 가브리엘과 빈 냄비 앞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터들과 가브리엘은 우간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 산장 아래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대원들과 가이드 가브리엘. 여기서 대원들은 한밤중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 이지수


우간다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지만, 일부다처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 한국 에서 가족을 성(性)으로 구분하듯이, 우간다에서는 동물이 토템인 부족으로 가족을 구분한다는 이야기 등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야기에 푹 빠진 나머지, 늦은 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그렇게 대원들의 기나긴 밤은 지나갔다. 나도 결국 침낭 속에 들어갔다. 다음 날을 생각하니 마음은 홀가분한데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좀더 힘들어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아직 르웬조리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쉬운 만큼 마지막 날 더 힘차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