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해도 보험금은 안전? IMF 때도 그랬는데...
미 금융위기에 불안한 AIG 보험 계약자들
▲ AIG생명 홈페이지애 뜬 사과문 ⓒ AIG
16일 추석 연휴동안 찐 살들을 빼겠다고 스포츠센터에 나온 아줌마들이 운동할 생각은 하지 않고 탈의실 바닥에 모여 앉아 토론이 한창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미국에 IMF가 오는 거야?"
"글쎄 말이야.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있을 거라는데 걱정이야."
"AIG보험도 파산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럼 우리 보험은 어떻게 되는 거야? 미치겠네. 보험사 찾아가서 당장 해약해야하는 거야?"
"나도 보험이 한두 개가 아닌데 걱정돼 죽겠어."
'IMF 악몽'에 몸서리치는 AIG 계약자들
미국 월가 금융위기에 따른 'AIG 파산설'을 두고 우리나라에서 보험사가 파산한 일은 없다거나 파산하더라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000만 원 이하는 보호가 되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계약자들을 안심시키기엔 부족해 보인다. IMF를 겪으며 절대 안전하다고 생각해 왔던 종금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평생 갈 것만 같았던 대형 은행들마저 인수합병의 길을 걷는 것을 지켜 본 우리 국민들이 아닌가.
"그런데 미국 금융위기에 왜 우리가 피해를 당해야하는 거야?"
"글로벌, 글로벌 하잖우. 미국발 뉴스에 온 세계 증시가 출렁거리는 게 어디 어제 오늘인가 뭐."
"맞아. 미국 모기지론 사태나면서 한국 집값도 영 힘을 못 쓰잖아."
"그래도 우린 한국 AIG 보험에 들었으니까 괜찮은 거 아닌가?"
"뉴스를 들어보니 국내법인이 아니고 미국 지사로 되어 있다던데. 나도 그래서 더 믿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지사라는 게 더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더라구."
▲ AIG생명 기업소개란에 나와있는 재무구조표 ⓒ AIG
언론 보도에 따르면 AIG 코리아의 계약자는 6월 말 기준 줄잡아 120여만 명에 이르며 계약별로 보면 생명보험 계약이 908만 건, 손해보험 계약이 105만 건 정도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몇몇 AIG 계약자들에게 물어보니 종신보험, 의료보험, 암보험, 변액유니버셜보험과 같은 생명보험 상품은 물론 실버보험, 입원비 보험 등 손해보험 상품까지 중복해서 가입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않았다. 파산이나 인수, 합병에 들어갈 경우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 다투는 보험금을 제때 받을 수 없다면...
하지만 국민들의 타는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금융당국이나 정부는 무조건 안심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100%를 훨씬 넘는다는 AIG보험의 충분한 지불 여력과 국가에서 5000만원까지 지불 보증을 해주는 예금자보호법만 믿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계약자에게 시급하게 보험금을 지급해야만 할 큰 사고가 생긴다면, 혹여 받아야 할 보험금을 제때 받지 못해 또다른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된다면 그건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지난 IMF 때도 그랬다. 급하게 중도금이나 잔금을 치러야 할 사람이, 대출만기일을 맞아 대출한 돈을 갚아야 할 사람이, 각종 금융관련 일처리를 정해진 날짜에 맞추어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금융기관에 맡긴 돈을 찾지 못해 금전적 손해는 물론 신용에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허다했었던 것이다.
"파산 신청중이거나 인수 합병중에라도 혹시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큰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 그래도 보험료는 지불해주는 건가? 혹시 기 납입 보험료만 주는 건 아니야?"
"유니버셜보험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내 노후 생활 자금이란 말이야."
"유니버셜 보험은 아무래도 장기상품인데다가 투자 수익률이 좋아야 높은 이자를 받게 되는 방식이라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다가는 나중에 본전도 못 찾게 되는 건 아닐까? 유니버셜보험이야말로 당장 해약해야 하는 거 아냐?"
정부도 금감원도 국민 불안감 덜어주지 못해
아는 정보, 모르는 정보에 흘려들은 불확실한 소문까지 합세해 불안감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속시원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나 금융당국도 이런 국민들의 불안을 잘 알고 있을 터, 해당 기관이라는 금융감독원 보험 총괄팀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갑작스럽게 터진 일이라 아직 공식적인 대책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전담대책반을 꾸려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당연히 국내 일반 계약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 전해진 내용과 다른 정보를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직은 무어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공연한 불안심리로 서둘러 해약에 나서기보다는 정부의 대책과 미국 발 소식들을 꼼꼼히 챙겨보면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정부에서도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기 전에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것입니다."
거창한 해결책을 바란 것도 아니지만 혹시라도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보다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하긴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점에 금감원인들 무슨 뾰족한 수를 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모토로 출발한 MB 정부에 들어와 국민들은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증시 하락, 유가 폭등, 물가 상승, 환율 상승… 연이어 터지는 악재를 맞아 거의 실신 직전인 국민들에게 미국 발 금융위기가 마지막 한 방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국민들의 가중되는 불안심리를 이해하고 있을까? 혹여 정부나 금융감독의 발표를 믿지 못하고 불안에 휩쓸려 묻지마 해약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사태는 지금보다 더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떠돌고 있다. 만일의 경우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5000만 원 이상 계약자와 법인을 위한 대책도 세워 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발 '금융 불안 뉴스'에 국민들은 이제는 누구도,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한탄하고 있다. 심각하게 해약을 고민하고 있다는 몇몇 지인들에게 정부든 금융당국이든 조만간 힘이 될 만한 대책을 내놓을 테니 해약을 서두르지는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부디 나의 판단과 믿음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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