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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떨어뜨리는' 학생은 어찌 살라고

학교 성적공개 최대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

등록|2008.09.22 13:41 수정|2008.09.22 13:41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수능성적 공개 검토 뉴스를 접하면서 떠오른 것은 작고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었다.


권 선생님은 에세이 <가난이라는 것>에서 톨스토이의 민화집에 나오는 '사람에게 어느 만큼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다음은 고등학교, 대학교, 그렇게 힘을 기르는 이유는 더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달리기 내기인 것이다"라고 우리 사회와 교육을 비판했다.

'사람에게 어느 만큼 땅이 필요한가'에서 가난한 농사꾼 바흠은 1천 루블을 내고 출발해서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오면 그 둘레의 땅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흠은 종일 들판을 달려 해가 질 때 겨우 출발했던 곳에 돌아왔지만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를 보고 땅 주인은 "사람에게 필요한 땅은 자기가 묻힐 여섯자 무덤인 것을"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서울대 합격' 플래카드 거는 학교들인데

▲ 노량진역 학원 간판. 동네가 학원가라는 것을 간판이 잘 보여준다. ⓒ 조정래


우리 사회와 교육이 바로 이 바흠과 같은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인의 욕망과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고 경쟁과 대결을 통해 이상을 실현하는 정글과 같은 곳이 바로 교과부가 바라는 교육현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어몰입교육을 시작으로 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 초·중·고 일제고사 부활, 특수목적고 증설, 국제중 설립 등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무차별로 발표됐다. 이미 시행을 준비하는 단계의 정책들도 있다. 그러나 검증이나 공청회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교과부가 최근 수능 성적 공개를 검토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별 성적은 물론이고 각 학교 성적까지 공개된다. 개인간 경쟁으로 성이 차지 않는지 이제는 학교까지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아니, 학부모까지 경쟁을 시키는 꼴이다. 참으로 위험하고 한심한 발상이다. 교과부는 학교 현장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실제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사관학교나 경찰대를 지원하고 서울대 합격자 수를 늘리기 위해 가지도 않을 학교에 지원한다. 1차에 합격하면 시내에 현수막을 걸어 홍보한다.

이런 비교육적인 행태는 솔직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시라는 굴레가 교육의 질을 좌우하도록 되어있는 교육현실이 근본 원인이다. 학생은 학생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관학교나 경찰대에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이런 비교육적 현상이 학교 성적공개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단지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수능 성적을 공개하겠다는 발상은 긍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알 권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진짜 알고 싶고 알 필요가 있는 정보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외면하는 정부가 소수의 상위권 학생만이 필요로 하는 학교성적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군가는 '꼴등'... 푸대접 눈에 선하다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학교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학교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학교성적 공개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대학입시가 최우선시되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학교성적 공개는 고교등급화의 초기화이고, 결국 고교평등화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수능성적 공개는 학교의 존폐와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욱 편법과 탈법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선 예체능 계열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성적이 공개될 경우 수능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예체능 학생들은 학교 평균 성적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푸대접과 비교육적 대우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상위 10%의 학생만이 학교의 주인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수능 성적 공개가 되면 자연스럽게 명문 중학교나 명문고·명문대학교 진학률이나 진학생수 공개가 불가피하다. 명문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진학시키기 위해 학교는 모든 행정력이나 교육력을 집중할 것이다. 입시교육의 심화는 불 보듯 뻔하다.
이를 위해 우열반은 말할 것도 없고 우수한 학생에 대한 신입생 유치를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될 것이다. 이미 일부 보수신문들은 서울대 합격자 수를 학교별로 공개하여 학교 등급화를 시도하고 있다. 참으로 우려스럽다.

▲ 대입수능고사에서 시험문제를 풀고 있는 수험생. ⓒ 이종호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과 학부모다. 서열화된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입시교육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모두 1등이나 될 수 없으니 꼴등과 부진학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교육이나 입시교육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이 절대적 역할을 할테고. 수도권과 지방, 일반학교와 특수목적학교와의 성적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사회 양극화와 더불어 교육 양극화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하려는 거의 모든 교육정책은 상위 10%를 위한 정책이다. 20:80의 사회에서 20을 위해 끊임없이 80은 희생되어야 한다. 바로 신자유주의의 심화와 극대화를 의미한다.

미국발 실패한 금융정책의 쓰나미를 보면서, 실패한 신자유주의의 정책이 머지않아 우리 사회와 경제 뿐 아니라 교육을 포함해 삶 자체를 집어삼키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 기자는 전북 익산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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