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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은 내가 해야 할 판인데, 지가 왜 나가?

가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등록|2008.09.19 17:33 수정|2008.09.19 20:16
"가출신고도 해 놓고, 출입국에도 연락해 놨어요. 추석에나 돌아올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돌아올 생각이 없나 봐요."

잊을만 하면 전화를 해오는 한아무개씨의 탄식이다. 한씨는 지난 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출신 신부를 맞았다. 두 번째 결혼이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한씨는 입국하자마자, 살림에는 관심 없고 집을 나갔다 들어 왔다를 반복하던 신부가 종적을 감춘 뒤로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첫 결혼 역시 베트남 신부와 했었으나 돈 버리고 마음 상한 기억 밖에 없다고 했다. 한씨는 결혼중개업체에게 소개를 받아 결혼식을 올린 후, 신부에게 혹시 모욕감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남들과 달리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안면만 트고, 곧바로 귀국했던 한씨는 여섯 달만에 어렵사리 입국한 신부를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였다고 한다. 신부의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남의 아기를 배 가지고 온 여자를 보고 뭔 말을 합니까? 결혼중개업체에 연락을 했더니, 그 사람 데려 갑디다. 그런데요, 그 사람 애 낳고 다시 들어왔어요. 제 뒤에 선보러 갔던 사람하고 살아요. 사람 속이 뒤집힙디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결혼을 포기하려던 한씨에게 결혼중개업체에서 결혼을 종용해 왔다. '또 그런 일이 있으랴'하는 심정으로 다시 맞선을 보고 결혼한 여자는 곧잘 우리말을 했다. 신부는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5년 가까이 마사지를 하던 여성으로, 한국식 이름도 이미 갖고 있었다.

마흔 중반의 한씨는 신부가 입국하자 시청에서 전통혼례를 올리고, 신부를 위해 한국어교육 방문학습도 신청하고, 단칸 살림이긴 했지만 분가를 하는 등 신부의 한국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한씨가 우리 쉼터에 처음 연락을 해 왔던 이유도 신부와의 언어 소통을 위한 방편을 찾기 위해서였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서 툭하면 쉼터를 찾았던 한씨의 고민은 한결 같았다. 신부가 마음을 다잡고 살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씨의 노력과는 달리 신부는 입국하기 전부터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다. 처음에는 사촌동생이 있다는 구미에 내려갔다 오더니, 취직을 한답시고 공장을 찾아 나서는데, '말도 서툰데 급하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달리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보십시오. 제가 아침에 일하러 갈 때도 밥을 혼자 해 먹었습니다. 각시가 깰까 봐 조용조용하게 그릇을 놓고 식사를 하고 가는데도 각시는 시끄럽다고 타박이나 했지, 요리 한 번 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술을 먹습니까, 담배를 합니까? 그런 호강이 어디 있어요. 힘들어서 가출은 내가 해야 할 판인데, 지가 왜 나가요?"

배수관을 만드는 회사에 있다가 결혼을 하면서 수입이 좀 더 낫다는 제초 작업을 다니던 한씨는 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런 한씨에게 신부는 '아침부터 시끄럽게 군다'고 타박만 하지, 밥상을 차려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 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순하디 순한 한씨는 그간 당한 일이 억울하다는 듯이 토로하면서도 여전히 신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쉼터 입장에서는 처음 한씨의 하소연을 들었을 때, 결혼을 돈이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한 피해의 전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어 소통상의 문제로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한씨에게는 베트남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권하고, 신부에게는 한국어를 배우도록 권했었다. 하지만 둘은 쉼터에서 하는 교육이 무슨 대수랴 하는 태도였었다.

주 상담 대상이 피해 여성들인 우리 쉼터 입장에서는 한씨 같은 경우는 특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씨와 같은 피해자들 역시 종종 우리 쉼터에 들러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이번 달에만 한씨와 비슷한 피해를 당한 남성들의 하소연을 두 건이나 들어야 했다. 한 명은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형이라는 사람이 상담을 해 왔었는데 처음은 중국 한족 여성과 결혼했다가 입국하자마자 가출하는 통에 1300만원을 날렸다고 했다. 두 번째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는데, 이 역시 한 달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신부가 본국에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것도 이미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의 아이라고 했다. 신부 측에서 결혼증명서를 위조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부 측에서 위조했다기보다, 결혼중개업체에서 위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고, 출입국에는 신원보증 철회를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가출한 신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바보스런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여 하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신부가 서류를 위조한 것을 알고도 가출할까봐 눈치를 본다고 했다.

결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결혼중개업체와 입국과 체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돈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보는 잘못된 인식 등이 국제결혼의 이혼율을 높이고 결혼이주민의 가출이나 위장결혼 등을 부추기며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가 급증하는 국제결혼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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