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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부대 배후는 절박한 엄마 마음

노란 풍선은 누구의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

등록|2008.09.20 15:10 수정|2008.09.21 11:16

▲ 지난 7월 2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들이 유모차를 탄 어린이가 있는 가족을 비롯해서 참가자들이 광장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 권우성


촛불 시민과 인터넷 누리꾼들에 대한 당국의 과잉수사가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경찰이 다시 무리수를 범하고 있다. 촛불 시위 때 유모차를 몰고 나온 여성들을 수사하기 시작한 것.

경찰은 19일 "유모차를 끌고나와 불법시위를 벌인 '유모차부대' 카페회원 유모씨(37·여)에 대해선 조사를 마쳤고, 다른 두 명에 대해서도 출석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유모차 시위를 주동했으며, 유모차를 이용해 경찰 물대포차 2대의 진로를 가로막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두 명이 출석에 불응했으며 "다음 주에 3차까지 출두를 요구하겠다"면서 "만약 불응하면 법적 절차에 따라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현장을 촬영한 채증 사진과 동영상 등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들이 매일 나온 점, 풍선·팸플릿·깃발을 미리 준비한 점, 사전 공지를 통해 부부동반으로 나온 점 등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노란 풍선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

경찰은 실제로 지난 18일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정씨의 집을 방문해서 지난 6월 28일에 채증한 사진 3장을 보여주며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등 이것저것을 물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정씨는 '촛불시위 때 들고 나온 노란 풍선 구입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전했다.

또한 경찰은 "유모차부대 엄마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왔다"고 했고, "혐의가 뭐냐"는 질문에 '아줌마들을 선동한 혐의'라고 했으며, 남편이 일하는 회사와 근무 기간과 직급 등을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 직장에 우리가 찾아가면 불편하게 되니 남편과 같이 출두하라'고 마치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처럼 말했다고 정씨는 전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경찰은 허다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먼저 경찰은 광장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일을 근거 없이 '불법'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찰 말대로 과연 유모차가 물대포차를 가로막는 일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 시민의 '보행·산책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민주 사회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처사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자유 중의 하나라는 점을 경찰이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조사할 일이 있으면 서면으로 출두요구서를 보내면 될 일이지 불쑥 집으로 찾아가는 것은 당사자를 현행범처럼 취급하여 겁을 주려는 의도로 비친다. 이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또한 남편의 회사와 직급을 운운한 것 역시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의 협박 수준이다.

기회주의적 처신이 지지율 하락의 주요인

가장 희극적인 것은 '노란 풍선' 운운이다. 경찰은 노란 풍선의 구입 경위를 꼬치꼬치 물었다는데 이것이야말로 시위의 배후를 염두에 두고 하는 짓처럼 보인다. 이것은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의 배후 제기설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0% 대에서 정체하고 있다. 이것은 전직 대통령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부끄러운 수치이다. 이 대통령은 불과 6개월 전 자기 지지자의 과반수를 잃고 만 것이다. 일본의 후쿠다 총리는 20%대의 지지율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했다. 청와대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지도를 낮추는 요인 중에서 결정적인 것이 촛불에 대한 기회주의적 처신임을 아는지?

이 대통령은 처음에는 촛불 배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가 촛불이 더 거세지자 두 번에 걸쳐 '아침이슬'까지 운운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촛불이 수그러들자 또 다시 강경기조로 돌아섰다. 그러더니 이제는 유모차 아줌마들에게까지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어청수 경찰청장 역시 전형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일삼고 있다. 광화문 대로에 컨테이너를 쌓아 대통령의 신뢰를 듬뿍 얻은 그는 한 때 의기양양해져서 조계종 총무원장의 승용차까지 검색하더니, 불교계와 국민여론 사퇴 요구에 직면하자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며 사과를 구걸하고 다녔다. 그는 강남경찰서에는 부하 직원에게 쌍소리까지 하며 호통을 치더니 이번에는 힘없는 유모차 아줌마들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유모차가 폭력적인가

시위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것은 곧 아기와 함께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나온 것은 당연히 비폭력적이고 평화적 시위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곧잘 폭력성을 든다. 이 대통령도 '국민과의 대화'에서 촛불시위가 처음에는 국민 다수가 참가했지만 나중에는 폭력화했다고 말한 바 있다.

촛불시위가 폭력적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지만 만에 하나 그랬다손 치더라도 유모차 시위만은 전혀 폭력적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유모차 시위에는 불법의 요소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 아줌마들의 유모차 시위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시위로 인류 역사에 회자될 정도가 아닐까?

다음으로 유모차 시위가 갖는 절박성을 헤아려야 한다. 쉽게 말해 오죽 했으면 아기를 데리고 시위 현장에 나왔겠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아기를 안전하게 맡길 만한 데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서민들이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 중에는 우리 아기에게 위험한 쇠고기를 먹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는 우리 아기에게 위험한 쇠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 나온 아줌마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위험한 줄도 모르고 무작정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유모차 시위의 특수성이 있다. 설령 유모차 시위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시위가 갖는 비폭력성과 서민적 절박성만은 동의하리라고 본다. 이런 아줌마들을 무슨 배후라도 끼고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인 양 몰아가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에 앞서 인간적인 면에서도 옹졸하고 치사한 작태에 불과하다. 모든 국민들은 옹졸하고 치사한 공권력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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