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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모르면 아기도 못 키우는 나라

[우리 말에 마음쓰기 428] 베비라, 해피랜드, agabang

등록|2008.09.21 12:31 수정|2008.09.21 12:31
하루 내 칭얼거리고 조금도 잠들지 않아 지어미와 지아비를 고단하게 했던 아기가 밤에는 새근새근 잠을 잡니다. 때때로 짤막하게 끙끙거리는데, 가을답지 않게 무더운 밤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무더운 날씨에는 아기뿐 아니라 어른도 잠자기 힘듭니다. 더욱이, 날씨가 미치니 모기도 미쳐서 아주 들끓습니다.

지난해에도 미친날씨라고 했으나 지지난해에도 미친날씨라 했고, 지지지난해에도 미친날씨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터가 미친날씨로 휘감긴 때는 언제가 처음이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러니까 박정희 경제개발이 막을 내린 다음 올림픽을 고빗사위로 또다시 경제개발로 치닫게 된 그때부터 아닐까 싶습니다. 무지개가 사라지고 뭉게구름이 사라지며 소나기가 자취를 감춘 때도 이때부터이지 싶고요.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 아기가 쓸 기저귀며 젖병이며 배냇저고리며 선물해 준 분들이 많습니다. 새 것을 주신 분들이 더러 있으나 쓰던 물건을 주신 분들이 더 많습니다. 저희로서는 쓰던 물건을 물려받아 되쓰는 일이 참 고맙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몇까지 낳을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첫 아이한테 쓴 물건은 고스란히 둘째한테 물려줄 테고, 둘째가 쓰던 물건은 셋째한테 물려주겠지요.

그러다가 이웃 가운데 아기가 태어나는 집이 있으면 그리로 넘겨줄 수 있으며, 먼 뒷날 우리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서 사랑하는 님을 만나 살림을 꾸리고 아기를 낳을 무렵이 되면, 바로 자기가 쓰던 물건을 자기 아이한테까지 물려주면서 쓸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보리차를 끓여 선물받은 젖병에 담아서 아기한테 물립니다. 젖을 물리는 사이사이 더운 날씨에 목이 마를 듯해서 조금씩 보리차를 먹입니다. 이제 젖병이 아닌 그릇에 담아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이는데, 젖병을 물릴라치면 으레 십 분이나 이십 분쯤 그대로 있곤 합니다. 이때, 젖병에 적힌 글씨를 읽어 봅니다.

 ┌ cheerfulness afternoon warm sunlight
 └ agabang

뭔가 꼬부랑글씨로 적혀 있네요. 뭔 소리일까, 한참 생각해 보는데, “즐거운 낮나절, 따뜻한 햇살”이란 소리인가 싶습니다. 그 밑에 적힌 알파벳은 이 젖병을 만든 회사이름 ‘아가방’이 아닐까 싶군요. 어차피 젖병에 적는 말이면, 여태까지 나온 동시 가운데 사랑스럽고 애틋한 작품을 몇 골라서 새겨 놓아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한테 채우는 천기저귀 가운데 절반은 옆지기 어린 동생이 열두 해 앞서 쓰던 녀석들입니다. 요 천기저귀에도 뭔가 적혀 있습니다.

― 해피랜드

적히기로는 한글이지만, 말로는 영어인 ‘해피랜드’를 곱씹습니다. 아주 어릴 적,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노라면 흘러나오던 이곳 광고노래가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이제 와 더듬어 보니 ‘즐거운 땅’이나 ‘즐거운 나라’를 나타내려고 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내 썼다가, 날이 후덥지근해서 요사이는 안 쓰고 있습니다만, 날이 선선해지거나 추워지면 쓸 방수담요가 두 장 있습니다. 한 장은 우리가 샀고 한 장은 선물받았습니다. 깔깔한 방수천은 아기가 싫어할 듯해서 안 쓰고 있다가, 오히려 요즈음 같은 날씨에는 방수천이 낫다 싶어서 방수담요를 개 놓았는데, 방수담요를 사러 아기용품 가게에 들렀더니, 이곳에서 파는 물건마다,

 ― babyra

라고 알파벳으로 적혀 있습니다. 코딱지만큼 조그마한 글씨로 적힌 값딱지에는 한글로 ‘베비라’라 적혀 있습니다. 베비라. ‘아기라’인가? 알쏭달쏭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어 인터넷으로 들어가 이곳 누리집을 찾아봅니다. ‘아기(baby) + 하느님/신(ra)’이라는 뜻으로 ‘베비라’로 지었다고 나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곳에서 만든 55만 원짜리 ‘리치 원목침대’를 구경해 보고, ‘BABYRA 2008 SUMMER COLLECTION’을 들여다보며, ‘BABYRA 2008 SPRING COLLECTION’도 구경해 봅니다.

베비라 회사 인터넷방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방이 있는데, 이 가운데 ‘베스트맘-베이비닥터-베비라송’이 눈에 뜨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이름나기도 하고 사랑받기도 하는 ‘아이 키우는 사람들 모임’ 이름이 한결같이 ‘아무개 맘’으로 되어 있곤 합니다.

처음 ‘아무개 맘’이라는 모임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아무개 씨 마음대로 뭘 한다’는 소리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 알고 보니, ‘엄마’를 영어로 ‘맘(mam)’이라 하기에, ‘인천맘-서울맘-경기맘-제주맘-부산맘’처럼 쓰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참말로, 모르면 배워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사람들이 죄다 흔히 쓰고 있는 말도 모르면서 무슨 아이를 낳아서 키우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문득, 아기 아버지를 가리킬 때에 ‘아무개 팜’이라고 하나 궁금해집니다. 인터넷을 뒤적뒤적해 봅니다. 오, 나옵니다. ‘싱글맘’과 ‘싱글팜’이라는 이름과 모임이 줄줄줄 뜹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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