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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금을 원했어, 금이 힘을 주었기 때문에…

<서평> 제롬 클레망의 <딸과 함께 문화 논쟁>

등록|2008.09.22 08:51 수정|2008.09.22 08:51
그저 부럽다!

▲ <딸과 함께 문화 논쟁> 표지 ⓒ 에코리브르


부러웠다. 문화를 주제로 책 한 권을 엮어낼 정도로 치열한 토론을 할 수 있는 열려 있는 딸과 아빠의 관계가 한없이 부러웠다. 시험이다 대학이다 매달리느라 대화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든 아들을 둔 대한민국 아빠로서는.

아르테 TV의 대표 제롬 클레망과 열일곱 살짜리 딸 쥐디트가 '문화'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토론의 전 과정을 녹음하고 녹음한 것을 타자기로 옮겨 책으로 출간했다. 책 제목이 <딸과 함께 문화 논쟁>이다.

128쪽의 작은 책이지만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다. 쥐디트는 열일곱 살 특유의 생각을 거침
없이 쏟아 놓는다. 아빠는 그런 딸 앞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딸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딸 : 모르겠어요. 그런데 전 프랑스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1998년에는 우리가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했으니까요. 그건 대단한 사건이었죠.
아빠 : 아,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프랑스가 네게 상관없지는 않은 게군.

딸 : 전 결승전이 열리던 날 샹젤리제에서 기쁨을 만끽했어요.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저와 프랑스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뭐 프랑스는 꽤 풍요로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멋진 건물들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긴 해요.
아빠 : 네게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지 않아?

딸 :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영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많은 외국인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참 운이 좋아. 너는 잘 살잖아. 그리고 파리는 굉장해." 그래서 기쁘긴 했지만, 프랑스에 대한 사랑이라…저는 그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해요.

딸은 '유럽', 아빠는 '프랑스'

어릴 때부터 유로화 이야기를 듣고 유럽이 자신들의 세계라 들으며 자란 딸과 유럽보다는 조국 프랑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빠 사이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의 역사, 철학, 예술, 문화를 넘나들면서.

딸과 아빠의 대화가 항상 대립하는 건 물론 아니다. ‘지리상 발견’이라고도 하고 ‘신대륙 발견’이라고도 하는 유럽 세력의 침략 행위에 대해 딸과 아빠는 공감대를 보여준다. 

아빠 : 그들은 16세기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 출발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단다. 그곳 사람들은 유럽인들과는 다른 신을 숭배하고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고는 굉장히 놀라워했지. 이건 콜럼버스와 코르테스의 이야기야.

넌 학교에서 이미 그 역사를 배웠잖아. 그들은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기록도 했지. 심지어 코르테스는 인디오 여자인 말린치와 결혼을 했고, 인디언 학교를 만들기도 했지.

딸 : 네, 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진정으로 아메리카 자체에 애정을 둔 건 아니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무엇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말살했으니까요.

아빠 : 사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에스파냐, 포르투갈,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까닭은 이 지역의 자원을 탐냈기 때문이란다. 몽테를랑은 “그들은 금을 원했다. 왜냐하면 금이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힘을 원했다. 왜냐하면 힘이 금을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적었지.

딸과 아버지의 대화는 거침없이 이어진다. 토지 경작부터 만화, 고전, 학술 문화, 대중 문화, 책, 텔레비전, 인터넷 등등. 이들의 대화는 세계화의 영향과 정체성까지 파고든다. 세계화란 이름으로 획일화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활동인 문화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토론한다.
덧붙이는 글 제롬 클레망 지음/안수연 옮김/에코리브르/2008.8/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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