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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붓질 속에 '태풍의 눈' 가두다

24일~30일, 서양화가 정순옥 두 번째 개인전

등록|2008.09.24 18:30 수정|2008.09.24 18:30

숲의 노래경남 마산에서 활발한 그림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양화가 정순옥(49)이 제2회 개인전을 연다 ⓒ 정순옥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몹시 거칠게 부는 날 태어났다 하여 '바람의 딸'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서양화가 정순옥.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 곳곳에서는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있는 바람이 되어 '성의 노래'가 된다. 그 바람은 성을 휘돌아 '가포의 시'가 되기도 하고, '앙상블'이 되어 저만치 다가올 미래를 향해 분다. 

'잃어버린 도시'를 실바람으로 거닐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새벽을 열'기도 하는 그 바람. 그 바람은 이제 그가 태어날 때 불었던 사라호 태풍처럼 삼라만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그런 모질고도 몹쓸 바람이 아니다. '숲' 속에 조용히 파묻혀 '숲의 노래'를 듣는 포근하고도 아늑한 바람이다.

'바람의 딸' 정순옥. 그는 요즈음 그림 속에 포옥 빠져 산다. 아니, 비구상(추상)을 찍어내는 붓질 속에 그 거센 태풍의 핵을 가둬 다독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그는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마침내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까지 마치 사라호 태풍이 지나간 폐허 같은 고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청보라색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번 전시회에 걸리는 그림들에서도 청보라색이 들어가지 않은 그림이 거의 없을 정도인 것만 보아도 그가 청보라색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그는 왜 청보라색을 그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그림 속에 있다.

정순옥 개인전 리플릿24일(수)부터 오는 30일(화)까지 마산 대우백화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새벽을 열며1,2' '숲의 노래' '성의 노래' '가포의 시' '앙상블' '숲' '숲을 열며' '기억의 저 편1,2' '잃어버린 도시' '독도' 등 모두 50여 편이 전시된다 ⓒ 이종찬


성의 노래그의 작품은 캄캄한 밤중 먼 시골 초가집 들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화등잔 불빛을 보듯이 마음의 작은 흔들림을 준다 ⓒ 정순옥


'새벽을 열며1,2' '숲의 노래' '성의 노래' 등 50여 편 전시

"우리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것은 '그림(여타 예술작품을 포함하여)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나 좋아서 한 아름으로 부둥켜안고 싶다'는 뜻이다.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생산해야 하는 사명감과 책임을 갖추어야 하며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헌 김상곤, '정순옥 작품전에 즈음하여' 몇 토막

갈빛 가을바람이 이마를 시원스레 스치는 9월 끝자락. 경남 마산에서 활발한 그림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양화가 정순옥(49)이 제2회 개인전을 연다. 지난해 8월 초, 제1회 개인전을 서울 '호' 갤러리에서 연지 1년 반 만이니, 빠른 편이다. 어찌 보면 젊은 날 제대로 하지 못했던 작품활동을 불혹의 나이에 다 펼쳐 보이겠다는 투다.

24일(수)부터 오는 30일(화)까지 마산 대우백화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새벽을 열며1,2' '숲의 노래' '성의 노래' '가포의 시' '앙상블' '숲' '숲을 열며' '기억의 저 편1,2' '잃어버린 도시' '독도' 등 모두 50여 편이 전시된다. 오픈 행사는 24일(수) 저녁 7시 마산 대우백회점 갤러리.    

미술평론가 아헌 김상곤(75) 선생은 "서양화가 정순옥 작가의 경우 그림 작업과정을 곁에서 곰곰이 지켜보고 있으면 여러 물감들 가운데 비교적 쉽게 마르는 아크릴로 마치엘을 내고 그 위에 먹물을 갈아 뿌린 다음 작품구도에 맞는 자기만의 색상을 찍어내는 독특한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김 선생은 "그의 작품은 캄캄한 밤중 먼 시골 초가집 들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화등잔 불빛을 보듯이 마음의 작은 흔들림을 준다"며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주는 가슴 뭉클한 웅장함을 주지는 못하지만 리스트의 교향시 가운데 피아니시모를 들을 때 느끼는 가느다란 떨림을 경험하게 된다"고 평했다.

잃어버린 도시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주는 가슴 뭉클한 웅장함을 주지는 못하지만 리스트의 교향시 가운데 피아니시모를 들을 때 느끼는 가느다란 떨림을 경험하게 된다 ⓒ 정순옥


앙상블'앙상블' 앞에 서자 오래 묵은 옛 기억 속에 묻혀 잊혀져가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이 영혼의 실루엣이 되어 어른거리고 있는 듯하다 ⓒ 정순옥


가포의 시'가포의 시'에는 오래 묵은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가지만 앙상하게 남긴 채 푸르른 여명을 맞고 있다 ⓒ 정순옥


이번 전시회에는 비구상의 주제가 보인다

서양화가 정순옥은 "1회 전시회 때의 그림은 모두 완전한 비구상 작품이었다"며 "이번 전시회는 주제가 보인다"고 말한다. "주제가 보인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일 테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자연의 속내가 희마하게나마 보인다고나 해야 할까"라며 '숲의 노래'에 눈길을 툭 던진다.

'숲의 노래'를 찬찬히 바라보자 그곳에는 온통 검은 그물이 촘촘히 둘러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검은 그물 속에 마치 이 세상의 희노애락 같은 진황색, 희색, 연분홍색, 청보라색 등이 촘촘촘 박혀 있다. 언뜻 보기에 검은 그물이 희노애락을 몽땅 건져 올리며 이 세상을 눈물처럼 줄줄 흘리고 있는 듯하다.

'앙상블' 앞에 서자 오래 묵은 옛 기억 속에 묻혀 잊혀져가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이 영혼의 실루엣이 되어 어른거리고 있는 듯하다. '가포의 시'에는 오래 묵은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가지만 앙상하게 남긴 채 푸른 여명을 맞고 있다. 이들 작품에도 작가가 즐겨 쓰는 청보라색이 화폭을 채운다. '기억의 저편'에도 어김없이 청보라색이 가득하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작가가 평소 즐겨 쓰는 청보라색과 검은색 사이에 흰색과 노랑색, 연초록색, 붉은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주제가 보인다'의 그 '주제'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회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어둡고 칙칙했던 그림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은 지난 13일(토) 저녁 7시, 전시회를 앞두고 마산에 있는 한 목로주점에서 만난 서양화가 정순옥과의 일문일답이다.

정순옥 서양화가 정순옥은 195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지난 1983년 '그룹과 파트전'을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이종찬


-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하도 가난한 탓에 물감을 구하지 못해 제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사생화를 그리다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정물과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턴 비구상 작품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1회 개인전에 전시하지 못했던 작품도 전시한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이번 작품이 대체적으로 많이 밝아졌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지난 1회 개인전 때는 비구상이라도 주제가 거의 없는 완전한 비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주제가 보인다."

- 비구상이라면 실체가 없다는 뜻인데, 주제가 보인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비구상에서 '주제가 보인다'라는 말은 자연의 내면의 모습이 보인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어떤 것을 찾아내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삼라만상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 이번 전시회에 걸린 그림에 담고자 했던 내용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이다. 비구상은 그 자체가 형체를 흩어버리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어 글로써 나타낼 수 없는 것이라 본다. 저는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 이번 그림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청색이 많다. 그 까닭은?
"청색이 아니라 청보라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청보라색을 좋아하는 것은 제 성격에서 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청보라색은 환상적이며 귀족색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환상적이거나 귀족적인 때가 없었다. 청보라색은 그저 차분해서 좋아하는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와 내년에는 그룹전 일정이 많이 잡혀 있다. 개인전은 2~3년 지난 뒤에 서울에서 열 계획이다.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작업에 매달릴 것이다. 예술의 길은 끝이 없으니까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는가."

서양화가 정순옥은 195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지난 1983년 '그룹과 파트전'을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상지전', 2006년에는 '마산미술협회전'과 '여수, 마산 교류전', '뉴욕과 서울 순화교류전', 2007년에는 제1회 개인전(서울 호 갤러리)을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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