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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내리는데 왜 강북사람이 돈 더내?"

[현장 르포] 종부세 완화 '유탄' 맞은 서민들... 부글부글

등록|2008.09.25 09:32 수정|2008.09.25 14:24

▲ 도봉구 창동 아파트 단지 전경 ⓒ 이경태


"부자들을 위한 거지. 우리 서민들 위하는 건 아냐. 대통령도 어렵게 살아봤으면서 우리 마음을 그렇게 모를까."
"언니. 시골은 더 난리요. 경제 살려놓으라고 뽑아놨더니 왜 더 살기 힘드냐고... 미국이 저리됐는데 제2의 IMF가 오는 게 아니냐고 말이요."

24일 오전 도봉구 창동 주공 아파트 단지 놀이터 평상에서 밤을 까고 있던 아주머니들에게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완화 이야기를 슬쩍 꺼내니 기다렸다는 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까던 밤마저 뒤로 밀어놓은 채 "어제 아파트 주민들끼리 이명박 대통령 하는 꼴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말이 나오는 등 여론이 형편없다"는 말부터 "지난번 정부보다 나을 줄 알았더니 낫긴 개뿔이 낫냐"는 핀잔까지 이어졌다.

국민 중 2%만 내는 종부세를 내리고 국민 다수가 내는 재산세를 더 거둬들이겠다는 '조세 원칙'은 강북 서민들에게 거침없이 질타당했다.

종부세 완화안 '유탄' 맞은 강북 서민들, "정부가 서민 화 돋우고 있다"

▲ 종부세 과세 기준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세율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부세 개편방안을 23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정부가 23일 확정 발표한 종부세 개정안을 살펴보면 올해 공시가격의 55%였던 과표 적용률이 80%로 높아져, 내년도 주택 재산세 납세자가 부담해야 할 재산세가 산술적으로 25% 가까이 오른다. 게다가 정부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부동산 교부세로 전액 지원된 종부세가 줄어들었을 때 그 감소분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못 내놓은 상태다.

17년째 이곳, 창동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김희자(58)씨는 "종부세 폐지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니 그러려니 했는데 느닷없이 재산세가 오른다는데 이것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더라"며 "강북 사람들에게 해당 사항 없는 종부세가 폐지되는데 왜 강북 사람들이 돈을 더 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정부안대로)재산세를 계산해보면 우리 집은 20만원 가까이 재산세를 내야 한다"며 "더 내는 돈의 액수는 적지만 안 그래도 가계가 어려워지는데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돈을 더 내라고 하니 괘씸하다"고 말했다.

"우리야 자식들이 분가해 나가 사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내 자식들과 같이 젊은 사람들도 돈을 모아야 집도 사고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없는 사람한테 세금 더 거두고, 있는 사람들만 챙기면 어디 이 세상 살맛이 나겠나."

김씨는 요새 들어 촛불시위를 한 젊은이들도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저런 짓이나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얼마나 쌓였던 게 많았으면 저리 나왔나'라고 생각한단다.

"정부가 사람들의 화를 너무 돋우고 있다. 이 상태로 간다면 대통령이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 한 번 당했는데 제2의 노무현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60대 노인도, 가정주부도... "강남 부자만을 위한 정부, 선거 잘못했다"

▲ 23일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개편방안에 따르면 종부세 납부 기준이 9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되면서 개인 주택 분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총 37만9천세대(2007년 기준)에서 15만6천세대로 60% 가까이 감소한다. ⓒ 남소연


어린 아이를 둔 부모는 김씨보다 더 마음이 곪고 있었다. 4살 난 딸아이와 함께 놀이터로 온 정아무개(45)씨는 "우리 집은 늘어봤자 1만7천원 정도지만 자꾸 서민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한달에 30~35만원이 든다는 이야기에 포기했다.

"기본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내후년에는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다. 그런데 처음 입학하면 100만원이 든단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빚은 안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먹는 거, 입는 거를 더 줄여야 할 것 같다."

강북구 번동 금호타운 앞에서 만난 박현숙(40)씨의 장바구니에는 앞서 만난 정씨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두부 1모, 고등어 반손, 애호박. 오늘 저녁 찬거리다.

전용 95㎡(28평) 소형 아파트에서 남편과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살고 있는 박씨에게 종부세는 남의 이야기였다. 박씨는 "올해 초에 집값이 좀 오르긴 올랐는데, 어차피 여기 팔고 어디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묻어놓은 돈이다"며 "집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도 강남에 집이 있는 사람이 10억 넘게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종부세 완화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적은 돈이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종부세 대상자였고 이번에 혜택을 본다는 뉴스를 보니 화가 치솟더라"며 "이명박 정부는 강남 부자만을 위한 정부다, 우리 구 국회의원이 한나라당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도봉구 쌍문동 한양아파트 노인정 앞에서 만난 임창수(61)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대뜸 '나쁜 놈'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임씨에게 현재 장남 내외, 그리고 5살 난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전용면적 99㎡(30평) 아파트는 자신이 30년 간의 직장 생활을 거쳐 겨우 마련한 집이었다.

"내 집을 가진 게 내 나이 44살 때였다. 그 이후로 이곳에서 쭉 살아왔다. 먼저 간 아내랑 같이 서울에서 집 하나 갖기 위해 얼마나 알뜰하게 살았는지 모른다. 서울에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 집 몇 채나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선거를 잘못한 것 같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다 나쁜 놈들이다."

집 없는 사람들 "무주택자 위한 부동산 정책 편다더니 한숨만 나온다"

▲ 강북 아파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 벽에 붙은 주택 가격은 대개 3억원에서 6억원 사이였다 ⓒ 이경태

한편, 집을 못 가진 사람들, 재산세 안 내는 사람들은 이번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서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장위뉴타운, 드림랜드 공사 등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성북구 하월곡동 D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이아무개(35)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살고 있는 전용면적 82㎡(24평)의 전세가격은 1억3천만원 작년보다 2000만원 가까이 올랐다.

현재 이씨는 5살 난 다른 집 남자아이를 봐주는 '보모' 부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 부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월 30만원 정도가 이씨에게 떨어진다. 이씨는 "전세금이 올라 은행에서 대출을 좀 했다"며 "이자라도 덜어볼 생각으로 부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에게 종부세 완화, 그리고 그에 따른 재산세 상승 등은 무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곤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 신설이나 종부세 완화가 집 있는 사람에게나 통할 이야기라는 것이다.

"종부세 완화도 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적어도 20평이 넘는 집으로 들어가려면 최소한 2억이 넘는 돈이 필요한데 빚 갚기도 빠듯한 처지에 꿈도 꿀 수 없다. 남편이랑 '평생 집 없이 사는 거 아니냐'는 한탄 비슷한 걸 한다. 정부가 무주택자, 서민 위해서 부동산 정책 편다더니 결국 우리는 꿈도 못 꾸는 집만 늘어나고 전세금은 올라간다. 한숨만 나온다."

이씨와 헤어지면서 D 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벽에 붙은 아파트 가격을 흘끗 쳐다봤다. 전용면적 138㎡(41평) 거래가 6억원, 지난 23일 압구정동에서 본 전용면적 112㎡(33평) 거래가의 딱 반절이었다. 종부세 완화라는 또 하나의 '강남 불패 신화'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강북 서민의 박탈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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