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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바닷가인데 왜 강이라 했지?

전라북도 부안군 내변산 산행을 다녀와서

등록|2008.09.26 10:03 수정|2008.09.26 10:03

▲ 내소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꽃살문  ⓒ 김연옥


한번 절집 내소사에 가서 그곳 대웅보전의 꽃살문을 내 눈에, 내 마음에 꼭 담아 오고 싶었다. 어쩌다 스쳐 지나간 인연을 못 잊어 혼자 애태우며 끙끙 앓는 순박한 처녀처럼 내소사 꽃살문은 먼 그리움이 되어 늘 내 마음 한 자락에 들어앉아 있었다. 마침 내소사를 낀 내변산(508.6m) 산행을 떠나는 '청산등산클럽' 회원들을 따라 지난 21일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을 향해 길을 나서게 되었다.
마산서 새벽 5시 40분에 출발한 우리 일행이 변산반도국립공원 남여치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20분께. 일찍 집을 나서느라고 잠을 설쳤지만 간밤에 내린 비로 한층 더 싱그러운 숲길을 걸어가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둔탁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면 마치 무거운 일상을 자연의 품속에 내려놓는 것 같은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 직소보의 아름다운 풍경  ⓒ 김연옥



변산은 채석강, 적벽강, 격포해수욕장 등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외변산, 그리고 변산반도 내륙 쪽으로 의상봉(508.6m)을 비롯하여 관음봉(424m), 쌍선봉, 선인봉 등 그윽한 산들과 이름난 절집인 내소사, 개암사 등이 있는 내변산으로 구분된다. 낭만의 바다가 있는 외변산과 운치 있는 산이 있는 내변산이 어우러져 발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르막이 많은 산길을 40분 남짓 걸었을까, 아스라이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신라 신문왕 12년(692)에 부설거사가 세웠다는 월명암(月明庵)에 가까워졌다는 소리다. 그곳에서 그 절집까지 거리는 0.2km. 잠시 후 쌍선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월명암 대웅전에 이르자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한참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 직소보 ⓒ 김연옥


나는 곧장 월명암에서 나와 호젓한 길 따라 혼자서 계속 걸어갔다.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따금 내 발길을 붙잡기도 했다. 30분이 채 안되어 산악회 회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와 있는 사람들 틈에 끼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때가 11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이른 점심이었지만 산행하는 길에 여럿이 함께 먹는 점심은 언제나 맛있다.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아름다운 직소보가 그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직소보는 직소폭포에서 떨어져 내린 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저수지로 깊은 산속의 호수 같이 고요하기만 했다. 그 잔잔한 풍경은 숲속에 숨겨 둔 보물을 엿보는 듯한 떨림이 되어 내 마음을 자꾸 흔들어 댔다.

▲ 직소폭포  ⓒ 김연옥


내변산의 명물인 직소폭포는 그곳에서 10분 남짓 떨어져 있다. 30여 미터에 이르는 암벽 사이로 하얗게 부서지며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는 직소폭포. 소(沼)도 깊어 용이 올라간 곳이란 뜻으로 실상용추(實相龍湫)라고 부르고 있다. 그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분옥담, 선녀탕을 만들며 봉래구곡(蓬萊九曲)을 이룬다. 무더운 한여름을 지나서 그런지 가까이에서보다 먼 곳에서 그 폭포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더 정감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의 풍경, 내소사 꽃살문

재백이고개로 가는 길은 산책하기에 좋을 만큼 평탄하다. 재백이고개에서 오르막인 관음봉 삼거리로 올라간 뒤 내소사 가는 길로 하산을 했다. 수령이 평균 110년이라는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을 거쳐 내소사(來蘇寺,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께. 천년이란 세월을 버텨 온 우람한 느티나무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 (사진 왼쪽) 관음봉이 가까이에 보인다.  ⓒ 김연옥


하산하는 길에 아스라이 보이는 내소사의 풍경.  ⓒ 김연옥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 스님이 세운 절로 본디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다 한다. 그런데 소래사가 왜 내소사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그 사연을 알 수 있는 사료는 없다. 중국 당나라 무장인 소정방(蘇定方)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나는 높이가 103cm로 정교한 표현과 사실적인 수법으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7호)을 보러 갔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에 위치한 청림사에서 만든 것으로 그 절집이 폐사가 된 후 조선 철종 때 내소사로 옮겨 왔다고 한다.

▲ 내소사 대웅보전  ⓒ 김연옥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선사가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불에 타 버린 절을 다시 세울 때  지어진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은 수백 년 세월 속에 단청이 벗겨지고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다포계 양식에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 꽃무늬를 정교하게 새긴 대웅보전의 문살은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꽃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향기도 은은히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또 매우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살문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내 눈에, 내 마음에 꼭꼭 담을 수밖에.

▲ 내소사 사천왕문에 이르는 길 또한 전나무 숲길 못지 않게 예뻤다.  ⓒ 김연옥


▲ 내소사에서  ⓒ 김연옥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함께 나누고 싶은 숲길로 선정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700여 그루 전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그 길을 거닐면 전나무 특유의 맑은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기쁨을 느끼리라. 게다가 천왕문에 이르는 길 또한 예뻐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채석강은 강이다?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집 내소사를 뒤로하고 나는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갔다. 산행을 끝내면 소위 '뒤풀이'라는 게 있다. 장만해 온 음식을 먹고 술잔도 가볍게 주고받으면서 산행 길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우리는 뒤풀이를 마친 뒤 그곳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채석강(전북기념물 제28호,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으로 달려갔다.

▲ 채석강에서.  ⓒ 김연옥


채석강(彩石江)은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 오른쪽으로 있는 닭이봉 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말한다. 바닷물의 침식으로 퇴적된 절벽이 마치 만권(萬卷)의 책을 쌓아 올린 것 같은 모습이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더욱 멋스럽다.

그런데 바닷가의 절벽에 어떻게 강(江)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그것은 술에 취한 채 뱃놀이를 하던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버린 채석강과 흡사하기 때문이라 한다.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으로 불렸던 내변산으로 훌쩍 떠난 산행. 참으로 긴긴 하루였다. 염전과 젓갈로 이름난 곰소항에도 한번 들르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지만 마산으로 돌아가기에도 늦은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서울) 서해안고속도로: 서서울→부안 I.C→변산 /호남고속도로: 서울→회덕분기점→신태인 I.C→부안→변산
*(대구) 남대구 I.C→(구마고속도로)→옥포 JC→(88올림픽고속도로)→고서 JC→(호남고속도로)→동광주 TG→광주 TG→정읍 I.C→변산
*(부산) 부산 I.C→(남해고속도로)→대저 JC→순천 I.C→(호남고속도로)→서순천 I.C→동광주 TG→광주 TG→정읍 I.C→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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