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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헌법상 책무 완수 못해 죄송합니다"

이용훈 대법원장, 사법부 과거사 대국민 사과..."재심절차 밟는 게 효과적"

등록|2008.09.26 11:43 수정|2008.09.26 12:24

▲ 이용훈 대법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헌법 제정·대법원 구성 60주년에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고백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6일 오전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하여 죄송하다"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특히 이 대법원장은 향후 사법부 과거사 청산 방식과 관련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재심절차를 거치는 것"이라며 "앞으로 재심절차가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 2005년 취임 직후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이 대국민 사과 수준에서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사법부의 독립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지난 60년의 자취를 돌아보면 자랑할 만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고백을 시작했다.

그는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법원장은 "저를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러한 불행한 과거가 사법부의 권위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적지 않은 손상을 주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를 향하여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도덕적 용기와 자기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장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하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또한 이 대법원장은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구체적 작업은 사법 정의의 회복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 안정성 같은 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춰가며 추진해야 한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재심절차를 거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민족일보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사건 등 상당수 사건에 대하여 지난날의 과오를 시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며 "앞으로도 재심절차가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이 대법원장은 "대법원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각종 시국관련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며 "그 결과는 대한민국 사법부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조만간 발간될 사법부 역사자료에 포함시켜 국민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불행한 일들을 교훈삼아 법관의 양심과 사법의 독립을 굳게 지켜나가겠다"며 "국민 여러분도 사법부의 이런 노력을 애정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연말 발행 '법원 60년사'에 '잘못된 판결' 제대로 언급할까?

이 대법원장은 지난 2005년 9월 26일 취임 직후 "유신시절 등 암울한 시기 사법부의 잘못을 국민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당시 판결 경향을 조사한 뒤 적당한 시기에 발표하겠다"고 과거사 청산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이후 대법원은 유신·군사정권 시절인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있었던 각종 시국·공안사건 가운데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등 재심사유가 있는 사건 224건을 추려내는 등 사법부 과거사 청산작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75년), 아람회 사건(80년),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82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85년) 등이 포함돼 있다. 

대법원은 연말에 발간할 '법원 60년사' <역사 속의 우리 사법부>(가칭)에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개별 판결을 평가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총론적인 반성과 사과'로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져 '과거사 청산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1월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했고, 여기에 헌법재판소장과 대법관 등 현직 고위법관 10여명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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