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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에 울고웃는 영어 학원, 비리의 온상?

학원 상담실장이 본 이명박 정부의 학원 단속

등록|2008.09.30 10:34 수정|2008.09.30 12:25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학원비가 크게 올라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며 "학원비를 집중 관리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29일에 서울교육청은 학원비 폭리를 막기 위해 최근 개발한 학원 적정수강료 산출시스템을 통해서 수강료 인하를 유도하고 이행하지 않는 학원은 등록말소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학원들의 학원비 담합 인상과  국세청의 세금 탈루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하는 기사를 읽다보니, 마치 시중의 모든 학원들이 사교육비에 관한 온갖 비리와 불법의  온상인듯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금 영어학원에서 상담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 동생으로부터 영어학원을 개원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무척 부정적인 입장에서 반대를 했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제가 알고 지내던, 학원을 운영하던 원장님들 중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학원 임대료를 제때에 내지 못할 만큼 운영난을 겪었습니다. 결국 연체된 임대보증금으로 임대료로 대체한 후 빈손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사례를 보면서 학원 경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동생을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자신의 세 아이를 한 영어학원에 보내게 되면서, 그 교육방법이야말로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중학교부터 오랜 기간동안 영어를 배웠지만, 정작 외국인과 의사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어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소개한 영어학원은 우리말을 배우듯 영어를 언어로 배우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저에게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 그 영어학원에 대해서 잘 알아보라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저는 동생과 함께 2007년 2월에 영어학원을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학원 운영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제가 동생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본사가 직영으로 처음 개원한 학원이 3년이라는 검증 기간을 거친 상태였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도 있었지만, 우리가 하지 않아도 어느 누구라도  그 지역에 그 영어학원이 들어 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학원은 초등, 중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지만, 초등학교 2, 3, 4학년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셔틀버스나 교실에서 서로를 놀리거나 싸우기도 하여 학부모들로부터 항의전화 받기가 다반사이고, 수업중에 친구 의자를 빼버려서 어린 학생이  책상에 머리를 부딪쳐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도 일어납니다.

영어몰입식 교육 발표하자 상담 전화 이어져

▲ 한 학생이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자료 사진). ⓒ 박상규


특히 학원에 근무하다보니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책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을 가장 빠르게 접하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전, 대통령 인수위에서 영어몰입식교육을 실시하겠다 발표했을 때 유난히 많은 학부모들로부터 상담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빈 상가만 나오면 모두 영어학원 장소로 재빠르게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영어강사의 수요가 부족해지면서 급여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당장 학원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지난 여름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끝난 이후, 공정택 교육감이 국제중학교를 설립하여 내년 3월부터 신입생을 받겠다는 발표가 있고 나서도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의 학부모님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아이의 엄마로부터 상담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저희 학원에 다니고 있는 6학년 여학생이 있습니다.  항상 표정이 밝고 영어도 곧잘 하는 아이인데,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운 학생입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일정 금액의 수강료를 할인해 주고 있는데 그 학생이 요즘 자주 결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알아보았더니, 국제중학교를 입학하기 위해서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고등학생들이 대학교 입학를 위한 피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다면,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 국제중학교를 입학하기 위한 입시전쟁에 뛰어 들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만큼 사교육의 범위가 확대되어졌다는 이야기겠죠.

8월 말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국제중에서 특목고로-엄마들의 전쟁>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특목고 입시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또 다른 과외를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이해력, 그리고 조부모의 재력'이 있어야 한다는 한 엄마의 이야기가 퍽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학원강사는 아이들이 국제중학교나 특목고에 진학하면 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수준 높은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사교육이 필요하고, 그 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그 희소성으로 인해 교육비가 훨씬 높게 책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전 지방에서 1박 2일 동안 학원 가맹원장님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이지만, 크게 성공한 학원도 있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학원도 있습니다. 그 원장회의에서 성공한 원장님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원장님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늦은 새벽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학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같은 지역에 개원한 다른 학원과의 경쟁에서 뒤지지않기 위해서 밤잠을 설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을 합니다.

작년 1월, 본사에서 저와 함께 교육을 받았던 지방의 어느 원장님이 생각납니다. 작은 체구의 그분 남편은 그 지역의 대학교에 재직중인 교수님이었고, 두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10여년을 넘게 유치원을 경영했다는 그 원장님은 영어학원을 개원하면 유치원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서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꿈도 목표도 포부도 대단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2007년 2월에 영어학원을 개원을 했습니다. 그 분을 원장회의에서 만나고 온 동생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두 손을 잡았는데, 그 원장님의 기가 모두 빠져 나간듯한  느낌을 받았다구요. 무슨 이유인지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더니, 그동안 생각만큼 학원 운영이 안되어서 이제까지 1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분의 대단했던 열정도, 꿈도 아직까지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안타까웠다며 마음 아파하는 동생의 이야기에 저 또한 안쓰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국제중 입시전략 설명회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 추진계획 발표 이후 시민ㆍ교육단체를 중심으로 국제중 논란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8월 21일 서울 목동 현대41컨벤션센터에서 한 입시전문학원 주최로 '국제중 입시 전략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사교육 시장 확대 시킨 주체가 누구인가요?

국제중학교 설립,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영어몰입교육 등으로 사교육 시장을 확대시킨 주체는 정부입니다. 공교육만으로 국제중학교나 특목고를 진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공교육만으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은  세상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정책들이 말로는 공교육을 살리겠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공교육을 죽이는 정책은 아니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29일자 인터넷에 이런 기사가 실렸더군요.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외국어학원으로 24.6%나 늘어났다고 하네요. 불황 속에서도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먹을 것 덜 먹고, 입을 것 덜 입고 허리띠를 졸라도, 자녀들에 대한 투자만큼은 줄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학원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외국어학원, 입시학원, 놀이방 등이 지난해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학부모처럼 자녀들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물론 학원비의 과다 징수, 심야학원의 불법 교습행위, 시설 무단 변경, 무자격 학원강사, 무자격 원어민 강사등 단속해야지요. 일부 학원에서는 그런 일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학부모님들의 사교육비에 대한 심각한 문제는 학원보다는 소수 학생을 대상으로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불법 고액과외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교육청에 정식으로 허가 받아 운영하고 있는 학원들조차 사교육비에 관한 온갖 비리와 불법의 온상처럼 비춰지게 하는 많은 기사들은 저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정작 정부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학원들만 단속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비슷한 기사가 다음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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