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전자, 해외서 수백억대 소송 왜 당했나
[단독] 파나마·쿠바·터키에서 정부·지역업체들과 심각한 갈등
▲ 삼성과 LG 전자가 최근 파나마와 터키 등 해외사업장에서 제품을 납품하거나, 판매법인 설립과정에서 해당 지역 업체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삼성전자가 쿠바 시장에 수출한 냉장고가 운반되고 있는 모습. ⓒ MTI
삼성과 LG전자가 최근 파나마와 터키 등 해외사업장에서 제품을 납품하거나 판매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업체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업체들은 삼성과 LG전자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으며, 이들이 요구하는 손해배상금은 수백억원대에 달한다.
터키의 최대 가전유통업체인 디지콤(DIGICOM)은 지난 8월 LG전자를 상대로 이스탄불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4월 터키에서 독자적 법인을 설립한 LG전자가 디지콤과의 독점 판매인 계약 등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터키에선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LG전자] 디지콤 "일방적인 계약 파기... 애프터서비스에 지장"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소송장과 현지관계자 등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 2002년 디지콤쪽과 계약을 맺고, 터키에 LG 플라즈마, LCD TV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디지콤은 터키 내에서 1200개의 대리점과 350개의 애프터서비스센터 등을 갖춘 대형 유통업체였다. LG전자 쪽은 이같은 디지콤의 국내 판매망을 통해 주로 LCD TV 등을 팔았고, 올해 터키내 시장 점유율이 20%대까지 상승했다.
5년 넘게 잘 지내던 LG전자와 디지콤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은 올초부터다. 디지콤 쪽은 "LG전자가 4월에 독자적 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 사전에 충분한 협의 등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독점 판매인 계약 해지를 통보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회사는 "LG 쪽이 이 과정에서 부품 공급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아, 고객들에 대한 제품 애프터서비스를 제 때 해주지 못해 회사 이미지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터키의 경우 각종 전자제품의 애프터서비스는 제조회사가 아닌 판매회사가 책임지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디지콤 쪽은 LG전자가 디지콤과의 판매계약 해지 과정에서 부품 공급을 중단해,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서비스 불만 등의 항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 현지의 한 교민은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터키 내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디지콤과 LG전자 사이의 분쟁을 크게 다루면서, 터키 사람들 사이에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도 함께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LG "계약 체결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LG전자 쪽은 "디지콤 쪽에게 터키내 판매권을 인정해주는 어떤 법적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디지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지난 2002년이후 5년 정도 디지콤이 터키내 LG전자의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로 일해왔다"면서 "디지콤에게 LCD TV 등을 공급한 것은 맞지만, 이쪽과 별도의 계약서를 체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스탄불 지사를 올 4월 별도 법인으로 승격하기 위해 지난해 10월께 이미 디지콤쪽에 양해를 구했다"면서 "이후 LG전자 제품의 수입 통관과 판매 등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디지콤에 대한 부품공급 중단 등에 대해선, "공식적인 법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부품은 제대로 공급된 것으로 안다"면서 "4월 이후부턴 디지콤과 거래가 끝난 상태"라고 LG전자 쪽은 밝혔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통보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문제는 지난 2006년초 삼성전자가 쿠바에 수출한 냉장고에서 불거졌다. 삼성이 지난 2006년 1월부터 3월까지 수출한 냉장고는 모두 14만5000여대. 쿠바 노동자들이 창고에 쌓여있는 삼성 냉장고를 점검하고 있다. ⓒ MTI
[삼성전자] 쿠바에 수출한 냉장고에서 기술 결함
LG전자에 이어 삼성전자도 파나마 소재 무역업체로부터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해당 업체는 최근 삼성전자 임직원 등을 상대로 파나마 검찰에 형사 고소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마의 대형 무역업체인 MTI(Multiple Trading Inc)사는 쿠바를 비롯해 남미 지역 국가를 상대로 각종 전자제품 등을 중개하는 회사다. 이 회사가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2년 12월. 삼성 측은 쿠바 등 향후 구매력이 높은 남미시장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MTI 쪽과 2006년 11월까지 가전제품 등의 공급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지난 2006년초 삼성전자가 쿠바에 수출한 냉장고에서 불거졌다.
쿠바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범 국가적으로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추진했으며, 쿠바 가정의 구형 냉장고 교체작업에 착수했다.
삼성쪽은 지난 2005년 말 MTI쪽과 쿠바의 냉장고 교체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하고, 지난 2006년 1월 첫 제품을 쿠바시장에 내놓게 됐다. 삼성이 지난 2006년 1월부터 3월까지 수출한 냉장고는 모두 14만5000여대.
MTI 쪽 관계자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쿠바정부가 요구한 기준에 따라 삼성 쪽과 2006년 1월부터 6개월에 걸쳐 모두 45만대의 냉장고를 공급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쿠바로 들어온 물건에서 기술적 결함이 발견됐고, 삼성 쪽은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들, 냉장 상태 불만족 항의... 해결책 못 만들어
삼성이 MTI쪽을 통해 쿠바로 공급하기로 한 냉장고는 삼성전자 타이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냉장고 문이 하나인 제품으로, 하나의 냉장실 위에 별도의 냉동 공간을 갖고 있는 저가형 냉장고다.
지난 2006년 1월말부터 삼성 제품을 받은 쿠바 주민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냉장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냉동실의 냉동가스 부족 등이 이유였다. 쿠바 정부는 곧바로 수출대행업체인 MTI 쪽에 항의했고, 이는 다시 삼성 쪽에 전달됐다.
MTI 쪽 관계자는 "삼성전자 쪽은 2006년 4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기술팀을 파견했고, 우리는 제품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점을 (삼성 쪽에)분명히 전달했다"면서 "하지만 삼성 쪽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으며, 이후 쿠바정부가 삼성 제품 수입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쪽은 2006년 3월까지 쿠바정부에 냉장고를 수출했다. 수출 물량은 모두 14만5000여대. 6개월에 걸쳐 45만대의 냉장고를 수출하기로 했던 계획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설상가상 MTI 쪽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 삼성 냉장고 공급이 중단된 MTI 쪽과 쿠바정부는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남미지사와 태국지사 등을 상대로 7500만달러(원화 약 80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MTI쪽 관계자는 "삼성쪽으로부터 당초 공급받기로 한 제품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쪽과 손해배상 금액을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라며 "최근 파나마 검찰에 삼성전자 남미지사 등의 임원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제품에 아무런 문제 없다"
이에 삼성전자 쪽은 자신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당초 쿠바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제품을 생산해 공급했으며, 제품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MTI쪽 과는 어떠한 법적인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기 때문에, MTI 쪽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쿠바 정부 쪽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샘플제품을 보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해당 지역에 파견됐던 기술진들도 제품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회사쪽은 이어 "현지에 공급된 제품들은 현재도 생산되고 있으며, 동남아 국가 등 열대지방에서도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다"면서 "쿠바에 공급된 제품 가운데 불만이 제기된 일부에 대해선 신의의 원칙에 따라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어 MTI 쪽과 어떤 법적인 공급 계약서 등을 체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 등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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