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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이렇게 베는 거야"

안성 들녘에서 벌어진 '벼 베기, 메뚜기 잡기, 허수아비 만들기' 체험

등록|2008.09.29 16:53 수정|2008.10.13 18:27

황금들녘이날 구름도 멋있게 떠올랐다. ⓒ 송상호


아이들이 바쁘다. 여름 내내 마주한 뙤약볕에 지쳐 고개 숙인 벼들이 좍 늘어서 있는 논  사이로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가끔씩 어른들과 함께하던 체험시간은 오히려 휴식시간이다. 말하자면 자기네들이 벌인 놀이가 메인이다.

"대장, 누가 먼저 가는 건가?"
"그야 물론 대장인 내가 먼저 가고, 그 다음이 부대장, 그다음이 졸병이지."
"그런데, 부대장은 누구야?"

아이들의 대화는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좁은 논두렁을 행진하려니 한 줄이면 족하다. 그런 형국이니 누가 먼저 갈 것인가, 그 다음은 누가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아이들 세계의 '작은 서열 정하기 문화'일 듯.

사실 오늘 어른들이 정한 타이틀은 "2008 농촌체험 '벼 베기, 메뚜기 잡기'"이다. '안성의료생협 생활재공동구매모임'(http://www.asmedcoop.or.kr/club/ascoop)이 주관하고, 지역에 있는 '쟁이마을', '더아모의집', '풀뿌리', '안성농민회' 등 조그만 단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든 한마당이다. 아이들의 농촌체험을 위해 어른들이 만든 마당이지만, 아이들은 애당초 타이틀엔 전혀 관심이 없다.

대장아이들에 의하면 맨 앞에 있는 작대기 들은 아이가 대장, 그 다음이 부대장, 그리고 나머지가 졸병들이란다. ⓒ 송상호


메뚜기잡기"메뚜기는 말여 이런 곳에 많이 사는 겨. " 메뚜기가 많이 사는 곳, 메뚜기를 잡는 방법 등을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농부아저씨. ⓒ 송상호


도착하자 마자 벌어진 고구마 구워먹기. 정성껏 호일에 싸서 숯불에 던져 넣으니 잠시 후 노릇노릇 군고구마 냄새가 들녘에 자욱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각자 군고구마 하나씩 집어 들고 까먹는다. 어른들은 옛 추억을, 아이들은 고소한 맛을 만끽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딜 가도 먹는 게 남는 것. 먹는 재미없으면 무슨 재미이랴.

이어지는 숯불구이 고기파티에 참가한 남녀노소가 입맛이 즐겁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돼지는 사료를 먹이지 않고 재래방식으로 키운 '흙 돼지'를 잡은 것이니 맛이 오죽하랴.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판에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먹는 맛이라니. 바로 이어지는 잔치국수 식사에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오전에 도착할 때만해도 조금 쌀쌀하다고 느꼈던 날씨는 모두의 배가 넉넉하게 찬 것과 조금씩 오후로 날이 기울어진다는 것이 맞물려 쌀쌀하다는 느낌은 벌써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화사하다. 이젠 뭘 해도 용서가 되고, 어떤 걸해도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제 본격적으로 벼를 베 보는 시간이다. 난생처음 잡아보는 낫을 아이들은 겁을 내기는커녕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날이 바짝 서 있어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순전히 어른들의 기우다. 아이들은 낫질 한 번 해본다는 마음이 앞서 '숙련된 조교'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이제 벼를 벤다. 낫질이 처음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벼를 베어내고서 한 움큼 쥐어진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몇 분 동안 부지런히 벤 벼를 한 아름 안고 옮길 때면 아이들은 잠시 '추수하기에 맘이 들 떤 농부'가 된다.

잔치국수지금은 잔치국수를 먹는 시간이다. 꼬맹이가 낮잠이 몰려오는 듯 눈을 비비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국수를 먹는 모습이 정겹다. ⓒ 송상호


한아름벼를 베어 한 아름 안기는 아이는 마냥 즐겁다. ⓒ 송상호


사실 '각종 농촌 체험'이라는 게 그렇다. 그것 한 번 한다고 해서 얼마나 체험이 될까. 본인이 직접 씨 뿌리고 물주고 김매고 추수를 해봐야 농부의 심정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느낄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수박 겉핥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래라도 아이들이 낫질을 해본다면 적어도 ‘쌀 나무가 밭에서 난다’는 소리는 안 할 것이고, 쌀이 밥이 되어 아이들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수고가 있었다는 것쯤은 알게 되리라. 그것으로 족하다. 무얼 더 바랄까. 

사실 '메뚜기 잡기'도 아주 중요한 체험 행사였지만, 아이들은 이미 중구남방이다. 뿔뿔이 흩어져 다 제 갈 길로 간지 오래다. '메뚜기 잡기 시간'을 정해주기도 전에 성급한 아이들은 오전 시간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메뚜기를 시나브로 잡고 있다. 6~7명씩 알아서 무리를 지어 메뚜기를 잡으러 다닌다.

일단의 사내아이들은 메뚜기 잡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아예 논두렁을 가로질러 뛰어다니면서 '전쟁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편을 갈라서 서로 쳐들어갔다가 쳐들어 왔다가 난리다. 어디서 났는지 손에는 모두 작대기 하나씩 들어주는 센스까지. 그게 칼인지 총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겐 소중한 놀이기구가 된다.

메뚜기 잡기지금 누나와 동생은 메뚜기 잡기 삼매경. ⓒ 송상호


메뚜기잡기한 꼬마가 '메뚜기 잡았다'를 외치고 있다. 마치 심마니들이 '심봤다'를 외치는 듯. ⓒ 송상호


"얘들아 모여라. 얘들아 모여라."

넓은 들녘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모으기란 쉽지 않을 터. 아까부터 메뚜기 잡는 것에 온 신경이 빠진 몇몇 아이들은 모이라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까스로 모아놓고 허수아비 만들기가 이어진다. 손에 잡힐 듯한 '미니 허수아비'를 만든다. 나무젓가락에 짚을 씌우고 종이컵으로 모자를 만들어 그림을 그려 넣으면 완성이다.

'쟁이마을' 부부 미술교사의 지시에 따라 각자 자신만의 허수아비를 만들 때는 아이들이 모두 예술가가 된 듯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만든 모든 '미니 허수아비'를 짚 풀에 꽂아두니 '허수아비 전시장'이 된다. 양에 차지 않았는지 일단의 어른들이 실물 크기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논에 꽂는다. 아이들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미니 허수아비지금은 딸아이와 엄마가 미니 허수아비 만들기에 푹 빠졌다. ⓒ 송상호


허수아비지금은 아이들의 정신은 오로지 허수아비 만드는 것에만 가 있다. ⓒ 송상호


가는 길이 아쉽던가. 마지막으로 또 먹는 것을 만들어 보는 시간. '뻥튀기'로 튀긴 현미에다가 맛있는 엿을 버무린 '현미 강정 만들기'이다. 엿 또한 가공해서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김영향 대표(안성의료생협 생활재공동구매모임)'가 이것저것 넣어 즉석에서 만든 것이다.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오물조물 만들면 세상에 하나뿐인 맛있는 강정이 된다. 자신이 만든 강정을 바로 그 자리에서 먹어보는 재미를 어떻게 설명하면 알 수 있을까. 맛도 기똥차다. 한정되어 있는 재료 탓에 모여든 식구들의 입맛은 더 감칠맛 나게 좋다. 떠나기 전 마지막 입가심이다.

이제 집으로 간다. 2008년 가을의 황금 들녘에서 진한 추억 하나 싸 들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두 돌아간 들녘엔 조금 전에 만든 허수아비만이 홀로 남아 낟알을 지키고 있다.  

허수아비어른들이 보다 못해 실물 크기의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다. ⓒ 송상호


허수아비허수아비가 홀로 들판을 지키고 있다. ⓒ 송상호


덧붙이는 글 덧붙이는 글

‘안성의료생협 생활재공동구매모임은 안성에 있는 주부들이 무농약 농산물, 천연소재 생활용품 등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모임이다. 연락처는 031-672-2066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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