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41) 사랑과 자비
[우리 말에 마음쓰기 434] ‘플러스’와 ‘가산’과 ‘도움’과 ‘보탬’
ㄱ. 플러스가 가산
.. 내가 졌어도 네 예측이 날카롭다는 걸 알았잖아. 영흥한테는 플러스가 가산된 거야 .. <4번 타자 왕종훈 (44)>(산바치 카와/정선희 옮김, 서울문화사,1998) 106쪽
‘예측(豫測)’은 ‘생각’이나 ‘눈’으로 다듬습니다. “날카롭다는 걸 알았잖아”는 “날카로운 줄 알았잖아”로 손봅니다.
┌ 플러스(plus)
│ (1) 반응 검사 따위에서 양성임을 이르는 말
│ (2) 이익이나 도움이 됨
│ - 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지 모른다
├ 가산(加算)
│ (1) 더하여 셈함
│ - 가산 금리
│ (2) = 덧셈
│
├ 영흥한테는 플러스가 가산된 거야
│→ 영흥한테는 도움이 되었어
│→ 영흥한테는 큰힘이 되었어
│→ 영흥한테는 큰 도움이라고
│→ 영흥한테는 엉청나게 보탬이 된다고
└ …
‘플러스’도 ‘가산’도 얄궂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을 쓰고 싶은 분이라면 써야 할 텐데, 뜻이 같은 말을 겹치기로 붙여야 할 까닭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말로 ‘도움’이나 ‘보탬’ 한 마디면 넉넉하지 않을는지요.
┌ 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지 (x)
└ 내 자신한테 도움이 될지 (o)
보기글을 “영흥한테는 도움이 보태어진 거야”처럼 적는다면 곧바로 얄궂거나 잘못된 줄을 느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영어와 한자말을 이어 놓으니 겹말인 줄 못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ㄴ. 사랑과 자비심
.. 티베트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모든 생명체에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도록 배웁니다 ..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티베트 난민 어린이들, 베블링 북스 옮김, 초록개구리,2008) 175쪽
‘생명체(生命體)’는 ‘목숨붙이’로 손질합니다.
┌ 자비(慈悲)
│ (1)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 - 자비의 손길 / 자비를 베풀다 / 자비를 구하다
│ (2) [불교]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함
│ -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 낫게 해 주려는 자비의 손일 것이다
│
├ 사랑과 자비심을
│→ 사랑과 믿음을
│→ 사랑과 너른 가슴을
└ …
흔하고도 흔한 말 ‘사랑’이지만, 오히려 흔하게 쓰이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낱말에 밀린다는 느낍니다. 영어 ‘love’에도 퍽 자주 밀리지만, 한자말 ‘愛情’과 ‘思慕’에도 밀리더니, ‘慈悲’라는 말한테도 밀립니다.
낱말을 하나하나 따지면, ‘사랑’하고 ‘애정-사모-자비’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정-사모-자비’는 하루가 다르게 쓰임새를 넓히면서 ‘사랑’이 쓰이던 자리를 잡아먹더니, 이제는 ‘사랑’이 쓰이기 어렵도록 널찍하게 자리를 잡기까지 합니다.
┌ 자비의 손길 → 너그러운 손길 / 따스한 손길
├ 자비를 베풀다 → 사랑을 베풀다
└ 자비를 구하다 → 사랑을 바라다
보기글에서는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인 ‘자비’를 헤아려 본다면 “사랑과 자비”가 아니라 “사랑과 가엾음”이나 “사랑과 너그러움”이나 “사랑과 믿음”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도록 배웁니다
│
│→ 사랑하고 돌보도록 배웁니다
│→ 사랑하고 아끼도록 배웁니다
└ …
왜 이렇게 ‘사랑’이라는 말이 제대로 안 쓰이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우리 겨레가 우리 말을 사랑하지 않으니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가 애틋하게 쓰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말이 아닌 영어를 사랑하고 한문을 사랑하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어찌 알뜰하고 아름답고 알맞춤하게 쓰겠습니까.
.. 내가 졌어도 네 예측이 날카롭다는 걸 알았잖아. 영흥한테는 플러스가 가산된 거야 .. <4번 타자 왕종훈 (44)>(산바치 카와/정선희 옮김, 서울문화사,1998) 106쪽
┌ 플러스(plus)
│ (1) 반응 검사 따위에서 양성임을 이르는 말
│ (2) 이익이나 도움이 됨
│ - 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지 모른다
├ 가산(加算)
│ (1) 더하여 셈함
│ - 가산 금리
│ (2) = 덧셈
│
├ 영흥한테는 플러스가 가산된 거야
│→ 영흥한테는 도움이 되었어
│→ 영흥한테는 큰힘이 되었어
│→ 영흥한테는 큰 도움이라고
│→ 영흥한테는 엉청나게 보탬이 된다고
└ …
‘플러스’도 ‘가산’도 얄궂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을 쓰고 싶은 분이라면 써야 할 텐데, 뜻이 같은 말을 겹치기로 붙여야 할 까닭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말로 ‘도움’이나 ‘보탬’ 한 마디면 넉넉하지 않을는지요.
┌ 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지 (x)
└ 내 자신한테 도움이 될지 (o)
보기글을 “영흥한테는 도움이 보태어진 거야”처럼 적는다면 곧바로 얄궂거나 잘못된 줄을 느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영어와 한자말을 이어 놓으니 겹말인 줄 못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ㄴ. 사랑과 자비심
.. 티베트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모든 생명체에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도록 배웁니다 ..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티베트 난민 어린이들, 베블링 북스 옮김, 초록개구리,2008) 175쪽
‘생명체(生命體)’는 ‘목숨붙이’로 손질합니다.
┌ 자비(慈悲)
│ (1)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 - 자비의 손길 / 자비를 베풀다 / 자비를 구하다
│ (2) [불교]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함
│ -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 낫게 해 주려는 자비의 손일 것이다
│
├ 사랑과 자비심을
│→ 사랑과 믿음을
│→ 사랑과 너른 가슴을
└ …
흔하고도 흔한 말 ‘사랑’이지만, 오히려 흔하게 쓰이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낱말에 밀린다는 느낍니다. 영어 ‘love’에도 퍽 자주 밀리지만, 한자말 ‘愛情’과 ‘思慕’에도 밀리더니, ‘慈悲’라는 말한테도 밀립니다.
낱말을 하나하나 따지면, ‘사랑’하고 ‘애정-사모-자비’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정-사모-자비’는 하루가 다르게 쓰임새를 넓히면서 ‘사랑’이 쓰이던 자리를 잡아먹더니, 이제는 ‘사랑’이 쓰이기 어렵도록 널찍하게 자리를 잡기까지 합니다.
┌ 자비의 손길 → 너그러운 손길 / 따스한 손길
├ 자비를 베풀다 → 사랑을 베풀다
└ 자비를 구하다 → 사랑을 바라다
보기글에서는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인 ‘자비’를 헤아려 본다면 “사랑과 자비”가 아니라 “사랑과 가엾음”이나 “사랑과 너그러움”이나 “사랑과 믿음”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도록 배웁니다
│
│→ 사랑하고 돌보도록 배웁니다
│→ 사랑하고 아끼도록 배웁니다
└ …
왜 이렇게 ‘사랑’이라는 말이 제대로 안 쓰이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우리 겨레가 우리 말을 사랑하지 않으니 ‘사랑’이라는 낱말 하나가 애틋하게 쓰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말이 아닌 영어를 사랑하고 한문을 사랑하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어찌 알뜰하고 아름답고 알맞춤하게 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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