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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품'과 '사진쓰레기' 사이에는

[사진말 20 : 사진에 말을 걸다 (111∼118)] '사진작가'는 어떤 사람?

등록|2008.09.30 16:52 수정|2008.09.30 16:52

보기에 따라서골목집 하나를 보면서 담는 사진도, 골목집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른 사진이 되어서 찍히고 보여지게 됩니다. 골목집을 있는 그대로 보는지, 낡았다고 보는지, 곱다고 보는지 ……. ⓒ 최종규


[111] 작가, 사진작가 1 : '작가'라는 말은 사진 찍는 이 스스로 붙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이 붙여 주는 이름입니다.

[112] 작가, 사진작가 2 : 전시회 한두 번 열었다고, 책 한두 권 냈다고, 작품 몇 점 알려졌다고 해서 '작가' 또는 '사진작가'라 한다면, 저는 벌써 여러 열 번 작가도 되고 사진작가도 되었습니다.

내 자전거늘 제 발이 되고 몸이 되어 준 고마운 자전거입니다. 수만 킬로미터를 달리면서 늘 저를 지켜 주었고,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늘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자전거를 찍어 준 사진은 몇 장 없더군요. 자기 자전거라서 그러했는지, 사진쟁이가 자기 얼굴 사진이 거의 없듯 제 자전거 사진도 거의 없던 셈이었는지. ⓒ 최종규


[113] 필름 : 문닫은 회사 '아그파'에서 만든 필름이 창고를 뒤지면서 하나둘 나타나 이 필름으로 사진 찍던 이들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고 있습니다. 필름을 더는 만들지 않으면서 비로소 필름 한 통 소중한 줄 깨닫는 셈입니다.

집터를 꾸미는 마음골목길 마실을 하노라면, 오래도록 한 동네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당신들 집터를 어떻게 꾸미고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들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오래오래 한 곳에 머물며 지내게 된다면 제 삶자리를 아늑하게 가꿀 테지요. 한 가지 사진감을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진감 한 가지도 애틋하게 가꿀 수 있을 테고요. ⓒ 최종규


디지털사진기 한 대 어렵게 장만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필름 한 통 소중히 여기는 마음', 곧 '사진 한 장 찍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쓰는가'나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아껴서 찍는 마음'을 느끼기 어려워 아쉽습니다. 파일을 지우면 얼마든지 새로 찍을 수 있으니, 그 자리에서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수백 장이고 수천 장이고 다시 찍을 수 있기는 한데, 이렇게 끝없이 찍어대기만 하면서, 정작 무엇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는가를 놓치기 쉽구나 하고 느낍니다.

딱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진, 꼭 서른여섯 장에 담아내야 하는 이야기를 반드시 알거나 헤아려야만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디지털이 아닌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필름 아까운 줄 모르며' 찍는 분도 많습니다. '필름값 떨어지는 소리를 느끼며 한 장씩 꾹꾹 눌러가며 찍는 이들 마음을 모르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면, 디지털로 사진을 찍는 분들은 얼마나 '사진 한 장 소중하거나 애틋하다'고 느끼면서 즐기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찍었다가 지우고 다시 찍는 일도 자기한테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셈이며, 자기가 더 마음을 기울이며 들여다보고 느껴야 할 대상한테 마음을 못 쓰니 자기를 더 아름답고 살뜰히 가꾸지 못하는 셈이 아니냐 싶습니다.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작품' 아닌 '쓰레기'를 낳는 분은 예나 이제나 있었고,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한 장 두 장 아끼고 사랑하면서 찍는 분은 예나 이제나 있습니다.

작은 곳 보기사진을 찍을 때 큰 곳을 보고 찍는다거나 작은 곳을 보고 찍는다고 하는 나눔은 하지 않습니다.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 모습이 자기가 찍으려고 하는 사진감을 잘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한테 익히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자기 사진감하고 동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서울 남현동 헌책방 〈책창고〉에서) ⓒ 최종규


[114] 일기를 쓰듯 : 일기를 쓸 때, 자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안 쓰고, 남들이 무슨 이야기로 수다를 떨더라 하고 줄줄줄 옮겨 적는 사람은 없겠지요. 뭐, 워낙 재미있다고 느껴 어쩌다 한두 번 옮겨 적을 수는 있겠지만.

사진을 찍을 때 보면, 남들이 찍어 놓은 틀이나 사진감을 애써 좇거나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나도 재미삼아서 따라해야지 하고, 한두 번 따라해 볼 수는 있습니다. 아직 자기 사진이 무르익지 않아서 배우고픈 마음에 따라서 찍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러나 자기한테 주어진 한 삶을 그렇게 따라쟁이로 살 수야 있겠습니까. 어설퍼도 자기 사진을 찍고, 모자라도 자기 사진길을 걸어야지 싶은데.

느긋함이란책꽂이 위쪽에도 책을 얹으면 더 많은 책을 갖출 수 있음에도, 책꽂이 위쪽을 말끔히 비우고 몇 가지 물건을 가지런히 올려놓습니다. 더 많이 파는 장사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책방을 꾸리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게 해 줍니다. (서울 증산동 헌책방 〈모아북〉에서) ⓒ 최종규


[115] 작가, 사진작가 3 : 남들이 자기를 작가나 사진작가라고 이름붙여 주어도, 자기 스스로를 작가나 사진작가라고 느끼지 않아야 자기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책방 들머리전국 어느 헌책방이든 똑같은 곳은 없습니다. 들어가는 문부터 안쪽 책꽂이에다가 갖춘 책까지. 다 다른 헌책방에서 다 다른 모습을 보고, 다 다른 책꽂이에서 다 다른 책을 만나며, 늘 다 다른 사진 한 장 얻습니다. (경기 부천시 〈중동서점〉에서) ⓒ 최종규


[116]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며 : 다른 사람이 잘 찍은 훌륭한 사진을 보며 가슴이 찡해 눈물을 흘리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마음이어야, 자기가 잘 찍은 훌륭한 사진을 보면서도 가슴이 벅차고 손끝이 찌르르 떨릴 수 있습니다.

찍어 주기사진찍기로 만난 분하고 서로 사진 찍어 주기 놀이를 해 보곤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믿는 사이라면, 스스럼없이 매무새를 잡고 사진으로 찍히기도 하며 즐겁게 서로를 찍어 주게 됩니다. ⓒ 최종규


[117] 모델 1 : 자기가 누구를 찍고 싶으면, 자기도 다른 누군가에게 찍혀야 해요.

[118] 모델 2 : 남을 찍으려면 먼저 남한테 찍혀 봐야지 싶어요. 찍히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지, 또는 얼마나 즐거운지를 느껴야, 자기도 남을 찍을 때, 그러니까 사람으로서 사람을 찍을 때 어떤 모습이 자기한테 즐겁게 찍을 만한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 자기한테 달갑지 않거나 괴롭게 찍는 노릇인지, 또 어떤 모습이 찍히는 사람으로서도 찍는 사람으로서도 마음에 드는지를 몸으로 깨닫고 느끼면서 받아들일 수 있지 싶어요. 사진은 먼저 몸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필름에 담는 일이지 않겠느냐 싶어요.

이웃 손님아기를 보러 온 이웃집 할머니들. 아기가 잘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말씀을 한 마디씩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뒤에 서서 이웃과 옆지기와 아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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