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연애' 소설로 뜬 그녀의 꿈은 '진퉁'
[인터뷰] 2008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고예나를 만나다
▲ 제3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고예나 작가 ⓒ 곽진성
올해 만 24세인 고예나 작가. 자신의 첫 장편소설 <마이짝퉁라이프>를 통해 민음사의 2008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32회를 맞는 '오늘의 작가상' 소설가 중 최연소 수상이기도 하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그는 한때 소설가란 꿈을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평범한 직장생활을 박차고 꿈을 향해 높이 날아올랐다. 10월 말, 일산에서 고예나 작가를 만나 그 특별한 삶을 인터뷰했다.
[장면 #1] 신경숙을 동경한 소녀, 소설가를 꿈꾸다
어렸을 적 고예나는 책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특기라고 한다면 뭔가 빼곡히 쓰는 것 정도가 전부. 또래의 뛰어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뭔가 달랐다. 장래 희망도 다른 아이들처럼 과학자나 연예인이 아니었다. 단 하나, 소설가였다. 고예나는 자신이 쓴 문장 하나하나를 통해 친구들이 감동하고 또 때론 슬퍼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무작정 되고 싶었어요. 정말 쓰는 게 좋았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정신적인 교류를 하고 싶다고 할까요? 제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했어요."
어린 시절의 고예나는 신경숙 소설가를 동경했다. 소설 <외딴방>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목표도 신경숙이 졸업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로 정했다.
"그냥 동화된 거 같았어요. 신경숙씨 글이 너무 섬세해서 몇십번을 읽어도 다른 감동, 다른 느낌이었어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신경숙처럼 멋진 소설가의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어요."
목표가 정해진 그에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은 소설가란 꿈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게 했다. 당시 고예나는 모 대학교에서 열린 문학캠프에 참가해 차상 입상을 하는데, 그의 글을 본 대학총장이 한번 보자는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 대학총장은 그에게 뜻밖의 제안을 전한다. 자신이 총장으로 있는 대학교로 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고예나는 당시 목표로 한 대학이 있었기에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 때의 기억은 가슴 설렌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장면 #2] 소설가 지망생, 학원 강사가 되다
▲ 학교 입학 후 작가에 대한 환상이 많이 사라졌다. ⓒ 곽진성
"학교 입학 후 작가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어요. 사실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고 별로 살아남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서 평범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고예나는 소설가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 대학 졸업과 함께 소설가의 꿈을 접고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세상에 적응해 갔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논술을 하기도 했었고 국어를 하기도 했었어요. 다행히 학생들이 저를 잘 따랐죠. 사춘기 아이들을 가르친 건 정말이지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학원 강사 생활은 즐거웠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과 친절한 원장 선생님은 직장 생활을 만족스럽게 했다. 한 달에 한 번 월급을 받아 그 돈으로 여느 직장인처럼 쇼핑도 하고 저금도 하며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소설가란 어릴 적 꿈은 자연스럽게 현실의 바쁨 속에서 잊혀져 갔다. 마치 신기루처럼….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장면 #3] 직장을 박차고 장편소설을 쓰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매달 나오는 월급 때문에 일한 거였는데, 머릿속에 엉켜서 침체된 문장들이 달아나질 않았어요. 쓰고싶은 욕망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습니다. 소설가란 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다. 고예나는 잊혀진 옛 꿈이 떠올랐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글에 대한 욕망. 그는 다시금 소설가를 꿈꿨다. 1년여의 길고 긴 직장 생활 도중에 되살아난 옛 꿈, 그는 용기 내서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었기에 고예나는 과감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직장생활 동안 모아둔 돈은 작품을 쓰기 위한 작업 공간을 얻는 데 투자했다.
고예나가 쓰고 싶었던 글은 연애소설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연애담이 아닌 사회를 꿰뚫고 세태를 파악하는 내용을 담고 싶었다.
▲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집 <마이짝퉁라이프> ⓒ 믿음사
한 마디로 세태를 파악하면서도 아우를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짝퉁론과 연애소설을 합치게 됐습니다."
그렇게 고예나는 한달 반 동안의 고민 끝에 <마이짝퉁라이프>를 쓰기 위한 첫 펜을 들었다. 그는 기획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 명의 전혀 다른 캐릭터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과 연애를 하는 방식을 풀어나가는 건데 그들의 공통점은 짝퉁과 귀결된다는 거죠. 여기에 중점을 뒀어요."
고예나는 <마이짝퉁라이프> 소설 속에서 세 명의 인물을 창조해낸다. 내성적인 진이, 가짜 애인을 만나 성욕을 해결하는 B, 미니홈피와 짝퉁 명품에 열광하는 R이 바로 그들이다. 고예나는 오랜 구상 끝에 나온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진이는 아주 우울하고 소극적인 그런 인물이에요. 진이의 감성에 맞추고 진이의 생각을 헤아려 내느라, 글 속에 몰입할 때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B는 제 친구를 유심히 관찰해 본떠서 만든 거였어요. 놀랍도록 실제와 가까웠기 때문에 B를 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죠. R 역시 우리 주변에 많은 인물이에요, 좀 엉큼하고 여우같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자 고예나는 달라졌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제하고 방안에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문장과 씨름했다. 오랜 작업에 지칠 만도 하건만 그는 좋아하는 일을 했기에 지치지 않았다.
작품이 당선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런 걱정들은 소설가가 된 후의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이겨냈다. 고예나는 놀이하는 마음으로 첫 작품인 <마이 짝퉁 라이프>를 완성해 냈다. 쓰고 싶은 글을 썼기에 그는 원고 집필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정말 신나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썼어요. 한 번도 힘들었던 적이 없었죠. 아직까지는 글 쓰는 고통 같은 걸 느낀 적이 없어요. 때때로 문장이 매끄럽게 나와주지 않을 때가 있지만 이걸 고통이라고 하기엔 너무 엄살 아닌가요?"
그렇게 첫 작품 <마이짝퉁라이프>가 완성되었고 고예나는 그 장편소설을 민음사에서 주최한 2008년 오늘의 작가상에 출품했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지레 겁먹고 걱정하진 않았다. 자신의 열정과 꿈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면 #4] 2008년 '오늘의 작가상' 고예나
▲ 고예나 작가 ⓒ 곽진성
꿈이 실현된 것일까? 2008년 4월의 어느 날 저녁.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탄 고예나의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는 무심결에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들려온 것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 누군지 궁금한 마음에 전화한 사람을 물은 고예나는 깜짝 놀라고 만다. 전화한 이는 민음사 대표였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고예나씨.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순간 고예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확인해 물었다. 꿈인가도 의심했지만, 그렇기엔 너무도 생생한 현실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으면 절대 이룰 수 없었던 꿈, 하지만 고예나는 현실을 탈피해 소설가란 꿈에 도전했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 그렇게 고예나는 32회째를 맞는 '오늘의 작가상' 소설가 중에 최연소 수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등단 소설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 후. 7개월 후인 2008년 10월 말, 일산에서 만난 고예나 작가는 다음 작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맑은 웃음과 유쾌한 언변이 인상적인 그는 아직도 모든 것이 꿈 같다고 밝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이제는 어엿한 소설가로 이름을 올린 그는 자신의 꿈의 기치에 대해서 들려준다.
"센스있는 젊은 작가로 불리고 싶어요. 세태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집어내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내는 작가로서 우리 세대를 아우르고 싶기 때문이에요"
스물넷, 고예나 작가의 꿈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자신의 또래를 대변하는 작가, 동시대를 아우르는 작가, 그들의 속마음과 고충을 헤아려 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 꿈을 향해 그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인터뷰 후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 |
play
▲ 고예나 작가의 말 ⓒ 곽진성 고예나 작가와의 인터뷰 약속이 잡혔을 때 다른 취재보다 두 세배 많은 질문을 준비해야 했다. 인터뷰에 관련한 질문 외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 궁금한 여러 가지 사항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는 김에 그 궁금증들을 잔뜩 물어볼 요량이었다. 그 질문 내용이래봤자 "오랜 글 작업이 힘들지는 않던가요? 문장이 잘 안나올 때는 어떻게 해요?" 같은 유치찬란한 것들이었지만 다행히(?)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그는 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답을 해줘 고마웠다. 밝고, 게다가 세련된 24살의 작가에겐 유쾌한 젊음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배울 점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문득 나도 저렇게 열정적인 순간이 있었나 돌이켜 보게 된다. 물론 그 물음에 내 스스로 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묻는다면 '한 때는…'이라고 나지막한 소리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도 분명 그런 순간이 있었다. 지금부터 불과 1년 전인 25살의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열정 가득한 대학생 탐사보도 기자를 꿈꾼 적이 있다. 적어도 그때는 용돈을 달달 털어서, 몇달에 걸쳐 탐사 취재에 도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슴 벅찼던 꿈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 현실의 바쁨 속에 그런 기사를 쓸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그렇게 기사를 써봤자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점점 타성에 젖어가던 내게 들려온 천금 같은 한 마디. "글을 쓰자 조바심이 사라졌어요. 첫 장편을 쓰는 내내 행복했죠. 나중에 어떻게 되든 현재를 살고자 했으니까요." 글을 쓰며 행복하다는 감정, 현재를 살고자 한다는 마음가짐, 고예나 작가의 말이 내겐 따끔한 교훈으로 다가왔다. "쓰고 싶었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쓴 거였기 때문에 정말 신나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썼어요. 한 번도 힘들었던 적이 없었죠. 아직까지는 글 쓰는 고통 같은 걸 느낀 적이 없어요. 때때로 문장이 매끄럽게 나와 주지 않을 때가 있지만 이걸 고통이라고 하기엔 너무 엄살 아닌가요?" 장편소설가라는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한 고예나 작가를 보며 나 역시 다시금 가슴 벅찬 꿈을 꾼다. 그동안 용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또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첩에 적어두기만 하고 취재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뒤늦게 끄집어내 본다. 도전. 그리고 실패 뒤에야 비로소 성공이 있다. 인터뷰 당시 고예나 작가가 들려준 말은 대학생 기자인 내게 꿈에 대한 용기를 얻게 해준다. 그래. 까짓것, 젊은 내가 무엇이 걱정이랴, 나 역시 하고 싶은 취재를 하고,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젊음이 있는데 말이다. "하고싶은 걸 하고 사니까 너무 행복했어요. 수입이 적든 많든. 결국에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걸 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물질이 정신을 대신해줄 수 없고 정신이 물질을 대신해줄 수 없으니까요." 문득 이 글을 읽는 젊은 당신에게도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혹 현실의 어려움 앞에 포기해 버린 꿈이 있다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보라고, 당신도 도전해 볼 수 있다고, 그리고 도전의 끝에선 분명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
덧붙이는 글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