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조차 얼어붙은 곳...킬링필드 현장에 가다
캄보디아 비밀 감호소 방문,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어
▲ 캄보디아 지도킬링필드에서 희생된 분들의 두개골로 모자이크된 캄보디아의 지도이다. ⓒ 이재호
캄보디아의 자부심인 '앙코르'와 치욕인 '동족학살'
캄보디아는 알게 모르게 영화에서 많이 나왔다. <킬링필드>에서 크메르 루즈군이 지식인을 모조리 처형하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비행기에서 떨어진 인디아나존스가 빙하를 미끄러져 내려간 밀림 속 인도마을도 사실은 캄보디아다. 또 근래의 <툼레이더>에서 거신 석상과 싸우던 장면도 역시나 여기. 영화에서 보여지듯이 크메르 루즈의 동족 학살과 고대 도시인 앙코르는 캄보디아 여행의 아이콘이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그들 최초의 왕국인 크메르제국은 서력기원 전후에서 시작하여 10세기 경에는 인도차이나반도 전체를 호령하던 거대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의 수도인 앙코르는 당시 당나라 장안까지 비웃을 만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13세기 경 사이암(태국인)족의 침입으로 앙코르가 버려지고, 그 후 서서히 몰락하면서 결국 1864년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러다 당시 다른 신생독립국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1953년 독립을 하게 되고, 이후 좌우파 대립이 시작됐다.
크메르루즈의 비밀 감호소인 일명 Secret Office 21(S21). 공산화 이전에는 프놈펜 시내의 평범한 고등학교였지만, 크메르루즈에 의해 반평 남짓한 독방 감옥으로 개조됐다.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밤이면 좁은 공간, 동남아 더위와 싸워야 했고, 낮이면 고문당했다.
수감수칙, '맞거나 전기고문 당할 때 울지 마라'
▲ 족쇄사람의 팔다리에 이런 쇠족쇄를 걸고 쇠사슬을 연결한다. 약한 인간의 피부는 찢겨져 나가며 피가 흐른다. 이것이 S21의 시작이다. ⓒ 이재호
▲ 물고문아래쪽의 고리에 수감자 팔의 족쇄를 묵고 위쪽에는 다리의 족쇄를 묵는다. 침대 밖으로 튀어나온 수감의 얼굴에 수건을 덮는다. 그리고 침대위의 물뿌리개를 이용해 수건을 적신다. 젖은 수건은 수감자의 숨통을 죄어간다. ⓒ 이재호
건물앞 간판에는 수감자들이 지켜야 하는 수감 수칙이 10가지 정도 적혀 있다. 대표적 수칙이 '조용해라', '간수 말 잘 들어라', '맞거나 전기고문 당할 때 울지 마라' 등이 있다. 이 수칙에 등장하는 '맞는 것과 전기고문'은 가장 기본적이며 나름 '인간'적이다. 감옥건물 맞은 편 건물에선 손톱고문, 사지찢기, 물고문, 불고문 등의 심도있는 고문이 행해졌다.
▲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천진한 아기의 모습과 부인의 강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강한 표정 사이에서 한방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이재호
그렇다고 고문 건물 내에 중세 쇠창살이 박힌 철제 인형관처럼 전문 고문기구가 있지는 않았다. 간단한 도구들을 사용한 가장 원시적인 고문만이 있었다. 고급(?) 고문이 피고문자에 대한 최대한의 고통과 최소한의 죽음이니, 이곳 원시 고문은 피고문자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1만5000명 피수감자들 중에서 살아나간 사람은 10명이 안 된다. 1만5000명이라는 숫자에 무감각하다면, 대략 고등학교 10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보라.
고문 건물에 고문기구들만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고문기구는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공간을 사진이 차지한다. 크메르 루즈는 피수감자가 이곳에 들어오면 일단 증명 사진을 찍어 보관했다. 1만5000명 수감자들의 증명사진 중 일부분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갓난 아기를 안고 수감된 여자를 볼 수 있다. 그녀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자신과 아기에게 다가올 운명을 예감하는 눈물이 보인다.
여기서 나는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나간 몇 안되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보고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수백만의 캄보디아인의 현재 모습이 상상되어 말 그대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직도 이곳만은 태양조차 얼어 있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분의 후덕한 미소에 부끄러움도 잊고 펑펑 울었다. 아직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려 한다. ⓒ 이재호
프놈펜에서 15km 가량 떨어진 곳은 Secret Office 24(S24)라 불렸다. 이곳은 오피스란 말이 안어울리게, 단지 사형장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더러운 세상을 탈출한 곳이다.
전시되거나 반쯤 파묻힌 수많은 해골들을 대하면, 해골이 해골처럼 안보인다. 그냥 길가의 돌처럼 보인다. 아니 자갈밭의 자갈처럼 보인다. 킬링필드? 정말 무서운 말이다. 해골이 자갈처럼 깔린…. 더욱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S21과 S24 사이 다른 S들의 존재이다. 이곳의 태양 역시 아직도 얼어있다.
한국의 십수 배에 이르렀던 거대한 영토, 신이 만든 것 같은 앙코르 와트의 건설, 동남아의 풍요한 농작물, 인도나 중국과도 비견되는 훌륭한 문화. 춤추는 압사라(여신)처럼 아름답던 캄보디아는 이렇듯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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